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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너도 결국 현실도피 하는구나” 본문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지인에게 들었고, 오래 기억에 남았다. 처음 들었을 땐 물론 발끈했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며칠 동안 ‘현.실.도.피’ 한 글자씩 곱씹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 한구석의 의심은 해결되지 않는 불안으로 커졌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고민을 이어가기도 했다. 남들과 같은 현실을 산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던 때가 떠오른다. 학점도 영어도 알바도 동시에, 욕심껏, 잠을 줄여서, 대학원 진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 하는 정도는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헛손질 헛발질하던 시간들. 단단하지 못한 하루들.
입학 이후에는 고민의 시간이 한없이 부끄러워질 만큼 현실과 가까이 산다. 돈, 요즘 나에게 현실은 돈이다. 돈에 관심 없다는 사람이 제일 “돈돈!” 외치며 산다고 했던가. “인생에서 돈 따위!”로 시작한 대학원 생활이지만 주말에는 학원일을 하며 돈 되는 일에 열심히 시간을 쪼갠다. 강사일을 병행하는 대학원 선생님들과 학원 일화를 종종 공유하는데, 흥미로운 몇 가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H는 학원의 추석 인사를 “안녕하세요 선생님”으로 시작해 “10,000원도 잊지 말고 보내주세요”로 끝나는 문자로 받았다. 부원장은 원장에게 이미 백화점 상품권을 선물로 전달했다며 (얼마인지는 당연히 모르는!) 학원의 모든 선생님에게 만원을 요구했다. 일방적인 통보에 당황한 H는 답장을 보류했고 며칠이 지나자 전화가 걸려 왔다. 학원에서 준비한 명절 선물을 받아 가라는 형식적 인사와 꼭 현금 만원을 지참해달라는 당부가 함께했다. 6개월 근무를 채우지 않으면 60만원을 환급해야 한다던 학원에서 얼마 전에 벗어난 H는 만원을 지불하기 위해 새로운 학원으로 출근했다. 또 다른 선생님 E는 수업이 귀찮았던 원장덕에 10분 전에 초면인 교재를 받아 들고 대리수업을 해야 했고, 때로는 원장의 강아지를 산책시켜야 했다. 이유는 산책시킬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새벽에 출근 시간을 통보하거나 수업 내용을 변동하는 일에는 다들 익숙했다. “평일에 연락해서 죄송해요. 그런데~”로 시작하는 잔소리에 가까운 업무지시는 ‘학원의 특성상’이라는 변명 안에서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뻔뻔해진다. 그렇지 않은 회사원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학원강사는 일상과 노동을 분리하지 못하는 삶에 익숙해져야 한다. 반별로 단톡방을 만드는 것은 기본 소양이지만, 쉬는날에도 문제를 만들고 아이들 상담을 진행해야 하지만, 출근하지 않는 시간은 당연하게도 노동시간이 되지 못한다. 학원 아이들에게 언제든 편하게 질문하라며 강사의 전화번호를 허락 없이 공개하거나, 유동적인 근무 시간을 핑계로 제대로 된 식사와 쉬는시간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중학생을 가르치는 조건으로 계약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수능 문법과 모의고사 수업을 준비하기도 한다. 학원에 문의하면 “내용이 많으면 밤새워서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요. 대학원 공부하는 것처럼요” 식의 대답이 돌아온다. 악의는 ‘사람’이 아닌 ‘말’에만 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종종 무너진다. 면접 당시에는 월급제로 계약하기로 하고 막상 계약서를 쓸 땐 학원 내부사정을 이유로 시급제로 전환하기도 한다. 바로 계약서를 쓰는 학원은 그나마 다행인 편이다. 원장이 출근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두 달을 넘겨 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이 학원이 글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은 강사 경력이 없거나 적은 지원자에게 우선 연락한다. 면접 자리에서는 경력직 강사를 고용하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를 시작으로 당신은 강사 교육이 필요하며 시급문제는 의논할 시기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그렇게 학원은 10시간이고 15시간이고 출근한 면접자에게 인터넷 강의를 듣게 하고 판서를 연습하게 한다. 오히려 자기가 돈을 받아야 한다는 뻔뻔한 말과 함께. 이것이 ‘학원의 생리’이며 자신들도 다 겪었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이런 ‘경영철학’덕에 이 바닥에서 17년을 버텼다는 무용담까지 빠질 수 없다. 물론 세상에 좋은 학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원 입학 이후 강사 생활을 시작한 H와 E 그리고 내가 겪었던 학원은 보통 이런 모습이었다. 사실 간단한 해답은 학원을 그만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대학원을 졸업해도 우리에게 보장된 일자리는 없다는 사실을 체감하면 이런 열악한 환경조차 일종의 보험이 된다. 초단기 근무자인 우리는 사대보험도 적용받지 못하는데…
H와 E의 충격적인 여러 이야기를 의심할 만큼 나는 대학원 생활을 이해해주는 학원에 다니지만, 동종업계(?) 최저시급을 받는다. 등록금과 생활비, 방값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입장에선 늘 부족하다. 그래도 배려해주니까! 외치며 타협한다. 원장 말대로 대학원 생활과 병행하기엔 학원강사만 한 것이 없으니까. 공부에 전념할 수 없다는 불안을 그나마 덜 수 있는 일자리를 찾은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이번 주도 출근을 준비한다. 누군가의 눈에 도피처로 보이는 곳에도 현실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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