관리 메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고려대학교 축구부 100주년, 작년이 아닌 올해로 봐야 본문

7면/원우칼럼

고려대학교 축구부 100주년, 작년이 아닌 올해로 봐야

Jen25 2024. 4. 8. 15:25

고려대학교 축구부 100주년, 작년이 아닌 올해로 봐야

 

고려대학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석사과정 조형일

 

한국 스포츠에서 축구란 제1회 아시안컵 축구대회 우승컵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을 만큼 다른 종목과는 구별되는 특수한 지위를 인정 받고 있다. 한국 축구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고려대학교 축구부의 창단은 고려대학교 체육사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사에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고려대학교 축구부의 시작이 언제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은 2021보전 깃발이 날리는 곳에전시에서 고려대학교의 전신 보성전문학교 축구부의 창단을 1922년으로 설명하였다. 반면 고려대학교 100년사를 비롯하여 고 인권환 교수의 고대유사등 고려대학교 출판부가 펴낸 근래의 책들은 모두 모교 축구부의 창단을 1923년으로 명시하였다. 학교 역시 1923년을 고려대학교 축구부의 창단 연도로 보고 작년 한 해를 고려대학교 축구부 100주년으로 대대적으로 기념하였다.

 

1922년과 1923년 창단 주장이 공존하는 가운데 필자는 지난 학기 고려대학교 박물관의 체육 유물을 연구 주제로 삼아 공부하는 과정에서 고려대학교 축구부의 창단 시기에 대한 기존 주장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고려대학교 축구부의 창단 연도가 기존의 주장되어온 1922, 1923년이 아닌 1924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으로 이에 대해 학교와 구성원들에게 알리고 관련 논의를 진전시키고자 한다.

 

이미 2022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펴낸 스포츠 연혁서 보전 깃발이 날리는 곳에에서 독립기념관 임동현 연구원은 축구부의 창단 연도를 1922, 1923, 1924년 중 어느 하나로 특정할 수 없다고 밝히며 세 가지 설에 대한 각각의 근거를 제시하였다.

 

임연구원이 든 1922년 창단설의 근거는 고려대학교 전신 보성전문학교 축구부를 조명한 1936628일자 동아일보의 기사 <올림픽선수 낸 학원 찾어(3)>이다. ‘축구부가 생긴지는 14년전 봄이라는 해당 기사의 표현이 보전 축구부의 창단 시점을 1936년에서 14년을 역산한 1922년 봄으로 가늠케 한다는 것이다.

 

1923년 창단설의 근거는 당시 인물의 회고와 그 속에 담긴 와신상담 6이라는 표현이다. 보성전문학교의 체육부장으로 보전체육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홍성하 교수는 197345일 자 고우회보 <석탑야사-홍성하편 5>에서 보전에서 축구부를 창단한 것은 1923년이라고 특정해 밝히며, 1929년에는 와신상담 6년만에 조선체육회주최 전조선축구대회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고 회고했다. 와신상담 6은 보성전문학교의 1929년 전조선축구대회 우승을 두고 널리 쓰인 표현으로 1929년 우승 당시의 기사는 물론 1922년 창단설의 근거가 되는 1936628일 자 동아일보 기사에도 등장한다. 조선체육회주최 전조선축구대회를 우승한 1929년에서 와신상담한 6년을 역산하면 보전 축구부의 창단 시점은 1923년이 된다.

1924년 창단설의 근거는 194011일 자 동아일보의 기사 <세계적 선수를 배출한 체육조선의 모태>이다. 이 기사는 그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 당시의 문헌자료로는 유일하게 보전축구부가 조직된 시점을 명확하게 특정하여 대정 13(1924)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만 기사에서 조선학생축구연맹이 보성전문, 연희전문 축구부의 조직과 함께 생겨났다고 했는데 조선학생축구연맹의 조직된 시점은 1924년이 아닌 1926년으로 엄밀히 말해 학교 축구부와 학생축구연맹은 함께 생긴 것이 아니라 선후관계를 두고 생겨났다고 해야 옳다.

 

각 근거 사이의 충돌이 있는 반면 무엇 하나 명확하게 문서로 확인되는 것은 없어 축구부의 창단 연도를 어느 하나로 특정할 수 없다고 했던 임연구원의 글에서 한 걸음 더 진전된 해석을 시도하기 위해 먼저 해석의 여지 없이 명확한 사실부터 확인하자. 보전 축구부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보전 축구부가 19241030일 개막한 조선체육회주최 제5회 전조선축구대회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성전문학교 축구부의 창단 연대 하한은 1924년이다.

 

이제 해석이 필요한 것은 세 가지 기원설의 근거가 되어준 1936년 동아일보 기사와 보전체육부장 홍성하 교수의 1973년 고우회보 회고 글, 그리고 1940년 동아일보 기사이다. 먼저 1936년 동아일보 기사와 홍성하 교수의 회고에서 나오는 1929년 조선체육회 주최 전조선축구대회에서의 와신상담 6년만에 우승표현은 지금까지 1923년 창단설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이를 창단 후 여섯 해가 지났다는 것이 아닌 여섯 번의 대회 참가만의 우승이라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 근거는 꼭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당시 대회 우승을 전한 19291028일 자 동아일보 기사에 있다. 이 기사는 5회부터 매년 출장하여 와신한 보전군 상담 6년 만에 비로서 획득하였다는 표현으로 우승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이는 와신상담의 기원을 축구부의 창설시점이 아닌 1924년 처녀출전으로 보는 것이다. 해당 대회는 10대회로 보전이 6번째 참가한 대회였다. 대한축구협회가 1986년 펴낸 한국축구백년사에도 같은 의미의 ‘6년 만에표현이 등장한다. 1924년 제5회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한 보성전문이 1929년 제10회 대회 우승으로 대회 출전 6년만에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는 부분이다. 1920년대 신문 기사에는 참가 횟수를 기준으로 연도를 기산하는 경우가 다수 발견된다. 일례로 1923년부터 매해 조선여자정구대회를 주최한 동아일보는 1929926일 제 7회 대회의 결과를 전하는 기사의 헤드라인을 와신상담 칠 년만의 영명군 필경 우승으로 잡았다. 해당 기사의 내용은 공주 영명학교가 1회 대회부터 7회 대회까지 꾸준히 참여하여 처음 우승컵을 차지했다는 것으로, 당시의 언론은 지난 6번의 대회에서 탈락하고 7번째 출전하여 우승한 것을 와신상담 칠 년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보면 1922년설 또한 그 지위를 위협받는다. 1924년 처녀출전하여 1929년 우승한 것을 와신상담 6년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1936년에 쓰여진 기사에서 축구부가 14년전 봄 조직된 것이라고 기록한 것이 꼭 창설시기를 1922년으로 지칭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횟수로 연도를 기산하는 것은 대회 참가의 경우에 국한된 것이 아닌 지금과는 다른 당시의 보편적 기산법이었다. 예를 들어 당시 언론은 1929년을 19207월 창립된 조선체육회의 창립 10주년으로 기념하였다. 또한 조선체육회 창립 15주년 기념 체육대회는 1935년이 아닌 1934년에 치러졌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특정 시점으로부터의 역산에 기초한 1922년설과 1923년설의 근거가 크게 흔들린다. 이제 1923년 창단설의 근거는 오로지 1923년으로 창설연도를 특정한 홍성하 교수의 회고만이 남게 된다. 다음은 홍성하 교수의 197345일 자 고우회보 <석탑야사-홍성하편 5>에서 해당 부분을 직접 인용한 것이다.

 

축구부를 창설한 것은 1923년이었고 창설된 해부터 조선체육회 주최대회에는 매번 출전하였다. 그러나 거의 우승의 문전까지 가서는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를 5년여간 거듭하였다. 그러나(중략) 와신상담 6년만에 1929(9) 조선체육대회의 전문학교부에서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였다.”

 

축구부를 창설한 해를 1923년으로 특정하고 창설된 해부터 조선체육회 주최의 대회에 나갔다고 덧붙인 본 회고에는 모순이 있다. 본교가 조선체육회 주최 전조선축구대회에 처녀출전한 것은 1924년이기 때문이다. 본 회고 글이 발표된 1973년으로부터 50여 년 전 일이다 보니 다소간 기억의 오류가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1923년이라는 창설 연도창설된 해부터 대회에 참여했다는 모순된 진술 중 어떤 것이 사실에 가까울까? 1923년이라는 창설 연도에 대한 근거는 본 회고 외에는 드러난 것이 없지만, 보전 축구부가 창단 직후 대회에 참여한 것은 여러 기사에서 확인된다. 1924년 제5회 전조선축구대회에 출전한 보전 축구부를 다룬 1924112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자. 이 기사는 보전군을 처녀군으로 기술상 다소 익숙치 못한 점도 없지 않던 바라고 서술하고 있어 이 팀이 생긴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앞서 검토한 1936년 동아일보 기사도 마찬가지다. 이 기사는 보전축구부를 두고 탄생하자마자 서울 중앙의 부동의 존재로 강팀의 하나로 웅거하였었다. 그러나 나이가 어린 만큼 번번이 선전석패를 당하고 말았다라고 소개하였다. 창단과 동시에 대회에 참여하였으나 우승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1923년이라는 창단 연도는 조작된 기억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1923이라는 숫자만 1924로 바꾸면, 창설된 해부터 조선체육회 주최의 대회에 나갔다는 내용과 5년간 탈락을 거듭하여 6년만에 우승을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홍성하 교수의 회고는 논리적 모순 없이 여러 정황에 잘 들어맞는다.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집합적이고 다면적인 기억이 형성되는 대회 준비와 참여에 대한 기억과는 다르게 창설연도와 같은 특정 숫자에 대한 것은 상대적으로 기억의 오류를 일으키기 쉽다. 이 글이 구체적 숫자를 두고 이미 명백한 오류를 담고 있다는 점은 그 실례이다. 이 글에서 제9회 대회로 서술한 1929년의 전조선축구대회가 실제로는 제10회 대회이기 때문이다.

 

1924년 창단설과 관련해서는 1936년 동아일보 기사가 창설시기를 ‘14년 전 봄이라고 특정한 것도 유념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기산 방식이 불명확한 ‘14년 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보전 축구부 창설의 계절적 시점이 이라는 것만을 사실로 본다고 하자. 그리고 1923, 1924년 창단설을 이에 붙여 1923년 봄과 1924년 봄을 창설 시점으로 두고 홍성하 교수의 회고를 돌아보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홍성하 교수의 회고는 1924년을 창설연도로 했을 때 전반적으로 모순 없이 잘 들어맞는다. 하지만 만약 1923년 봄에 축구부가 창설되었고 192410월 말 대회 참가가 처음이라면 거의 2년 가까운 시간을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준비만 한 것인데 이러한 상황이라면 홍성하 교수의 위와 같은 창설된 해부터 매번 출전회고는 나올 수 없다.

 

더욱이 홍성하 교수는 192511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각 학교 운동 지도자의 학생운동계 전망 기사에 보전을 대표하여 기고하면서 보전에는 별다른 운동 장려 움직임이 없으며 시행되고 있는 운동은 정구가 있다고 하였다. 이 글은 신문의 발행 시기와 원고의 마감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1924년에 쓰여졌을 것인데 이 글에서 보전의 운동부로 정구부만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1924년 당시 보전에 번듯한 운동부는 정구부뿐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축구부는 1924년 어느 시점에 갓 창단하여 10월에 첫 대회에 출전하는 등 당시에는 다소 불완전한 상태였을 것이다. 만약 1922년이나 1923년에 축구부가 만들어졌다면 1925년 보성전문학교의 스포츠를 소개하는 기사에는 정구부와 함께 축구부가 언급됐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1922년설은 지금과는 다른 당시의 기산법을 비롯하여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잘못된 해석임이 분명하다고 여겨지며, 1923년으로 창설 시점을 지칭한 홍성하 교수의 회고 역시 1929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우승 연도에서 당시 언론 등을 통해 몇 해 동안 반복하여 사용된 형용구 보전 축구부 6년의 와신상담50년이 지난 시점에서 현대식으로 역산하여 기억해내는 과정에서 나온 기억의 오류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필자는 고려대학교 축구부의 창설시기를 두고 역사적 사실이 전무한 1922, 1923년 창설을 주장하기보다는 조선체육회 주최 전조선축구대회에 처녀출전하여 공식기록을 남겼고, 1940년 동아일보 기사가 명확하게 창단연도로 지목한 임진년 즉 1924년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성의 있는 검토가 있어 한국 축구사의 한 페이지가 온전히 정립되길 바란다.

'7면 > 원우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년의 필름 영화 감상과 영화관의 전망  (0) 2024.06.14
텍스트는 열려 있다  (0) 2024.05.07
‘탈아입구(脫亞入毆)’ 소회  (2) 2024.03.12
한국인이라는 환상  (1) 2023.12.06
성마르지 않은 호흡으로  (0) 2023.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