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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춤과 추함 본문
춤과 추함
국어국문학과 석사수료 그렘 핸드
지난주에 학위 논문을 제출했고, 최근 문학적 경험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문학은 사람이 경험하는 것인지, 아니면 존재하고 있는 사물인지. 처음에 나에게 문학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한국문학을 처음으로 원어(原語)로 읽어본 것은 10년 전, 서강어학당에서 언어 연수를 할 때였다. 5급 수업에 올라갈 때쯤 시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언어 실력이 쌓였고, 외국어로 시를 읽는 경험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서강 한국어』 5급 교과서에서 김춘수의 명시 「꽃」이 실려있었고 수업 중에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다. 그 외에도 매일 학교 도서관에서 수업 숙제를 마친 후 이책 저책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여러 대표적인 한국 시인 중에서 특히 윤동주가 방언 등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서 비교적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갈 수 있었고 좋아하게 되었다.
겨울 학기 마지막 날엔 교사가 한국어로 쓴 글을 가지고 와서 소개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기억이 약간은 흐리지만, 윤동주의 「자화상」이나 「별 헤는 밤」에서 발견한 의미를 설명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때 같은 반 친구 중에서 내가 잘 모르는, 대만에서 온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가 가지고 온 글이 다음과 같았다.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그녀는 그 글을 소개할 때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하고 인상 받았지만 누가 한 말인지를 모른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잘 알았다. 원래 영어권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인데, 정확한 출처가 누구도 모르는, 책에서 볼만한 말이라기보다는 쿠션이나 싸구려 장식품에서 볼만한, 한 마디로 ‘키치(kitsch)’의 극치인 말로 유명하다. 풍자하려면 마음껏 쉽게 풍자할 수 있는 말. (‘방귀 뀌어라, 누구도 냄새 맡지 않는 것처럼’ 같은 식으로 말이다.) ‘Sing like no one is listening, dance like no one is watching…’ 코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내가 가지고 오는 시의 문화적, 문학적 가치는 분명했는데, 그녀가 소개하는 글은 누가 봐도 그 수준에서 한참 떨어졌다.
그런데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 그녀는 그 촌스러운 말에서 진심으로 감동을 받는 모양이었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어눌한 발음으로 외어보면서 목이 쉬고 눈이 글썽글썽해졌다. 뜻밖의 감정 표현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이 가치 없는 말에서 그렇게 반응하는 건 도저히 이해 못 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내가, 물론 티를 안 냈지만, 문학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있고 그런 말을 무시할 줄 아는 데에서 적지 않은 우월감을 느꼈다.
어학당에서 몇 달 동안 더 공부해서 졸업했고, 그 후에 서울에서 취직했다. 어학당을 같이 다닌 사람이 대부분 한국을 떠났지만, 나름대로 친했던 한 사람이 남아 있었고, 1년쯤 후 어느 여름밤 그 사람과 서강대 근처의 편의점 앞에 맥주를 먹게 되었다. 그때 그 대만에서 왔던 여성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녀는 어학당을 다니기 전에 뇌암 말기 진단을 받았었다고 들었다. 의사가 발견할 때 이미 완치의 가능성이 없다고 했는데, 한국어를 언젠가 배우고 싶은 꿈이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기회다 싶어서 일을 그만두고 어학당에 등록했고 졸업한 이후 대만으로 돌아갔으며 그때부터 건강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서 세상을 달리했다고 들었다. 이 배경 이야기를 알면 그 말이 다르게 들린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그 말을 되씹을 수 있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화자의 위치가 어떤가? 아무도 바라보지 않을 때, 바라보지 않는 것이 누구일까? 깊이 있거나 특별히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며, 여전히 촌스러운 키치의 극치다. 그래도 의존할 데를 필요했던 사람이 의존할 수 있었던 말 아닌가. 그에 비해 문학적 가치는 왜 중요할까? 수업에서, 그 말을 들을 때 내가 느꼈던 거만함이 기억에 남고, 그 기억이 씁쓸하고 싫다.
이제 내가 대학원에서 문학 공부를 한지 거의 3년이 됐다. 그동안 문학을 좋아한다고 고백하시는 분을 거의 보지 못했다. 작품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고, ‘재미있다’고까지 할 수 있는데, 이보다는 ‘문제적’이라는 말을 훨씬 많이 듣는다. 문학 작품을 볼 때 감동은 유치한 반응이고, 많이 알수록 싫은 것이 많아야 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배울수록 좋아할 줄 아는 작품이 없어지는 법인가? 프랑스의 철학가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세상에 깊이 있는 것은 성경책과 그리스 전통의 철학밖에 없다. 그 외의 모든 것 다 춤추는 것뿐이다.’ 그럼 깊이는 됐고 차라리 춤 출래 춤 출래 춤 출래. 문학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중요한 무언가를 이미 잊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문학은 경험이라면, 누구의 경험? 언제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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