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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괴담(怪談)’을 이야기하기 본문
‘괴담(怪談)’을 이야기하기
박상아(서울대학교 비교문학전공 박사과정)
일본 기후현에는 ‘조선 터널(朝鮮トンネル)’이라 불리는 오래된 터널이 있다. 본래 명칭은 ‘후타마타 터널(二股トンネル)’로, 1956년에 완공되었지만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폐터널이다. 그렇다면 왜 이 터널은 ‘후타마타’ 터널이 아닌 ‘조선’ 터널이라 불리는 것일까? 이는 후타마타 터널을 둘러싼 ‘괴담’과 관련되어 있다.
괴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거 터널 공사를 위해 강제 연행되어 온 조선인 징용자들이 산 채로 벽에 매장되어(혹은 사망한 조선인 인부들을 위장하기 벽에 매장하였다고도 이야기 된다), 그로 인해 성불할 수 없는 많은 영혼들이 아직 터널에 남아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터널 벽에서 손이 나오는 등 여러 가지 심령현상을 겪었다는 체험담이 쌓이면서, 후타마타 터널은 일본의 심령 체험 장소(心霊スポット)로 매우 유명해지게 되었다.
괴담의 역사는 식민지 시대와 연결된다. 나카무라 시즈요(中村静代)에 의하면, 다이쇼와 쇼와 시대 일었던 일본의 ‘괴담붐’이 조선에 빠르게 전파되면서 본격적으로 ‘괴담’을 소비하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괴담들은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거주하는 재조일본인들을 위해 발간되었던 일본어 신문과 잡지, 영화와 서적 등을 통해 들어왔다. 이때 떠도는 ‘괴담’은 단지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신기한 이야기가 아닌, 식민자-피식민자와의 관계, 그리고 식민지를 향한 문명론적 시각과 강하게 얽혀있었다. 실제로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도시개발을 진행하기 위해, 비과학적인 괴담과 미신 타파를 위해 맞섰다. 이 같은 시선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저작 『조선의 귀신(朝鮮の鬼神)』(1929년, 조선총독부)이다. 무라야마 지준은 조선총독부의 촉탁으로 조선 사회의 민속학을 연구하였는데, 특히 괴담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조선의 귀신』에서 귀신 이야기는 도시 발전과 반비례하기에 식민지 근대화 정책으로 조선이 문명의 빛을 받으면서 귀신 이야기들이 ‘거처’를 잃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무라야마 지준의 예상과 달리, 괴담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되었다. 재조일본인을 대상으로 했던 종합잡지 『조선공론(朝鮮公論)』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에 동조하고 조선의 미신타파 태도를 취하면서도, 동시에 식민지를 경험한 자들이 체험한 괴이(怪異) 현상에 관한 이야기를 실어냈다. 이 괴담들에는 ‘일본인’의 식민자가 피식민지 ‘조선인’과 ‘중국인’을 괴담의 대상으로 삼는 이야기들을 주제로 하기도 했다. 더럽고 야만적인 피식민자들을 자신들의 대척점으로 두는 것을 통해, 그들을 공포스러워 하면서 동시에 열등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체신협회 발행 잡지 『조선체신』(1941년 11월, 282호)에 실린 「괴이 이야기(怪異物語)」를 보자. 이 글에서 저자는 실제로 유령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점령 후 중국 타이위안(태원太原)에서 머물던 저자의 친구는, 밤마다 늙은 중국인 유령을 만난다. 이에 유령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저자에게 일본도를 빌리러 왔다. 그리고 저자 또한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방에서 생기 없는 표정으로 눈을 치뜬 채 자신을 바라보는 중국인 청년 유령을 만난다. 순간 저자는 공포에 질렸지만 자신이 중국 유령에게 위협당한다면 그것은 일본 남자의 수치이기에 자신 또한 그 유령을 노려보자 유령은 금세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저자는 유령의 존재 여부와 별개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올바른 신념과 자세를 가지면 앞으로 유령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 같은 이야기들은 지배자 일본인과 피지배자 중국인 사이에 나타나는 위계적 시선을 보여주고 있지만, 한편으로 피식민자들이 그들에게 ‘한’을 품고 끊임없이 나타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괴담은 지배자가 스스로 밀어내고 회피하던 식민지 논리의 불합리가 회귀하는 존재들과의 대면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귀신’이 되는 존재란, 자신들이 밀어내고 애써 외면했던 식민지 논리의 모순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처럼 괴담이 괴담으로 설득되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에 참여하는 자들 간의 이해관계와 같은 모종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후타마타 터널’이 의미하는 것은, 괴담이 된 식민지 타자들은 망각되지 않은 채 오히려 애써 외면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 그들의 기억의 사이를 끊임없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후타마타 터널’은 단지 ‘심령 체험’ 장소로만 공유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터널의 괴담이 괴담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기억의 구조와 그 많은 얼개들이 있어야 한다. 괴담이 된 타자들은 사라지지 않은 채, 끊임없이 다른 내용으로, 다른 방식으로, 완결되지 않은 채 현재까지 주위를 맴돌고 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많은 괴담들이 공유되고 있고 그 괴담들은 우리의 모습을 비틀어 비추며 회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재에서 공유되는 괴담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괴담은 무엇을 비추고 있을까. 또 잊혀진 괴담은 어떻게 다시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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