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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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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면/예술동향

디지털 네이티브와 영상문화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4. 3. 13:09

 지난 312일 한국영상문화학회는 디지털 네이티브와 영상문화를 주제로 2022년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본 학술대회에서는 특별주제로 그로테스크와 현대 영상문화세션을 마련하였으며, 본 주제에서는 ‘MZ세대와 영상문화를 주제로 많은 연구자들이 본인의 연구를 발표하였다. 이에 본지에서는 주목할 만한 연구 세 편을 뽑아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사회 현상으로서의 그로테스크 : 그로테스크 예술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그로테스크는 주류적 표현 양식에 도전하는 새로운 시도로 매너리즘, 바로크, 낭만주의, 상징주의, 다다, 초현실주의 등과 같은 문예사조의 등장기마다 전위적 역할을 담당하다가 금세기에 이르러 독자적 예술사조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연구자 김문조는 일상현실에서 포착되는 그로테스크 행태의 원인, 특성 및 파장으로서 먹방사례를 논의하고, 다니엘 스포에리(Daniel Spoerri)'이트 아트(Eat Art)'와 쥘리아 뒤쿠르노(Julia Ducournau)감독의 영화 <티탄> 사례를 덧붙여, 사회적 그로테스크와 예술적 그로테스트의 연관성을 탐지해보았다.

사회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결되어 있는 여러 장()들이 중첩된 다차원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피에르 부르디외는 개인은 자신이 귀속된 장에서 점유하는 위치에 따라 상이한 행동 전략을 택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사회적 그로테스크와 예술적 그로테스크의 차이는 예술작품의 창작과 감상을 주축으로 하는 예술장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플랫폼인 사회장 참여자들이 각기 어떠한 목표를 추구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예술적 표상으로서의 그로테스크(Artistic Representation of Grotesque, ARG)’는 심미적 기대지평의 제고를 통한 반()미학의 미학화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일련의 교제적 행위로 구성된 사회장에서 돌출하는 사회적 표상으로서의 그로테스크(Social Representation of Grotesque, SRG)’는 규범적 경계의 혁파를 통한 비()정상의 정상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ARGSRG 모두는 도전과 전복이라는 정명을 공유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심미적 영토의 확장이라는 보탬의 논리를 견지하는 것인 반면, 후자는 규범적 경계의 철회라는 제거의 논리를 지향한다. ARG의 예시는 비대칭적 전사(轉寫) 데칼코마니 화풍의 르네 마그리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초미주의의 개척자 백남준을 들 수 있다. SRG 사례로는 키덜트, 충식(蟲食), 노숙, 졸혼, 멍때리기, 사이보그, 메타버스 등을 들 수 있다.

사회적 그로테스크의 사례로서 먹방은 질, , 멋을 따지지 않고 마구 먹어대는 것이 핵심이다. 일부 먹방 크리에이터들은 후룩후룩 쩝쩝하면서 의도적으로 먹는 소리를 크게 내는 것이 먹방의 포인트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아름다움의 추구를 전적으로 외면하는 엽기로서의 먹방은 예술장의 바깥에서 확인할 수 있는 SRG의 표본이다.

한편, 사회적 그로테스크의 발현은 하나는 먹방의 경우처럼 사회장 내부에 소재한 원천으로부터의 내인적 경로(endogenous path), 다른 하나는 위에 언급한 작품들 같이 예술장에서 생성된 ARG가 사회장으로 유입되면서 SRG로 재탄생하는 외인적 경로(exogenous origin)로 대별할 수 있다. 내인적 SRG의 경우, ‘먹기(eating)’를 예술로 승화시킨 Eat Art의 창시자 다니엘 스포에리의 작품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베르사이유 부근 풀밭에서 40m 가량 되는 식탁에 20개가 넘는 요리를 준비한 <그림-덫의 매장>에서는 식사를 끝낸 후 풀밭에 구덩이를 파고 다시 식사하기 전 상태의 풀밭으로 되돌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라는 부제가 달린 이 작품은 급변하는 현대적 일상 속에서 생에 대한 욕구의 전형인 식욕이 매몰되는 광경을 통해 성대한 만찬의 순간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주지시키고자 했다.

외인적 SRG의 경우, 바디 호러의 대가로 주목받는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영화 <티탄>을 들 수 있다. 영화는 어릴 적 교통사고로 뇌에 티타늄을 심은 뒤 자동차와만 교감할 수 있게 된 주인공 알렉시아에 대한 이야기다. 자동차와의 관계로 임신을 하게 된 알렉시아의 몸에는 양수 대신 검은 기름이 흘러나오고, 마침내 기이한 모습의 아이가 태어난다. 자연분만을 통한 사이보그 포스트휴먼 2.0의 탄생인 것이다. 이처럼 엽기적 작품을 발표한 뒤쿠르노 감독은 황금종려상 시상대 앞에서 괴물성은 규범이라는 벽을 밀어내는 무기이자 힘이다. 괴물을 받아들여 준 칸영화제에 감사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는 예술적 그로테스크의 재림을 고하는 축문이었던 것이다.

엽기적인 사회적 그로테스크를 예술의 힘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사회적 그로테스크의 이력에 따라 달라진다. 예술적 그로테스크의 사회적 전회를 촉구하는 사회미학적 경로에서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공감이다. 그러나 사회적 그로테스크의 예술화라는 역방향 과정의 핵심 요건은 변혁 의지를 일깨우는 실천적 자각(awakening)으로서, 이 점은 미셀 푸코의 자유를 위한 예술,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생성적 욕망을 향도하는 예술 및 자크 랑시에르의 정치로서의 예술에 관한 논의의 공분모로 드러나는 실천예술의 정신적 역량과 직결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Tableau piège – Sevilla Serie Nr. 16 (1991), Photo: R. Sosin; © Daniel Spoerri und Bildrecht Wien, 2021

<경영 시뮬레이션 장르와 자동사냥 게임속 플레이어 주체의 문제>

전통적인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을 조작하여 사냥이나 전투’, ‘수집행위를 하였다. 그러나 최근 유행하는 자동사냥’, 혹은 방치형게임은 알고리즘으로 자동화하여 직접 조작이 아닌 관리하는 방식으로 초점이 옮겨졌다. 심지어 게임이 실행되지 않는 순간에도 플레이가 진행되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게임 플레이 자체에 관해 물음을 낳는다. 한편, ‘심시티시리즈, ‘시티즈: 스카이라인등으로 대표되는 경영 시뮬레이션장르는 장르명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관리, 경영하는 행위를 주요한 플레이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방치형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손에 의해 직접 조작되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게임이 지속되는 독특한 특성은 전통적인 경영 시뮬레이션 장르에선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연구자 안준형은 방치형 게임을 기존의 게임 매체적 측면과 상품 형태적 측면에서 각각 살펴보고자 한다.

주로 PC를 통해 플레이되었던 경영 시뮬레이션 장르와는 달리 방치형 게임은 대부분 모바일 특정적이다.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매체적 조건은 방치형 게임의 출현을 가속화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게임 플레이를 구현할 수 없는 매체적 한계점 또한 포함한다. 전통적인 게임 장르는 그에 따른 물리적 인터페이스의 적합한 형태와 구체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스마트 폰이 평균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터치 스크린 인터페이스는 앞서 언급하였던 전통적인 게임 플레이 경험과 달리 몰입감을 위한 주요한 인터페이스 형태 및 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한편, 전통적인 MMORPG 게임에서는 캐릭터 스탯의 관리가 부차적이었는데, 자동사냥 게임에서는 관계가 완전히 뒤집힌다. 사냥 및 수집은 부차적이게 되고, 대신 캐릭터의 스탯을 관리 및 경영하는 방식이 주요한 게임 플레이 경험이 되는 것이다. 일견 방치형 게임은 손으로 직접 조작되는 영역이 축소되어 있으므로, 플레이의 과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배경에는 여가와 노동 시간의 분리를 모호하게 하고, 여가 시간에 국한되어 있어야 할 게임 플레이 영역이 노동 시간까지도 침범하며 연장되고 있는 플레이의 과잉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플레이어의 손에 의해 직접 플레이될 때는 결코 해낼 수 없을 만큼의 너무 많은 사냥이 있다. 이같은 플레이의 과잉은 역설적이게도 플레이의 과소라는 착시를 불러일으키고,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방치형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 주체의 행방이 의심받는다.즉 이는 플레이를 상징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하는 듯 보이는 것이다.

방치형 게임의 플레이어는 깊이 집중하거나 몰입하지 못하며, 끊임없이 다른 일들을 하게 되는, 마치 주의력 결핍과도 같은 상태에 빠지곤 한다. 이는 경영 시뮬레이션과 장르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오직 방치형 게임의 플레이어에게만 발생하는 독특한 현상이다. 이처럼 방치형 게임을 플레이할 때 나타나는 기이한 플레이어 주체성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몰입이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나타나고 있는 이 독특한 문화적 풍경들을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안준형은 방치형 게임 외에도 먹방, 불멍, ASMR, 밈 등을 사례로서 보여지는 오늘날의 미디어 문화가 전개되는 과정을 함께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질문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확장되는 세계 :버추얼 프로덕션 기반 국내 영상 콘텐츠를 중심으로>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국면의 변화 등에 힘입어 버추얼 프로덕션(virtual production)이 주목받고 있다. 버추얼 프로덕션이란 게임엔진, 시각화, 모션 캡처, 가상 카메라, LED 월과 같은 최신의 기술을 병렬적으로 연결하여 실시간으로 실사 이미지와 가상 이미지를 합성하는 제작 방식을 일컫는다. 영국의 다국적 컨설팅 기업인 딜로이트(Deloitte)가 발간한 소책자콘텐츠 창조의 미래 : 버추얼 프로덕션 The Future of Content Creation: Virtual Production(2020)에서는 버추얼 프로덕션이 주목받는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그것은 VFX 비중이 높은 장르의 인기와 최근 버추얼 프로덕션의 발전, 게임 엔진과 스튜디오 사이의 접근성 및 경쟁의 증가, 스트리밍 플랫폼과 영화 스튜디오 사이의 경쟁, 코로나 19로 인한 콘텐츠 고갈을 피하기 위함이다. 현재 국내에서 버추얼 프로덕션은 도입 단계에 있으며, 전문화된 스튜디오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영상 콘텐츠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구자 이도훈은 국내 제작 동향을 살펴보면서 아직 학계 내에서 생소한 버추얼 프로덕션의 주요 특징과 개념을 특수효과 및 시각효과의 역사적 발전 속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버추얼 프로덕션는 실시간 합성을 지향하는 영상 제작 방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연출자가 상상하는 가상의 환경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다시 그것을 실사 이미지와 결합하기 위해서는 비단 시각효과 기술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유기적으로 접목되어야 한다. 보다 사실감 있고 완전한 가상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영화적 열망은 비단 오늘날의 것이 아니다. 과거 마술쇼 극장의 주인이었던 조르주 멜리어스가 트릭 필름(trick film)을 만들면서 영화의 역사는 환영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영화의 기술적 발전은 영화사를 지배해 온 리얼리즘과 환영주의 간의 대립을 허물고 영화의 존재론적 본성을 기술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는 뉴미디어에 대한 자신의 연구에서 영화가 하나의 기술로 안정화되면서 기존의 실사 촬영은 합성을 위한 하나의 재료가 된다면서 "디지털 영화란 라이브 액션 녹화분을 구성의 일부분으로 사용하는 애니메이션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모든 이미지를 수적인 데이터로 환원하는 디지털화는 이미지의 복제, 변형을 수월하게 한 것을 넘어서 실사 이미지와 가상 이미지 간의 이음매 없는 연결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자연스러우면서도 사실적인 가상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을 실사와 합성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노동력, 기술, 시간, 자본이 투여되어야만 했다. 무엇보다 기존의 선형적인 제작 공정에 따른 이미지 합성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작업을 하는 과정 동안 최종 결과물을 볼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실사 이미지를 가상 이미지와 합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은 사전 시각화(previsualization)를 통해서 부분적으로 극복될 수 있었는데 이는 촬영을 앞둔 영화의 전체 또는 일부를 3D 이미지로 구축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전 시각화는 버추얼 프로덕션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 마크 사위키(Mark Sawicki)와 주니코 무디(Juniko Moody)9단계로 나누어지는 CGI의 역사적 발전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그 이전의 모든 과정을 완성하기 위해 실시간 고성능 처리와 디스플레이”, 즉 버추얼 프로덕션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2017년 설립된 더블베어스는 댄스필름 영상 콘텐츠를 주로 제작했는데, 대부분 1분 내외의 짧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으며, 한 명의 댄서가 가상의 환경을 배경으로 춤을 춘다는 공통점이 있다. 각 작품의 배경인 가상의 환경은 사막, 유럽풍 의 건물, 고층 빌딩의 옥상, 도시의 밤거리, 숲 등이다. 컴퓨터 그래픽스로 구현된 가상의 환경들은 물질적 지표가 불분명하여 시공간적으로 모호한 의미를 갖기에 이질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기술적으로 LED에 렌더링된 가상 환경의 이미지가 세밀하게 가공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 전체적으로 사실감이 부족해 보인다. 이처럼 더블스튜디오의 필름은 버추얼 프로덕션 기반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기술적인 부분과 연출적인 부분 간의 사전 조율과 협업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다른 버추얼 프로덕션인 브이에이코퍼레이션에서 제작한 쇼핑엔티 'ODV' 홈 쇼핑 패션쇼 영상 콘텐츠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건물 내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영상 속 쇼호스트는 브에이코퍼레이션이 구축한 타원형 LED 월 앞에 서 있었을 것이다. 영상은 파리의 도시 풍경과 특정 건물의 외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세부적으로 실제 건물 내부를 구현한 이미지들을 시각화한 텍스처, 조명, 부피, 깊이 등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이것은 버추얼 프로덕션 기반의 가상 환경이 단순히 시각적인 볼거리의 즐거움을 주는 것을 넘어서 관객에게 감각적 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정보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국내 스튜디오들은 다양한 장르의 영상 콘텐츠 제작을 통해 버추얼 프로덕션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이러한 영상들은 시각적인 볼거리와 인과적인 내러티브를 통해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고, 가상과 현실이 실시간으로 합성, 재생, 송출되는 라이브니스를 통해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상호작용을 유도했다. 물론 일부 영상들에서 드러난 기술적인 결함들은 아직 버추얼 프로덕션 기반 영상 콘텐츠가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기술적 결함이 기술의 진보와 예술적 실험을 낳았던 것처럼, 지금의 버추얼 프로덕션 기반 영상 콘텐츠들은 머지않아 등장할 새로운 영상 콘텐츠들이 자라날 비옥한 토양이 될 것이다.

 

©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정리 : 황지원 기자 h950301@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