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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엄지 직립 인간의 찬가 본문
엄지 직립 인간의 찬가
요즘 우리 집 식구들은 하나의 고통을 공유 중이다. 물론 고통이야 늘 각자의 고통이지만 공교롭게도 모두 통증을 호소하는 부위가 같다. 그렇다고 감염되는 질환이나 집안내력도 아니다. 단지 양 엄지손가락 밑동이 하나같이 욱신거릴 뿐이다. 사돈의 팔촌까지 뒤져도 의사 하나 없는 우리 가족이지만 원인 진단은 금방이었다. 스마트폰을 하도 손에 달고 다닌 대가를 치른 것. 그것도 부모님은 누운 자세로 스마트폰을 자주 보시다보니 인대에 무리가 왔다는 모양이다.
‘뭐야, 집안이 죄다 스마트폰 중독이야?’라고 말하기 전에 잠시, 세상 만사는 표현하기 나름이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사피어라는 양반도 말했다지. 하여 나의 언어는 이 통증을 이렇게 표현한다. 인류의 종적 도약을 위한 성장통이라고. 왜, 인간이 직립 보행을 선택하면서부터 허리 디스크의 위험이 우리를 따라왔다고 하지 않는가. 그 진화의 순간 자랑스런 선조가 그 위험을 감수하기를 포기했다면 어찌 오늘의 슬기로운 원숭이가 있었겠는가. 필시 그 시절 옆 나무에 세들어 사는 침팬지 씨도 우리 왕할아버지의 ‘미어캣 흉내 중독’을 근심과 타박의 눈으로 바라봤으리라. 그런 벗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우리 왕할아버지는 비가 올 때면 쑤시는 허리를 안고 남보다 1m 높은 경치를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고, 또 그 경치에 낭만적으로든 효용주의적으로든 꽤나 만족했을 것이다.
직립 원인의 찬란한 탄생으로부터 150만 년이 지나, 우리 집에서 인간은 새로운 직립을 맞이했다. 다리가 아니라 두 개의 엄지로 이룩한 직립이다. 현대인은 호모 에렉투스 폴렉스(Homo Erectus Pollex), ‘엄지로 선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렇고말고. 엄지야말로 현대인의 ‘다리’다. 이 다리로 우리는 수백 km 너머의 세상도 보고, 수 년 전의 이야기꾼들을 찾아가 만나기도 한다. 겨우 세 척 위의 광경에도 신체 건강을 팔았던 선조의 자손인 우리가 이 유혹을 견딜 수 있나. 새로운 직립이 보여주는 풍경에 심취하여 쏘다니다가 ‘발병’이 나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기왕이면 새 시대의 편력자라고 불러도 좋겠다. 엄지로 걷는 편력자.
가녀린 한 쌍의 엄지가 이 매일같은 유랑을 감당하는 데는 비결이 있다. 호모 에렉투스 폴렉스는 땅을 밟지 않는다. 액정을 밟고 다닌다. 액정은 땅과 달리 중력이 없고, 가고픈 곳이 있으면 발(?)구름 몇 번에 데려다 준다. 구름 타고 소요유(逍遙遊)하는 신선의 도술이 부럽지 않다. 세상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이 말했던가. 우리는 이제 신선처럼 무우히 저 고단한 ‘속세’를 굽어 살피며 유유자적을 즐길 수 있다. 시간도 공간도 까딱하는 손구름 한 번에 초월해서.
인상 좋던 배우가 도로 한복판에서 술 마시고 뻗었다고 한다. 까딱, 이번에는 어떤 뮤지션이 호텔 파티룸서 마약을 투입했다나. 저런. 십대 학생이 마약성 버섯을 재배하다가 체포당했다고 한다. 예끼. 늙은 블라디미르는 이제 대놓고 핵을 입에 담는다. 나 원. 대륙에는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고 서쪽의 총리는 양상추보다 빨리 시들면서도 하루당 5.5조의 손해를 나라에 알뜰하게 남겼다. 쯧쯧. 여의도 서커스단이 매너리즘에 빠진 재담을 우려먹는 가운데, 세계를 누비는 우리 토종 열차는 지나치는 역마다 지하의 언어를 실으며 오늘도 칙칙폭폭 순행 중이다. 까딱. 잔혹한 기계의 이빨이 다시 없을 하나의 삶을 삼켜도 미싱은, 아니 제빵기는 잘도 돌아가네.
오 세상이여. 위는 광망(狂妄)하고 아래는 광망(光芒) 없어라. 그러나 괜찮다. 액정구름 위로 손가락 한 번만 구르면 이제 사라진다. 비극은 없는 거다. 지장을 찍듯 손가락을 문질러 우리의 세상에서 슬픔과 분노를 추방하면 되는 거다. 분노와 슬픔과 항의는 땅 위에 사는 인간, 다리로 서는 인간의 것이지 호모 에렉투스 폴렉스의 몫이 아니다. 엄지손가락으로 서자. 아래로 내려가지 말자, 이토록 홀가분한 무중력의 편력을 왜 멈출 것이냐. 왜 굳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그 황량하기만 한 땅 위에 서야 하는가.
다행한 일이다. 다리 대신 엄지로 서기를 선택한 사람의 많아짐이여. 폭음과 총성과 울음과 비명을 ‘밀어서 존재해제’한 세상, 노래와 해학과 잡담과 냉소의 세상이여. 낙원의 사도들, 한발(한손?) 앞서 종적 도약에 성공한 그대 참 기자들이여. 무중력의 액정 위에 질량 없는 말로 쌓은 성이여. 우리 호모 에렉투스 폴렉스의 성에서 우리는 내내 평안할 것이고 영원히 잔치를 벌일 것이다. 하나뿐인 데이터센터에 불만 나지 않는다면.
미친 노인의 손가락질에 이국 땅에 떨어지는 포탄도,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자본의 아가리 같은 공장도 호모 에렉투스 폴렉스를 상처입히지는 못한다. 대지를 벗어나 신선처럼 구름 위에 떠 있는 우리는 아프지 않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다른 아픔으로 바뀌니까. 고단한 우리 양손 엄지손가락의 통증으로. 이불 속에서 시달리는 이 편력의 아픔으로. 이 아픔이 어찌 진실하지 않단 말인가. 이야말로 신인류의 성장통이다. 오늘따라 이 아픔이 더욱 지독하다. 어째선지 근육과 인대를 넘어 뼛속까지 스미는 듯 그렇게 시리다. 시리야, 내 이 참혹한 고통을 달래줄 만한 노래를 들려다오. 때로는 클래식도 좋지. 크라잉넛의 〈지독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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