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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모빌리티의 권리와 공동체 윤리 본문

6면/예술동향

모빌리티의 권리와 공동체 윤리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6. 3. 23:15

2022224일부터 424일까지 아르코 미술관에서 진행한 전시 투 유: 당신의 방향는 팬데믹 이후 변화한 지역 불균형, ·오프라인 및 플랫폼 노동, 사회적 소수자 등을 둘러싼 이동의 문제와 의미를 고찰하는 전시이다. 이 전시와 연계하여 모빌리티라는 개념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나눠보고자 지난 415일에 아르코미술관과 건국대학교 모빌리티 인문학 연구원은 학술대회 <모빌리티 권리와 공동체 윤리>를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이번 호 예술동향에서는 미술관과 대학이 연계하여 융합적 세계관을 모색한 본 학술대회를 알리고, 그중 안진국 미술비평가와 임보미 연구자의 발표를 소개하고자 한다.

전시 투 유: 당신의 방향소개

팬데믹으로 이동이 제한되어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동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모빌리티라는 단어는 여러 단어들과 결합하여 우리가 상상하는 기술의 현전을 만든다. 모빌리티는 사전 상 이동성’, ‘유동성으로 번역되며 큰 범위의 의미를 보유하고 있다. ‘이동은 모든 생물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행위이자 권리이며, 팬데믹 이전에는 의식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소와 말 등 비인간 동물을 통한 이동에서부터 마차와 자전거, 자동차, 기차, 비행기까지 인간은 움직임과 이동의 범위를 확장하여 역사를 형성해왔다. 전시 서문에 따르면 투 유: 당신의 방향에서는 이동 수단으로서의 모빌리티의 미래와 그 기술의 가능성을 논하려는 전시가 아니라 주체적인 행위라고 믿었던 나의 이동이 통제될 수 있음을 확인하며 이에 따라 변화한 사회와 그 경험의 단면을 들여다보고, 이동의 구조가 과연 모두에게 평등한가를 질문하고자 한다. 전시에 참여한 김익현, 김재민이, 정유진, 송예환, 닷페이스, 유아연, 오주영, 송주원 작가는 각자가 경험한 이동과 관련된 문제들을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다. 수도권으로의 이동, 떠나야 하거나 혹은 남겨져야 하는 존재들, 팬데믹 이후 더욱 각광받는 플랫폼 노동이 타인의 신체를 대여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 오프라인의 대안처럼 부상했지만 실상 제한적인 웹(web)의 구조를 전복하고 감각 체계의 충돌을 재고하는 이미지, 사회적 소수자들의 신체와 상황이 고려되지 않는 모빌리티 상황을 전복하는 방식을 살피고 있다.

 

<관광객과 방랑자: 모빌리티 자본의 불평등과 이동의 위계성>

안진국은 이번 발표에서 과거부터 존재했던 이동성의 모빌리티가 재정의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전회(turn)’라는 개념의 의미를 고찰하고, 모빌리티와 물질적 전회의 관계성 탐색하며, 모빌리티 자본의 형성 과정과 모빌리티의 불평등을 분석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신체들은 이동에 제한받게 되었지만, 택배와 OTT와 같은 데이터 물류들은 더 많은 이동을 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부동성과 이동성은 겹쳐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빌리티의 불평등은 누군가가 쉽게 이동하게 하면서 다른 누군가의 이동을 제한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모빌리티를 가장 먼저 연구한 사람은 존 어리(John Urry), 이 발표에서는 존 어리의 논지를 따라가고자 한다. 그가 쓴 모빌리티mobilities(2007)에 따르면 모빌리티(1) 이동하거나 이동할 수 있는 능력, (2) 떼 지어 몰려다니는 무리 즉, 무질서한 집단을 의미하는 군중(mob), (3) 수직적인 지위 계층으로서 사회적 의미, (4) 반영구적인 지리적 이동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을 가진 모빌리티에 대한 연구는 한 축은 움직이는 물질과 관련된 탐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다른 한 축에서는 물질들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나 제한되는 상황이 낳고 있는 이동/부동의 불균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먼저, 존 어리는 모빌리티 전회(turn)’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전회는 리처드 로티가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를 사용하면서 널리 사용된 용어이다. 모빌리티는 언어적 인식의 산물이라는 언어적 전회가 아닌 물질을 주체로 하는 생기·능동성·생산성·행위자성을 지니고 있는 물질적 전회의 흐름을 타고 있다. 또한 모빌리티는 포스트 휴먼의 개념을 도입하여,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 도라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사이보그,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리좀(Rhyzome)과 같은 논의들을 반영해서 모빌리티 시스템의 물질성(materiality)’혼종성(hybridity)’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한편 존 어리는 모빌리티 불평등에 대해 사회적 자본인 네트워크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창안하였다. 이 개념은 새로운 모빌리티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모빌리티의 확산보다는 새로운 순환 수단이나 순환력을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중요시하는 개념이다. , 반드시 인접해 있지는 않지만 감정적·재정적·실제적인 혜택을 가져다주는 사람들과의 사회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역량을 네트워크 자본인 것이다.

모빌리티의 범주는 신체뿐만 아니라 교통, 도시, 국경, 나아가 지리적 생태계까지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도시 시스템, 탄소 자본 권력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기후위기와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스마트 시티’, ‘감응 도시와 같은 코드화된 도시는 신체들을 차별하고 불평등한 통제와 인종화, 젠더화된 모빌리티 체제를 갖추게 되게 된다.

미미 셀러(Mimi Sheller)는 모빌리티 불평등이 이동뿐만 아니라 부동의 불평등을 ‘(im)mobility’의 개념으로 논지를 펼친다. 권력이 부재한 이들은 자기의 이동과 머묾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모빌리티 자체는 자유롭거나 평등하지 않으며, 모빌리티 배제에는 인종주의, 식민주의, 성차별주의, 능력주의 등의 폭력적인 역사적 맥락이 숨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모빌리티 불평등 안에는 모빌리티 부동성의 권력이 잠재되어 있다.

현대 국가와 도시 그리고 그 속의 인프라들이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있으며 그러한 시스템에 따라서 이동하도록 압력을 받거나 강요당하기도 하고 배제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모빌리티는 인간의 다양한 사물과 기술과 관계를 맺고 있는 복잡한 결합체를 형성하는 방식에 대한 사유인 동시에 다층적인 스케일에서 사회의 불평등을 밝히는 도구인 것이다.

<장애()의 교통 모빌리티에 관한 법제와 현실>

 

임보미는 모빌리티 개념을 장애와 장애인의 현행법적 정의와 관련지어 학술적으로 고찰한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망 사고가 일어난 후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모빌리티 테크놀로지는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2001년에 세그웨이(Segway)라는 퍼스널 모빌리티가 발전된 이래 2021년에는 자율주행 자동차와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소형 비행체가 개발 중에 있다. 지금 계획대로라면 아마도 수년 내에 첨단 모빌리티 기기들이 서울 도심을 활보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장애인 이동권이 증진되지 않는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닐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 요구에서는 20년 전과 동일하게 승강기저상버스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제도적 준비와 예산 문제들을 거론하는데 임보미는 어째서 장애인을 위한 예산의 편성이나 집행은 그토록 뒷전일 수밖에 뒷전일 수밖에 없을까’, ‘그것이 혹시 우리가 장애인을 그렇게 처우해도 괜찮다는 시선이 담긴 법률을 제도화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며 발표를 시작하였다.

먼저 발표에서는 장애인 이동권의 법적 근거가 되는 법원과 법 체계를 살펴본다. 장애인 이동권의 근거는 다양하게 펼칠 수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교통약자법에 근거한다. 교통약자법 제2조는 장애인을 교통약자 중 한 유형으로 예시를 하고 있으며, 3조에서는 장애인을 포함한 이러한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설명 하고 있다. 따라서 법률 안에서는 장애인은 교통약자의 한 범주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장애인등편의법에서는 접근권을 규정하고 있으며, 여기서도 장애인은 노인, 임산부 등과 같이 접근권의 한 주체가 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법은 장애인이 누구인가라는 개념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별다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현행법상의 장애나 장애인에 대한 개념 정의는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와는 별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장애나 장애인의 개념은 사회적 합의나 인식에 따라 가변적일 수 밖에 없다.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의료적 모델사회적 모델로 나눠서 볼 수 있다. 의료적 모델은 장애를 개인의 생리적 또는 인지적 기능을 방해할 수 있는 건강 상태나 질병의 결과로 보는 관점이다. 이에 반해 사회적 모델은 손상과 장애의 개념을 분리해서 접근한다. , 개인의 신체적 문제를 손상이라고 보고, 손상 있는 자들에 대해서 사회 통합을 방해하는 사회적 장벽을 장애라고 바라보고 있다. 사회적 모델은 사회 구조에 기인한 장애를 제거해서 손상이 있는 자들도 아무런 제약 없이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의 정책을 지향하게 된다. 따라서 세계적으로는 의료적 모델에서 사회적 모델로 전환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국내 현행법상의 장애 개념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의 범주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반법의 지위에 있는 장애인복지법장애인차별금지법을 살펴보아야한다. 장애인복지법 제21항에 따르면 장애인이란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를 따르면 장애인의 사회활동이 어려운 이유가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나 차별 때문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장본인에게 있다고 본다.

한편, 장애인차별금지법 21항에 따르면 장애는 신체적 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 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라고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문리(文理)적으로 상당한 제약을 신체적, 정신적 손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한다면, 여전히 장애를 개인적 문제로 보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가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 상당한 제약의 원인을 장애인에 대한 부당한 처우나 차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하면, 차별당하는 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되어 논리적 모순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임보미는 이 법안도 의료적 모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음으로 임보미는 앞서 살펴본 현행법상 장애 개념이 구체적인 이동 증진 정책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현행법상 장애 개념은 의료적 모델에 입각해있기 때문에 장애를 제거하는 방향이 아니라 기존 시스템을 유지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추가적 또는 보충적으로 더해주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그리고 장애인 콜택시, 복지콜이다.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는 이를 타기 위해서는 역무원을 호출하여 대기 후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고, 경고 벨소리로 인해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또한 장애인 콜택시는 법정 기준으로는 100% 상회하는 보급률을 보이고는 있지만, 관할 지자체별로 다르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타 지역으로 이동할 때 지자체에 맞게 택시를 바꿔서 타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이러한 이동수단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미리 지역 관할 지자체에 보행이 불가능하다는 서류를 모두 제출하는 일을 해야한다.

반면, 저상버스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유니버셜 모빌리티 기기이다. 과거부터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서는 저상버스 도입을 요구하고 있는데, 도입률은 작년 말 기준으로 전국 27.8%라는 낮은 도입률에 머무르고 있다. 해외 사례를 보자면 일본의 경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디서나 탈 수 있는 토요타 JPN 택시가 있으며, 독일에서는 버스뿐만 아니라 트램, 전철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법원은 전통적으로 기본권을 자유권적 기본권과 사회적 기본권을 나눠서 구분하고 있는데, 비장애인의 이동권이 자유권적 기본권에 속한다면, 장애인의 이동권은 사회적 기본권에 속한다. 따라서 비장애인의 이동의 제한은 신체의 자유라는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한 행위로 여겨지고 있는 반면 장애인의 이동권은 부동 상태에서 이동성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문제로 제기된다. 이러한 방향은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를 돌봄이나 복지의 차원으로 축소되게 만든다. 특히 법적 심사를 할 때 사회적 기본권에서는 과소 보호 금지 원칙을 적용하는데, 이 원칙은 국민의 법익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보호 조치를 취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적 기본권은 국가 목표의 최우선적 배려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임보미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관련된 소송에서 이러한 법적 구분 때문에 유리한 판결을 얻어낼 수 없는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장애인 인동과 비장애인의 이동이 동등한 차원에서 논의되기 위해서는 현행법상의 장애인 개념부터 수정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정리 : 황지원 기자 h950301@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