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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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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면/쟁점기획

쌍용자동차 파업을 돌아보며, 노동존중 사회로 나아가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25. 11. 6. 19:58

3면 쟁점인터뷰

 

기획의 변: 91, KG모빌리티(구 쌍용자동차)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의 손해배상안에 대한 청구를 취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쌍용자동차 파업이 일어난 지 16년 만의 진전이었다. 한편, 지난 정부에서 반복적으로 계류되던 노란봉투법이 8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내년 310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은 쌍용자동차 파업에 기원을 두었다고 알려졌다. 이에 본지에서는 파업 당시 조직쟁의실장으로 파업을 주도하였던 김득중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의 인터뷰와,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을 변호하였던 권영국 정의당 대표의 기고문을 엮어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들을 살펴보았다.

 

쌍용자동차 파업을 돌아보며, 노동존중 사회로 나아가기

 

91KG모빌리티(구 쌍용자동차)2009년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대한 약 4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채권을 집행하지 않기로 하며, 16년간 노동자들을 옭아매던 손배소의 굴레가 마침내 해소되었다. 한편 이 사건은 내년 3월 시행을 앞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제정의 계기였다. ‘노란봉투법이라는 명칭은 2014년 법원이 쌍용차 노동자에게 47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자, 한 시민이 노동자를 돕고 싶다며 47천 원을 넣은 노란 봉투를 언론사에 전달한 일화에서 유래하였다. KG모빌리티의 손해배상 청구 철회로 노동자들은 16년에 걸친 긴 투쟁을 끝낼 수 있게 되었으며, 민주노총은 이를 손해배상 보복의 시대를 끝내기 위한 이정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16년간 이어져 온 쌍용자동차 투쟁을 다시 돌아보고, ‘노동 존중사회로 나아가는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김득중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을 만났다.

 

쌍용차 파업에 대한 기억

 

 

▲ 김득중 지부장이 KG모빌리티 본사 정문 앞에서 파업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2000년대 이후의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절박한 구호 아래 행해진 77일간의 파업 투쟁은 폭력적인 진압 과정과 손해 배상 청구로 이어졌다.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상처를 남겼으며 3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망하기도 하였다. 먼저 쌍용자동차 투쟁의 경과와 그 의미에 대해 물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당시의 회사 상황뿐만 아니라 정부의 대응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2008, 쌍용자동차의 경영 사정이 악화하자 쌍용은 대주주였던 중국 상하이 자동차에 회사를 매각하려 하였습니다. 노동자들은 매각에 반대했죠. 한국과 중국의 경영진들이 도면을 유출하려는 현장을 포착하는 등 회사를 지키려 힘썼습니다. 그러던 중 2009, 상하이 자동차는 쌍용자동차를 법정관리 상태로 만들고는 중국으로 철수해 버렸습니다. 사측이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 법원이 들어서자, 노동자와 회사 사이의 대화는 당연히 이루어질 수가 없었죠.

당시 정부의 태도도 문제였습니다. 2008년은 광우병 사태가 발생한 해였습니다. 여러 집회가 일어나 이명박 정부가 위기의식을 느꼈던 시기입니다. 정부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강경한 태도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표적으로 20091월의 용산 참사를 떠올릴 수 있죠. 이후 용산 참사에 투입되었던 크레인과 경찰특공대가 그대로 쌍용차로 투입된 것입니다. 이처럼 정부의 노동조합 탄압이 정권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며 점차 거세졌고, 이에 노사가 만나더라도 대화의 진전이 불가했습니다. 아무리 협상을 한들 모든 최종 결정권은 정부가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파업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은 평소에 비해 매우 높은 단합력을 보였습니다만, 사측은 정리해고 대상자와 그 제외 대상을 구분하며 갈등을 부추겼습니다. 이때 정리해고 대상자를 죽은 자’, 해고를 피한 사람을 산 자로 구분하는 이분법이 생겨났죠. 산 자와 죽은 자의 구분을 짓자, 노동자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뭉쳐있던 많은 노동자들이 산 자의 길을 택하기 위해 사측의 편에 섰지요. 그러한 노동자 사이의 갈등은 안전망이 없는 이 불안정한 구조에 대해 너는 싸울래, 아니면 나가서 너 살 방법을 찾을래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표출되었습니다. 결국 해고된 3천여 명의 노동자들은 전국으로 흩어졌죠. 쌍용자동차 근무 이력은 낙인이 되어 이들의 재취업을 가로막았습니다. 세상을 떠났다고 연락이 온 사람만 30명이었고, 나머지 인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조차 없었습니다.

다행히 쌍용차 사태를 목격한 여러 시민이 우리나라의 미비한 사회안전망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회사의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인건비를 삭감하겠다는 주장까지 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한 만큼, ‘함께 살자라는 구호가 무위에 그치는 상황에 대해 시민들이 분노한 것입니다. 그래서 쌍용차의 싸움은 당사자들만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시민단체와 각계각층의 국민이 온 힘을 다해 도와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곳곳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이처럼 사회적 연대가 이루어지며 10년이라는 긴 해고 시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행복한 싸움을 했습니다.”

 

손해배상 청구 취하의 또 다른 성과, 노동자 사이의 연대

이번 KG모빌리티의 손해배상 청구 취하 결정은 투쟁 이후 16년만에 이루어낸 성과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와 사측이 지속적인 교섭 끝에 관철해 낸 이 결과를, 현장에서 상황을 지켜봐 온 노동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는 두 가지 손해배상이 청구되었습니다. 쌍용자동차로부터의 청구와 국가로부터 청구였습니다. 국가로부터의 손해배상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파손된 헬기와 같은 기물들에 대한 비용이었는데, 두 손해배상을 합해 42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 청구되었습니다. 다행히 재판을 거치며 재감정을 통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되고, 금액이 재조정되어 많이 적어졌습니다. 특히 국가로부터의 손해배상은 파업 시위 현장의 헬기 투입 등이 지나쳤다는 판단이 내려졌죠. 애초의 금액보다 10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줄어 금속노조에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한편, 쌍용차의 손해배상은 재판이 길어지는 과정에서 불어난 이자가 문제였습니다. 재감정을 거치며 지급 금액이 약 20억 원으로 줄어들었는데 지연이자가 18억 원이 된 상황이었죠. 난감한 상황에서 다행히 청구가 취하되었습니다.

이번 손해배상 청구 취하의 가장 큰 의미는 노사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사실입니다. 기존의 사측은 파업 노동자를 회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사용하였습니다. 터무니없을 만큼 큰 금액을 제시하여, 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부터 이탈하도록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법으로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노사가 대화와 교섭으로 실마리를 풀어낸 것이죠. 사실 더 빨리 해결이 되기를 바랐습니다만, 그래도 대승적 차원의 결정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노사의 교섭 과정에서 노동조합 사이의 협력이 이뤄졌다는 점 또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쌍용차에는 금속노조 이외에 기업 노조가 있습니다. 민주노조(금속노조)보다 더 큰 노조입니다. 이 기업 노조는 보통 공장 안의 임금 교섭이나 단체 교섭을 담당합니다. 기업 노조는 파업 이후 산 자들이 주도하여 몸집이 커진 탓에, 두 노조는 개개의 모든 사안에 대해 의견이 맞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 손해배상 문제에서는 기업 노조가 우리와 함께했습니다. 다른 두 노조가 입장을 모아 노동자(기업노조)-노동자(금속노조)-사업체로 이루어진 협의 테이블을 꾸린 것이지요. 만약 민주노총 하나만으로 교섭을 진행하였다면 더 긴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노조끼리의 연대 자체가 흔치 않을뿐더러, 사측과의 협상에 성공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노란봉투법의 본 취지를 살리기 위하여

2015년 제19대 국회에서 발의되었으나 폐기되었고, 21, 22대 국회 본회의에서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및 재표결 등으로 폐기된 노란봉투법이 곡절 끝에 시행을 앞두고 있다. 법이 현실화되는 시점에서, 이 법이 노동 현장에 가져올 변화의 전망에 대해 물었다.

사실 노란봉투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아시다시피 노란봉투법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를 돕기 위해, 노란 봉투 속에 47천 원의 금액을 넣어 전달한 사례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회사와 국가 손해배상의 1심 금액이었던 47억 원을 10만 명이 모아 갚자는 취지였죠. 이 사례가 기사화되고, 가수 이효리씨의 SNS에 공유되며 빠르게 퍼져갔습니다. 이후 시민단체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가 만들어져 법 개정을 위한 싸움이 시작되었죠. 개인에게 과도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이렇게 출발하였던 노란봉투법은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간 노동자들은 대규모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대해 무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조조정은 경영진의 고유 권한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고유권에 맞선 파업은 무조건 불법이었죠. 하지만 이번 법 개정을 통해 쟁의의 범위가 확대되고, 또 사용자의 범위가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확대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 권리 확보를 위한 교섭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러한 개정들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려도 있습니다. 현재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노란봉투법의 시행을 앞두고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민의힘에서는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와 힘을 모아 법 개정에 총공세를 가하고 있죠. 31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아리셀 참사를 두고, 회장에게 내려진 징역 15년의 판결이 지나치다고 두둔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KG그룹도 체급이 계속 커지는 만큼, 점차 재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보수 언론 또한 이 논지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모든 외국 기업이 철수할 것이기에 한국 경제가 망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번 손해배상 청구 취하가 대화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좋은 선례로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노사의 대립을 벗어나 대화와 교섭의 장이 열렸으니까요. 노사 간에 갈등을 겪고 있는 다른 사업장에게 충분한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노사가 갈등을 반복하는 회사에 외국 자본이 투자하고 싶을 리도 없습니다. 노란봉투법을 통해 노사가 대화와 교섭을 이루고, 그 과정에서 기업의 경쟁력이 올라가 국가경쟁력까지 상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보복의 굴레를 끊고, 노동 존중 사회를 위하여

KG모빌리티는 손해배상 청구를 취하하였지만, 현대자동차, 한화오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등 여전히 많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손해 배상 청구의 굴레에 묶여 있다. “손해배상 보복의 시대를 끝내자라는 이야기는 노동자에게 안전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인 만큼,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아픔 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와 노력이 필요할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해고된 노동자들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다수가 사회로부터의 시선이라고 답했습니다. 대량 해고에 저항하였던 우리를 모욕하기 위하여 사용된 빨갱이라는 표현은 당연한 수식어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비단 쌍용자동차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저희와 함께 싸워준 수많은 시민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아픈 구석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죠.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5년 전에 복직을 마쳤습니다만, 저희는 여전히 전국을 다니며 투쟁과 아픔의 현장에서 함께합니다.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던 기억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픔을 겪고, 또 투쟁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날에도 노동조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여전히 전체 노동자의 조직률은 11에 그칩니다. 90에 가까운 노동자가 노동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파업과 시위를 하지 않으면, 하루의 생활도 버거운 이들의 목소리는 아무도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불안정한 사회 구조에서 함께 살기 위한 투쟁인 것이지요.

정부의 노력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부는 노사 갈등을 중재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2009년의 정부는 중재 대신 경찰특공대와 헬기, 최루액을 앞세워 막을 수 없는 공권력을 투입하였고, 그 영향은 이후 여타의 많은 사업장으로 퍼졌습니다. 함께 살기 위한 투쟁과 생존을 위한 외면이라는 양자택일에 후자를 강요하며 노동자들의 함께 살 권리를 축소한 것이죠. 하지만 2018년에 해고자 복직 합의와 관련하여 이뤄진 협상은 정부에서 중재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노사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서로가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게끔 노력하였죠. 상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정부가 준 것입니다. 노사 갈등 문제에 있어 정부의 역할은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모는 것이 아닌, 갈등을 최소화하고, 혹여 실패하더라도 노동자의 새로운 출발을 돕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기업에는 언제나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세계를 향한 미국의 관세 정책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요즘은 더욱이나 그렇습니다.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는 것입니다. 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현장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탄압의 시대를 넘어, 과거의 악법을 답습하는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식하며 새롭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 노란봉투법이 본래의 취지를 잘 살리는 방향으로 시행되어, 이번 쌍용자동차의 사례와 같이 모범적 사례들을 쌓아나가는 출발선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김민준 기자 kmj0806@korea.ac.kr

이수진 기자 susuleemasur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