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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경계인으로서 '나'라는 정체성 본문

2면/원우발언대

경계인으로서 '나'라는 정체성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5. 23. 01:36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격변하는 조선을 지나는 중이었다.”

 

-<미스터 션샤인> 1화 고애신(김태리) 대사 中

 

 위 대사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 <미스터 션샤인> 중 주인공 고애신(김태리)의 말이다. 극 중 고애신의 대사처럼 <미스터 션샤인>의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인종, 민족, 계층의 사람들로 묘사되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이는 격변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으며, 특히 드라마에 구현된 이방인(경계인)의 모습은 불안한 위치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학부 이후 대학원의 삶을 선택한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학문을 더 깊게 공부한다는 학생으로서 신분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원생으로서 ‘나’라는 정체성이 경계에선 ‘경계인’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계인은 “경계의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서 상생의 길을 찾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존재”(송두율, 󰡔경계인의 사색󰡕)로 흔히 디아스포라, 이방인, 주변인 등의 단어를 정의할 때 자주 등장한다. 이와 같은 경계인의 정의는 대학교의 대학생과 교수 사이 대학원생의 존재를 정의하는 듯하다. 대학원생은 학문을 더 깊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측면에서 대학생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때로는 교수의 보조자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가르치는 영역에도 관여하게 된다. 대학원생은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가르침을 받거나 가르침을 행하는 위치에 서지만 완전히 한 집단에 소속되기 어려운 경계인의 모습을 띠는 것이다.

 경계인의 문제는 집단의 이해관계 속에서 어떤 집단에 속할 수 있지만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존재들로 폭력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조르조 아감벤은 폭력에 노출된 경계인들을 ‘호모사케르’로 정의하는데 호모사케르란 인간 세계도 신적 세계도 아닌 중간지대에 예외 상태로 놓인 자들을 말한다. 이들에게 행해지는 폭력은 정당화되며 언제든 제거될 수 있고 보존될 가치가 없는 존재로 머물게 된다.(최성희, 󰡔폭력의 기원󰡕) 심심치 않게 기사화되는 대학원 연구실 갑질 문제, 연구비 횡령 문제, 사제간 폭행 등이 경계인으로서 폭력에 노출된 대학원생들의 모습을 증명하는 듯하다. 

 대학원생들이 폭력에 노출되는 문제는 대학원 또는 연구집단의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한 학문을 선택하여 탐구하는 과정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나 이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이미 사회인으로서 연구집단에 잠재적으로 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때로는 부당하다고 느끼는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으며 대학생 때와 다른 일종의 사회 조직 문화를 경험하게 된다. 대학원생들이 부당한 문제를 겪더라도 크게 저항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잠재적으로 연구집단에 귀속된 이상 학문을 탐구하는 과정 안에서 연구집단의 사람들을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으며, 잘못된 상황에 대한 저항이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회사 조직의 위계 서열, 상명하복 등의 문화와 흡사하다. 

 구조적으로 회사의 조직 문화와 비슷한 생활을 경험하는 대학원생들의 문제는 부당한 대우와 과도한 노동을 요구받고도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원생들은 학교 내 또는 자신이 속한 연구집단 등에서 많은 책임과 노동을 요구받으나 대학생 때와 비슷한 대가를 받거나 때로는 그림자처럼 자신의 노동이 증명되지 않을 수 있다. 연구생들의 과도한 연구 시간, 열정페이 등의 문제가 계속 터져 나오는 것과 학회 등에서 활동을 하면서도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는 상황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학생의 신분과 사회인의 경계 어딘가 존재하는 듯 한 대학원생에게 ‘나’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경계인으로서 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대학원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학문적 가치와 꿈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대학원생들이야말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체성을 가진 가능성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경계인으로서 대학원생들을 사회적 타자나 대상이 아닌 주체성의 상태로 인식하는 것이며, 이는 대학원생들 자신뿐 아니라 이들을 바라보는 교수, 연구집단, 사회적 인식 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경계인은 특정 집단에서 외부인이기 때문에 그 집단에 어떤 역할을 맡거나 인정받기가 어려우며, 이들은 소외된 자들로 외롭게 표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경계에선 자들은 소외된 만큼 자유로운 사람들로 볼 수 있다. 중심부로부터 떨어져 경계에 머무는 이들은 책임과 의무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경계인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내일이 두려운 격변의 시간 속에서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대학원 생활을 지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