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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나의 ‘불만족’과 ‘실망’에게, ‘확신’을 담아. 본문

2면/원우발언대

나의 ‘불만족’과 ‘실망’에게, ‘확신’을 담아.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9. 4. 14:38

어느 대학원생

 

 2019년 가을, 나는 정말 어딘가에 미쳐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왕복 네 시간이 넘도록 버스와 지하철을 탔고, 이동하는 동안 공부를 했고, 수업이 끝나는 대로 학원으로 나가 강의를 했다. 집에 오면 끝내지 못한 과제를 했다. 정확히는 열심히 사는 나를 인정받는 것에 미쳐있었다. 본 전공과 거리가 먼 분야에 뒤늦게 발을 들였으니 남들보다 더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노력하고 성취하는 짜릿함을 깨달아 버린 나는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학부 교수님들께서 잘 할 수 있을 거라며 응원해 주셨을 때 난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 말이 내 노력으로 일궈낸 어떤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돌아보면 그것보단 하고 싶다라고 외쳐대는 내 눈빛을 보고 포기를 권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석사과정 내내 학교를 그만두고 탈출할 것인지 확인받는 기분이었지만, 학교 밖에서의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이 학교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며 성장하는 나를 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주변 모두가 걱정했듯이 대학원에서의 적응은 이 확신의 틀 안에서 날 극한으로 몰아붙였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약한 편이었던 비판들은 내가 이전에 들어본 적 없는 것이었고 토론장에서 조리 있는 말을 뱉을 수 없게 만들었다. 밤을 새며 글을 써도 도저히 완성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늘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발제문을 제출했다. 타자를 치며 엉엉 울기도 했고, 발제 당일엔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다 갑자기 학부 캠퍼스로 달려가 실컷 울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건 억울하거나 슬픈 감정이 아니라 나에 대한 막막함과 실망감이었다. 자기에 대한 불확신은 학원 강의에도 영향을 미쳐, ‘이것도 못하는 내가 너희를 가르쳐도 괜찮을까하고 망설이게 했다. 공고하게 만든 어떤 성이 야금야금 갉아먹히는 기분이었다. 노력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이 좋았던 과거의 나에게 대학원은 조금 가혹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칭찬이 박한 이곳에서 나는 들어왔던 모든 칭찬과 응원하는 말들을 모아놓기 시작했다. 어떤 점을 잘했는지, 어떻게 하면 된다든지 하는 내용들을 노트에 적어놓고 그래도 내가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학부 교수님께서 동기에게 간접적으로 한 이야기까지 끌어모았다. 비록 긴급 처방 같은 것이었지만 당장의 자기혐오를 끊어내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다. 그게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지 모르고 대학원에서의 첫 1년을 마무리 지었다.

대학원 생활에 드디어 적응했다고 착각했던 봄, ‘칭찬 노트는 날 더 큰 벽에 부딪히게 했다. 칭찬과 응원 뒤에 따라오는 실망이 바로 그 원인이었다. 학기 초, 발제문을 작성할 때마다 날 응원해준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도 그렇지 않았지만, 망상 속의 그들은 뒤에서 나에게 실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무서울 때가 있었다. 그들의 실망은 어떤 표정일지 떠올리기도 했다. 상담 센터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며 이 두려움에 대해 토로하기도 했다. 이도저도 만족스럽지 않아 더욱 불안했다.

 전환점은 정말 우연하게 올해 여름에 찾아왔다.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수업 중 교수님의 말씀에서 그동안 스스로 가지지 못했던 확신의 실마리를 찾았던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가 어떤 것이었는지 눈앞이 명확해지는 순간 다시 한 번 주변 사람들이 떠올랐다. 상담 선생님께서 내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서, 만약 주변인이나 후배가 주어진 과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당신은 실망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이 들었었다. 나였다면 그냥 잠깐 힘든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도와줄지 고민했을 테니까. 그들은 내가 성과를 내길 우선적으로 바란 게 아니라 언젠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하에 날 도와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믿지 못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참 감사한 건, 내가 닮고 싶어하던 선배들이, 나와 함께 공부하던 주변 사람들이 그럼에도 끊임없이 응원해주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보답은 결국 내가 대학원에서 만들어가고 싶었던, ‘열심히 사는 나로만 할 수 있었다.

졸업 후 학교를 떠나기까지 아직 수많은 시간이 남았고, 그 모든 순간을 만족감으로 채울 수 없을 것은 알고 있다. 나에 대한 불확신과 불만, 실망이 언제든 덮쳐 오겠지만 이제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을 척지며 혼자 이겨낼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만들고 싶은 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 속에서 성장하는 나를 찾아내는 것이 이 과정의 의의이고, 나의 확신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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