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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글과 남겨진 순간들 본문
서툰 글과 남겨진 순간들
정재훈 기자
나는 글을 좋아한다. 화자가 글을 통해 삶의 단면을 공유하면, 그것을 읽으며 시공간을 초월한 대화를 체험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그리고 다시 나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들이 특히 좋았다. 그런데 정작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대학원에서 글을 쓸 때면 좋은 글과 내 글을 비교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고, 고민 끝에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나의 글쓰기가 맞는지 의심만 쌓았다. 서툴고 급한 생각들은 글을 자꾸만 앞서나갔고, 내 글쓰기는 주로 마감을 앞둔 촉박한 시간 속에서 그저 구색만 간신히 맞추는 방식으로만 남았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글을 의식하는 강박이나 ‘더 잘 써야 한다’는 조급함을 치밀하게 읽고 쓰는 경험으로 소화해 내지도 못했다. 부끄럽지만 가장 나 다울 수 있는 석사 논문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석사 논문을 쓰는 과정은 ‘견뎠다’에 가까웠다. 그래서 의문이 든다. 연구적 글쓰기는 또 다른 차원이겠지만, 정말 나는 글을 계속 쓸 수 있을까.
그럼에도 어떠한 형태로든 글쓰기를 계속하고 싶다는 고집은 쉽게 꺾지 않으려 한다. 글쓰기는 결국, 삶을 드러내고 누군가를 건져내고 이해하고 기억하는 과정일 테니까. 요즘은 이러한 과정이 꼭 글을 주고받는 방식만으로 가능한 건 아닌 것 같다. 받지 않더라도 그저 내가 쓰면 되는 것이니까. 물론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지울 수 없지만.
며칠 전부터 대규모의 압사 사고로 누군가 깔려가던 공간 속을 뛰어들었던 누군가가 실종되었다가 결국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곱씹었다. 이미 한 달 전, 자택에서 생을 마감한 또 다른 누군가를 마주한 이후였기에,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수 있을지 혼란스러울 때 들은 보도였다. 예전 같았으면 며칠을 혼자 틀어박혀 울다가 끝냈을 것이지만, 이제는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여전히 그 죽음을 ‘놀다가 벌어진 사고’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유로 비난을 멈추지 않았고 여론을 만들어갔다. 그들은 자신을 죽은 누군가와 철저히 다른 존재로 분리한다. 스스로를 “핼러윈 따위에 휘둘려 놀러 다니지 않는 사람”으로 정체화하고, 참사의 책임을 개인으로 수렴시켜버린다. 그렇게 ‘나와 그들은 다르다’는 감각은 애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처럼 애도되지 못한 채 떠도는 담론과 감각은 다시금 서울 한복판을 휘돈다. 올바른 애도의 방식은 때로는 정치적일 수도, 때로는 감정적 동요나 연대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늘 ‘정치적으로 올바르기만’ 해야 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논의가 시기상조라는 말도 일면 타당하다.
그럼에도, 나는 쓴다. 그들의 이름이 잊히지 않도록,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사라지지 않도록. 쓰는 일은 견디는 일이고, 견디며 쓸 때 무언가 남을 수 있지는 않을까. 서툴고 생각이 앞선 글이라도, 기억하기 위해서 쓰는 순간들을 붙잡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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