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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직장인 대학원생의 단상 본문

2면/원우발언대

직장인 대학원생의 단상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6. 27. 22:01

 

어디서든 백 퍼센트의 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시 말해 라는 사람을 오롯이 책임져야 했던 순간부터 줄곧 생각해 왔던 질문이다. 학업이라는 한 가지 일에만 충실하면 그만이었던 학생 때와는 달리 성인은 해야 할 일이 많다. 가정에서의 나, 직장에서의 나, 또는 그 밖의 장소에서의 내가 해야 할 일이 구분되어 있다. 그 어디에서의 역할도 허투루 이뤄져서는 안 되지만 한계가 있는 인간이다 보니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놀라운 점은 여러 역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실수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가정에서 -20%, 직장에서 10%, 여러 역할에서 5%, -7%……. 조금씩 실수 게이지를 쌓아가면서, 만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나쁘지는 않은 퍼센티지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실수는 내가 저지른 잘못으로 발생할 때도 있고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인해 벌어질 때도 있다. 처음에는 나를 지나치게 책망해야만 했던 실수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무뎌진다. 백 퍼센트의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만은 않기를, 운이 좋다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살아가면 그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실수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세계 일주를 위한 퇴사, 월급 통장을 모두 털어 넣은 주식 투자, 연봉 삭감을 감수하고 꿈을 위해 택한 이직 등 다양하다. 나의 경우 대학원 진학을 새로운 실수로 꼽을 수 있겠다. 연구자로서의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한 후 호기롭게 사직서를 제출한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아직도 종종 퇴사 직전의 면담이 떠오른다. “이봐,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야.” 그때 내 귀에 들린 기회는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갈 수 있는 기회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상사가 말했던 기회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안다. 상사는 회사의 일원으로서 월급을 받으며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말했을 터다.

퇴사 이후 신나게 대학원을 다니는 미래를 꿈꿨지만 꿈은 꿈일 뿐이다. 내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것이라 믿었던 전공은 연구의 세계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듯 수업 때마다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페이퍼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며 내가 대학원을 너무 몰랐구나!” 하고 책상을 치는 날이 자주 반복됐다. 주변에서는 제때 종합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전설적인 선배들의 일화를 들려주며 누구든 종시 낭인이 될 수 있다 겁을 줬다. 또 논문을 쓰지 못해 재학 연한을 넘기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속삭였다. 지금은 그런 말들이 흔히 말하는 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알지만 대학원 초보(석사 1학기)의 입장에서는 대학원과 관련된 낭설이 괴담보다 무섭게 들리기 마련이다. 사실 낭설보다 더 무서웠던 건 직장 생활을 하며 모아 둔 돈이 점점 바닥을 보인다는 점이었다. 서서히 비어가는 통장 잔고를 보며 내가 대학원뿐만 아니라 사회도 너무 몰랐구나!”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학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대학원과 병행할 수 있는 직장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때부터 직장인이자 대학원생으로서의 인생이 시작됐다. 연구만 하기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 일을 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러나 나를 책임지지 못한 채로 진행하는 연구가 얼마나 불안한지 알고 있었기에 직장인 대학원생으로서의 인생에 반드시 익숙해져야만 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슬프지만 사실이다. 나와 같은 이유로 직장인이자 대학원생이라는 이중 신분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선생님들이 많으리라 본다.

누군가는 그렇게 힘들 거면, 그리고 돈을 포기하지 못할 거라면 더 늦기 전에 대학원을 그만두는 게 맞지 않느냐고 말한다. 실제로 직장인 대학원생으로 살던 친구들의 대다수가 현실과 연구 사이에서 현실을 택한 경우가 많았다. 돈이 필요해서, 연구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도 포기를 선언한 이들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어디서도 백 퍼센트의 가 되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자괴감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랬다. 가정과 직장을 넘어 대학원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전보다 더 잦아지는 실수들,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 ‘나는 절대 이런 사람이 아닌데……와 같은 안타까움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붙잡았던 건 처음 사직서를 내고 대학원을 선택했을 때의 마음이었다. 연구를 하고 싶다는 기회를 잡은 건 분명 나였다. 슈퍼맨, 아이언맨처럼 백 퍼센트의 인간이 될 수는 없더라도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면, 완벽은 아니더라도 미완성인 내가 되지는 않겠다는 작은 희망을 절대 잃지 않기로 나를 다독였다.

지금은 직장인 대학원생으로서의 인생도 무뎌져서 예전처럼 나를 몰아붙이지 않게 되었다. 분명 늘 백 퍼센트일 수는 없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니 직장에서도 대학원에서도 그리 나쁜 사람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여러 역할을 동시에 소화하며 꿈을 위한 연구를 이어 가는 많은 선생님들이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분, 한 분의 연구가 꼭 세상에 빛나기를 바란다. 나와 내 연구를 꼭 믿어 줘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