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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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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면/연극비평

돌아갈 고향을 잃고

알 수 없는 사용자 2025. 12. 10. 15:45

돌아갈 고향을 잃고

예술의전당·신국립극장 공동제작 <야끼니꾸 드래곤>

김소연

연극평론가

 

 

  정의신의 <야끼니꾸 드래곤>이 다시 무대에 올랐다. 2008년 초연, 2011년 재연 후 세 번째 공연이다. (일본에서는 2016년 공연이 한 번 더 있었다.) 한국 예술의전당과 일본 신국립극장이 공동제작 한 이 작품이 이렇게 여러 차례 다시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보다 한일 양국 관객과 평단의 ‘열광’ 때문일 것이다.

  정의신은 재일교포 3세이다. <인어전설> <20세기 소년소녀 창가집> 등 연극작업만이 아니라 영화 <피와 뼈>(최양일 감독) 각본 등에서도 주목을 받았는데 그의 드라마에서는 자이니치의 삶이 씨줄과 날줄을 이룬다. <야끼니꾸 드래곤> 역시 그렇다. 1970년 오사카만국박람회가 열리기 전후, 간사이공항 근처 한인마을에서 곱창구이집을 하고 있는 용길네 가족의 이야기다. 태평양전쟁에서 팔을 잃은 용길,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온 영순, 용길의 죽은 전처 소생의 시즈카와 리카 그리고 영순이 데리고 온 미카, 용길과 영순 사이에서 태어난 토키오가 한 가족이다. 여기에 시즈카를 사랑하면서도 리카와 결혼한 룸펜 인텔리 테츠오, 밀항선을 타고 흘러든 불법이민노동자 대수와 일백, 그리고 리카의 연인 하세가와 그리고 마을사람들이 이 낡고 허름한 곱창집에 모여들어 먹고, 마시고, 화내고, 싸우고, 울고, 웃고 그러다가 노래하고 춤춘다. 

  용길네 가족들 그리고 이곳을 드나드는 이들의 가난은, 경제적 궁핍만이 아니라 끝으로 끝으로 밀려나는 이들의 삶의 가혹함일터인데, 용길네 곱창집의 떠들썩함은 밀려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면서 그 힘에 맞서 삶을 지키내는 몸부림이다. 결국 마을과 곱창집은 철거되고 용길과 영순은 단촐한 세간살이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이곳을 떠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무대 가득 흩날리는 벚꽃은 밀려나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라기보다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을 위한 화사한 배웅 같았던 것은 용길과 영순이 거인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역사의 격랑을 헤치며 끝내 살아낸 이들이 거인들 말이다.

  용길네 가족의 어긋나면서 이어지는 핏줄에는 일제식민지,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등 현대사의 격랑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거친 파고는 이들이 살고 있는 지금, 1970년에도 여전해서 차별과 혐오 속에서 토키오는 말을 잃고 지붕 위에서 제 몸을 던지고, 세 딸은 각각 북으로 남으로 그리고 일본의 또 다른 곳으로 떠난다. 이 모든 사건들은 일제 식민지에서 연원을 두고 있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용길과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영순이 전기도 안 들어오고 수도도 설치할 수 없는 공항 옆 국유지에 터를 잡고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고,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고향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제 고향엔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이웃도 없다. 마을도 없어졌다. 연극이 직접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용길과 영순 그리고 그 가족들의 삶에는 4.3사건이 이렇게 깊게 새겨져 있다.

  <야끼니꾸 드래곤>만이 아니다. 23년 부산, 24년 제주에서 공연된 오사카에서 활동하는 극단 달오름의 <바람의 소리>는 일제시대 일을 찾아 혹은 일제의 검거를 피해 일본으로 들어온 이들로 거슬러 올라 4.3사건이 어떻게 자이니치 한인들에게 몰아쳐 왔는지를 그린다. 양영희의 가족 3부작 중 마지막에 발표된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양영희는 부모님들의 완고한 정치적 지향의 연원으로서 4.3사건을 마주한다. 김석범의 『화산도』는 4.3사건을 다루면서 이 사건이 제주도라는 섬에 한정되지 않고 서울, 북은 물론 재일교포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세세하게 그려낸다. 모두 재일교포 작가들이다. 

  정의신은 인터뷰에서 K팝과 한국화장품의 유행으로 일본 젊은이들에게 한국은 동경하는 나라가 되었고, 일본 문화가 한국에 소개되면서 일본도 한국 젊은이들에게 더 가까운 존재가 되었지만 그동안 어느 쪽에서도 재일한인들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연극을 쓰고 만드는 것은 재일한인들의 삶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정의신이 말하고 있는 양국 모두에서 잊혀진 재일한인들은 동포에 대한 ‘관심’의 문제만은 아니다. 여전히 불안정하고 갈등하는 한일 양국의 정치적 외교적 문제만도 아니다. 도리어 재일한일들의 삶이 지워진 한국의 현대사는 공백을 그대로 남겨둔다는 점에서 우리 자신의 문제이다. 4.3사건만을 놓고 보더라고 그렇다.

  4.3사건 희생자에 대한 추모제가 공개적으로 열린 것은 1989년 ‘제41주기 4.3추모제’이다. 그후 1990년 12월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다. 이 사건이 국가의 공식적인 기억이 되기까지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야 제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참혹한 비극에 압도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재일교포 작가들의 작업에서는 사건의 공간이 확장되면서 해방기 새로운 국가 수립에 대한 여러 열망들을, 그 열망의 좌절이 남긴 상처를 좀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시선의 확장에서 재일교포 작가들의 작업은 매우 소중하다. 

  비단 재일교포 사회만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정진호 연출)이 다루고 있는 대전 산내면 골령골 학살 사건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수형자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대전형무소에는 4.3사건, 여순사건, 그리고 보도연맹에 연루된 이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인선의 어머니가 오빠의 흔적을 찾아 경산코발트광산 학살사건의 유해를 찾는 것과 겹쳐지는 사건이다. 4.3은 제주에 한정되지 않고 계속 이어졌던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간사이공항을 오르내리는 비행기의 굉음이 더 두드러지게 다가왔다. 시시때때로 울리는 비행기의 굉음은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 비행장 옆 빈민촌이라는 장소성을 환기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비행기는 낡은 판자집들을 부술 듯이 뒤흔들며 날아가고 말을 잃은 토키오는 비행기를 향해 비명을 지르지만 굉음에 묻혀버린다. 그 굉음이 집어삼키는 것은 토키오의 비명만은 아니다. 지금도 상처가 상처인 줄도 모르고 상처를 상처라 말하지 못하는 수 많은 삶들은 내달리는 속도는 집어삼키고 있을 것이다. 소리는 1970년 오사카비행장을 날아오르는 비행기에서 들리는 것이지만, 지금 여기 우리 삶을 무섭게 뒤흔들며 날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