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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식민지 조선 프롤레타리아 소설의 역사 인식과 주체 본문
식민지 조선 프롤레타리아 소설의 역사 인식과 주체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전공 최은혜 박사
1. 논문(초록) 요약
이 논문은 1920~1930년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소설이 공유하는 정신적 구조의 특질을 새롭게 규명하기 위해 사회주의의 본질적 문제인 ‘역사 인식’과 ‘주체’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당대의 사회주의 사상과 소설이 정통 마르크스주의(orthodox marxism)의 문법과는 다른 고유한 식민지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밝혀내고자 했다.
본문의 2장에서는 프로소설을 분석하기 위한 예비적 고찰로서 프로문학이 태동하기 이전인 1920년대 초중반 사회주의 사상의 수용과 전개 양상을 검토했다. 1절에서는 사회주의 사상 수용의 시작점에 있어서 러시아 혁명이 미친 영향을 점검했다. 1920년대 초반 러시아 혁명은 피억압 민족들에게 해방으로 ‘번역’ 가능한 실천의 루트를 제공했고, 식민지 조선 또한 그 자장 안에 있었다. 초창기 사회주의자들의 러시아 혁명에 대한 인식은 해방의 원리라는 정신적 차원에서부터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기댄 경제적 차원의 문제까지를 폭넓게 포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제로부터 시작해서 2절과 3절에서는 역사 인식과 주체 모색이라는 측면을 다루었다. 구체적으로 2절에서는 역사적 유물론이 ‘전유’되어 온 양상과 그 특징을 살핌으로써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이 어떠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규명했고, 3절에서는 혁명의 주체로서 공장 프롤레타리아를 지목하는 유럽 중심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와 다르게 공업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식민지 조선에서 ‘프롤레타리아’ 개념을 규정하고 모색한 특유한 방식을 밝혔다.
3장에서는 프로소설 속에 나타난 유물론적 역사 인식과 발전 서사의 공백을 메우려는 ‘유토피아적 충동’에 대해 다루었다. 이를 통시적으로 살피기 위해 프로소설이 시작되는 1920년 중반 신경향파 소설,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에 걸쳐 있는 송영과 이효석의 운동가 코스모폴리탄 소설, 1930년대 초중반에 창작된 두 편의 농촌 장편소설인 이기영의 『고향』과 심훈의 『상록수』를 대상으로 했다. 3장의 텍스트는 모두 역사주의적 지향을 드러내면서도 그것만으로 수렴되지 않는 무의식적 충동을 함께 노출한다는 점에서 특이성을 가진다. 유럽 중심적 역사 발전 법칙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식민지 조선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 프로소설은 유토피아로 나아가고자 하는 충동을 통해 역사의 ‘비약’을 꿈꿨다. 신경향파 소설은 환상과 파국의 상상력을 통해(1절), 코스모폴리탄 소설은 낭만적 경향을 통해(2절), 농촌 장편소설은 농촌공동체라는 전통적 집단 주체를 통해(3절) 유물론적 역사 인식을 초과하는 지점을 드러냈다.
4장에서는 프로소설 속에 나타난 다양한 주체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사회주의의 중요한 주체라면, 특히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공장 프롤레타리아가 착취의 대상이자 사회 변혁의 주체로서 핵심적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대공업이 발달하지 않은데다가 인구의 8할 이상이 농민이었던 조선에서 공장 프롤레타리아 중심성은 실천적 동력을 가질 수 없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억압 받는 모든 자들을 일컫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는데, 때문에 공장 프롤레타리아가 재현된 소설이 있었던 것만큼이나 그 밖의 존재들을 주체로 내세우는 소설도 다수 존재했다. 1절에서는 농민과 농촌 프롤레타리아가 등장하는 농촌 소재 소설을, 2절에서는 도시 빈민을 비롯한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등장하는 도시 소재 소설을, 3절에서는 노동자로서의 기생과 여공이 되어가는 여성이 등장하는 여성 노동자 재현 소설을 대상 텍스트로 삼아 그 특징을 분석했다.
이 논문은 식민지 조선에서 사회주의 사상이 수용·실천되는 특수성을 살피는 과정 속에서 기존의 문학사가 제시하는 정전과 텍스트 배열 방식을 헤쳐서 탈구축하거나 해체된 내용을 재조합하여 또 다른 계열의 프로문학을 재구축하고자 했다. 이는 역사적이며 현실적인 조건을 놓치지 않으면서 조선의 프로소설을 새롭게 규명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2. 인터뷰
(1) 해당 전공을 선택하게 된 계기
고등학교 1학년, 서점에서 우연히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게 됐습니다. 지금 말하기엔 겸연쩍지만 이 책과의 만남은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교과서에서 아예 다루지 않거나 소략하게 다루는 역사들과 대면하면서 제가 받고 있는 공교육의 진위에 대해 처음으로 의심하게 됐죠. 돌이켜보면 공산당과 사회주의를 악마화하는 직접적인 이념교육이 사라진 자리에 사회운동 좌초의 여파가 뒤엉켜 사상에 대한 무관심을 종용하는, ‘변형된 반공 이데올로기’가 들어서 있던 때였습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남로당계 염상진과 같은 인물이 궁금해졌습니다. 역사 교과서의 서술 방식과 다르게 현대사와 한국 사회를 재현하는 한편으로 개인의 삶과 내면을 구체적으로 조명하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재밌기도 했죠. 자연스럽게 국문학과에 진학해 공부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소설 자체에 대한 판단과 평가를 예전과 달리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공부를 하는 데 이러한 독서 경험은 원체험처럼 남아있습니다.
(2) 논문 주제를 선정하게 된 이유와 꼭 전달하고 싶었던 내용
석사 때부터 한국 좌파 문학의 근대적 기원과 전개에 대해 줄곧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식민지기 사회주의 문학으로 연구 대상과 주제가 좁혀졌고, 그 대표적인 문학가이자 해방 이후 남로당계 이데올로그 중 하나였던 임화의 평론을 분석하는 것으로 석사논문을 쓰게 됐죠. 처음에는 한 인간이 진보적 사상을 받아들이고 전개해나가는 데 어떤 내적 동인을 가지는지 살피려 했는데, 점차 개인의 특수성을 넘어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지식인들이 공유하는 정신사적인 맥락을 짚어낼 필요를 느끼게 됐습니다. 특히 유럽적 경험에 기반해 계급 해방을 지향하는 사회주의가 민족 해방을 목적할 수밖에 없는 저발달 지역인 식민지에서 어떻게 자기화되어 전유되었는지 프롤레타리아 소설을 통해 해명하고 싶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사상의 원산지와 그것을 ‘따라가는’ 유입지라는 일방향적 구도에서 벗어나, 지역마다 상이한 조건 속에서 저마다 역동적인 사상의 고유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3)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식민지에서의 사회주의 사상과 문학을 논할 때 설명의 핵심은 ‘민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여러 겹의 복잡한 문제를 포함하는데, 요컨대 당대 민족주의 진영에서의 민족과 사회주의 진영에서의 ‘민족’이 어떻게 달랐는지 쉽사리 가시화되지 않는 지점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는 점, 나아가 현재 온갖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자기의식적 민족주의(self-conscious nationalism)와 거리를 두면서도 결국에는 ‘민족’의 문제를 또 언급해야만 한다는 점 등이 그러합니다. 낡고 오염된 개념을 다시 끌어들여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입지에서 논의의 지점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논문을 썼지만 여전히 돌파구를 찾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런 해소되지 않은 막막함을 견디는 것 또한 논문쓰기의 본질적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라고 생각됩니다.
(4) 논문쓰기를 앞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긴 호흡을 전제하는 박사논문 쓰기는 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고단한 싸움을 지속하는 과정입니다. 첫째, 정신적 전선(戰線)에서의 준비물. 나를 혹독하게 의심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막막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확신을 가져야 하는 데서 오는 곤란함 속에서 정신을 건강히 유지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개인적으로 고민을 털어놓고 글을 보여줄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 전문가 상담이나 의학적 치료도 마다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물리적 전선에서의 준비물. ‘항산(恒産)이 항심(恒心)’이라고,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집중도가 달라지는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생활비를 미리 적극적으로(!) 저축해둘 것 같습니다. 또 ‘항신(恒身)이 항심’이기도 해서, 비록 나는 그렇게 못했지만 규칙적인 운동 습관을 들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정리 : 조수아 기자 sushua@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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