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발령의 법적 성격과 정당성에 관한 연구

대기발령의 법적 성격과 정당성에 관한 연구

 

법학과 사회법전공 박사

노승민

 

1. 논문 내용

 

사용자는 근로관계가 갖는 계속적 채권 관계로서의 특성에 기하여 사전에 근로계약에 모두 포함할 수 없는 사항들에 대해서도 일방적으로 지시할 수 있는 권한, 즉 인사권을 갖는다. 이러한 인사권은 구체적인 업무지시 등 적극적인 형태로 행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기업의 경영상 내지는 업무상 필요에 따라 근로자를 업무로부터 배제하는 소극적인 형태로 행사하기도 한다. 노동실무에서는 이러한 소극적 형태의 인사권 행사이자 사용자가 부여한 기존 업무로부터 배제하는 처분으로 대기발령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기발령에 법원이 부여한 상당한 재량권의 의미가 노동실무에서는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본질적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게 불이익을 수반함으로써 징계나 해고의 우회적 수단으로 남용되어 온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대기발령에 대한 명확성과 체계적 판단기준의 부재에 기인하는 바,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본 논문에서는 대기발령의 법적성질 및 정당성 판단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대기발령은 노동력의 원활한 재배치 및 업무상 장애 예방을 목적으로 사용자의 일방적 지시에 의하여 근로자를 업무로부터 배제하는 일시·잠정적 처분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인사권 영역에 속하며, 기업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징계와 구분된다. 대기발령은 기업의 인적·물적자원의 보호가 주된 목적이므로 이는 사용자의 자기보호적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근로자가 잠정적으로 대기명령 수행이라는 기존의 업무수행 방식과 변경된 형태로서의 노무급부를 이행한다는 점에서 임금위험 또한 사용자가 부담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기발령은 확정적 인사처분인 전직, 노무급부의 중단 상태인 휴직 그리고 제재 처분으로 행해지는 정직과는 구분된다.

 

대기발령의 법적 성질은 인사권으로서 징계와는 구분된다. 그러나 노동실무에서 대기발령이 징계로 주장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불이익’에 기인한다. 징계는 사업장 내 공동 질서위반에 대한 제재로서 취업규칙 등 협약에 근거해야 한다. 따라서 대기발령이 취업규칙 및 단체협약에 징계로서 규정되지 않는 한, 법적 성질은 여전히 인사권에 속하는 것이고, 만약 사용자가 불이익을 목적으로 대기발령을 행사함으로써 이른바 ‘징계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경우에도 징계로 해석되기는 어렵다. 결국, 불이익을 수반하는 대기발령은 인사권의 정당성 판단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계약법적 구조에서는 취업규칙상 대기발령 사유와 임금의 감액, 승급의 제한 등 불이익의 설정은 계약당사자에게 법적 효력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노동법의 관점에서 볼 때 불이익한 인사처분은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의 규율대상이 되며, 이때 근기법 제23조 제1항의 체계성 측면에서 볼 때, 해고, 징계, 전직뿐만 아니라 불이익한 모든 인사처분을 판단의 대상으로 수용하는 예시적 규정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불이익을 수반하는 대기발령 또한 제23조의 통제 대상이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판례는 인사명령에 대한 정당성 판단 법리로서 근기법 위반 및 권리남용 해당 여부를 제시하는 바, 이를 기초로 정당성 판단 기준을 설정한다면, 인사권으로서의 대기발령이 유효하기 위한 전제로서 근기법 제23조에서 요구하는 ‘정당한 이유’를 갖추어야 하며, 이때 정당한 이유를 판단하는 기준은 ‘권리남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대기발령의 본질은 업무상 장애 방지에 주된 목적이 있다. 이러한 대기발령의 필요성은 대기발령의 유형에 따라 다르게 구성될 수 있는바, 본 논문에는 기업의 취업규칙을 토대로 직무수행능력 및 근무성적의 부족, 근무태도의 불량, 형사기소 및 징계의결이 요구된 경우 등으로 유형을 분류하고 법원의 판결 그리고 노동위원회 결정 등 대기발령 사례의 분석 및 검토를 토대로 유형별 정당성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

 

또한, 생활상 불이익과 관련된 가장 근본적인 쟁점으로서 대기발령을 이유로 한 임금감액의 문제가 발생한다. 대기발령의 본질은 직무에서의 배제이고 이는 일방적인 인사권 행사로서 사용자의 경영상 장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사된다는 점을 볼 때, 근로자는 여전히 노무제공 의무는 이행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소정근로를 전제로 한 고정적 임금은 전액 지급되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실질적 업무에 수반되는 변동성 임금(직책수당, 상여·성과급 등) 에 대한 합리적 보호 방안으로서 휴업수당 준용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인사권으로서의 대기발령 행사의 정당성 판단 구조  

 

2. 저자 인터뷰

 

전공선택 계기

노동법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제 직업인 공인노무사와의 연계성입니다. 2004년 본교 노동대학원에 입학했으니 학문으로써 노동법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17년이 되었습니다. 노동법은 현실 문제해결 중심의 실사구시형 연구를 추구할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주 최대 52시간제 적용, 직장 내 괴롭힘, 플랫폼노동, 재택근무 등의 이슈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실과 맞닿아있습니다. 이처럼 사회변화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는 역동적인 법이기에 이론적, 실무적으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발전시켜나갈 여지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논문 주제 선정이유와 논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 저 역시 논문 주제 선정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노무사로 활동 중인 저를 고려한 지도교수님의 조언에 힘입어 노동사건과 연관성이 높은 이슈로 ‘대기발령’을 논문 주제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대기발령은 기업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지만, 용어 자체가 노동법에 명시된 바 없고, 체계적 판단기준이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대기발령의 본래 취지는 인력재배치 또는 업무상 장애(징계절차 중인 경우, 성희롱·괴롭힘 사건 후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등)의 예방을 위해 일시적으로 업무로부터 배제하는 처분입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노동력 퇴출을 목적으로 임금의 삭감, 괴롭힘 수반 등 ‘불이익’을 주는 형태로서 대기발령을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인식에 입각하여 본 논문에서는 대기발령의 개념 및 법적성격을 규명하고 업무상 필요성, 생활상 불이익, 기간의 합리성 측면에서 정당성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어려움

첫째, 글쓰기 자체가 주는 고통입니다. 2년간 박사과정 이수를 위해 총 12개 교과목을 수강하며 나름 어렵게 작성해 온 발제문들은, ‘학위논문을 위한 기초적인 트레이닝’에 불과했습니다. 총 200페이지가 넘는 지면에 담긴 글 속에 논리적인 구조와 유기적 연결 및 일관된 흐름이 있어야 하고, 본인만의 관점이 드러나야 하며, 세 차례의 논문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의 검증 대상이 된다는 점은 매 순간 저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었습니다. 지도교수님께서 강조해 오셨던, “코스웍 과정이 20이라면 논문은 80”이라는 말씀이 새삼 깨달아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많은 분들이 겪는 어려움이겠지만, 저 또한 시간과 싸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2년간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결혼하여 가정이 생겼고, 아내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이 무렵 회사에서 이직하여 개업 노무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업무에 투입하는 시간도 늘어났고 그때마다 논문은 ‘오늘 당장 해야 할 리스트’에서 멀어지곤 했습니다. 물론, 돌이켜보면 아내를 비롯한 가족의 지지와 배려가,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이자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논문쓰기를 앞둔 후배들에게 조언

치열한 글쓰기는 나 자신과 싸움이지만, 나 홀로만의 싸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학생이 논문을 쓸 수 있도록 인프라와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고, 학생 입장에서는 이를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지도교수님께서 주관하시는 연구실 박사학위 논문세미나에 꼬박 참여하면서 논문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고, 함께 수학하는 원우님들과 박사과정 연구주제를 공유, 발표 및 의견을 듣는 기회를 가졌는데, 뒤돌아보면 이러한 과정은 논문을 진행시키는 데 있어서 상당한 자극제이자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1년 봄, 함께 논문지도를 받으며 동고동락한 선배님들과 학교 근처 사진관에서 박사학위가운 촬영을 했습니다. 논문을 쓰다가 힘에 부칠 때마다 언젠가 맞이할 이 순간을 머리 속에 그려왔었고, 이는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데 꽤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험난한 여정을 서로 의지하며 이겨낼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다면 논문이라는 치열한 과정을 이겨낼 수 있는 크나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인터뷰·정리: 김연광 기자 dusrhkd99@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