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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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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원우칼럼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5. 23. 01:38

비교문학비교문화협동과정 석사과정 홍부일

 

오빠가 죽는 장면에서 잠시 책을 덮었다. 이미 서너 번째나 되는 재독임에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늘 새로운 무게로 나를 짓누른다. 소설책을 잠시 덮고 당신의 사진을 다시 몇 장 들춰보았다. 유독 병실에서 당신의 손을 찍은 사진이 많다. 신열에 들떠 그런 걸까, 병든 사람의 손은 언제나 포근하고 푹신푹신했다. 그래서 이 더운 손이 곧 차차 식어갈 거라는 사실이 늘 무서웠다. 이제 살면서 다시는 당신을 볼 수 없다는 건 여전히 믿기지가 않아 슬프지조차 않다. 그러나 다시는 당신의 손을 잡을 수 없다는 건, 다시는 당신이 나의 손을 잡아주지 못한다는 건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공허라서 불현듯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길을 가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다가도, 술을 먹으면서 웃어 재끼다가도, 언제나 몇 번이라도 멈춰선다.

의식을 잃기 전, 당신은 새벽 내내 계속 병실 커튼을 걷어 침대 너머 바깥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5인실 병실, 커튼을 걷어도 창은 없고 곤히 잘 주무시는 옆 침대 할머니만 보일 것이기에 나는 몇 번이고 당신에게 목소리를 죽여 반-협박을 했지만 섬망 때문인지 당신은 새벽 내내 커튼을 들춰댔다. 당신이 너무 미웠다. 당신이 너무 미워서 당신을 죽이든지, 내가 죽어버리든지 하고 싶었다. 아침이 밝아 굳이 커튼을 걷지 않아도 바깥 풍경이 절로 그려질 만큼 볕이 병실을 가득 채우자 당신은 "여기가 어디오?"하고 나를 향해 묻고는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그렇게 의식을 영영 잃었다. 당신의 기억 속 마지막 아침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동이 트지 못하고 계속 저물고만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혹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제와 쭉 영원히. 박완서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생살을 찢듯 참혹한 선혈로 저녁 하늘을 무참히 물들이는 낙조. 지평선 아래로 기어코 침몰하지 않고, 발밑에는 뚝뚝 떨어진 슬픔이 낭자하다.

 하지만 나는 아주 잘 살아가려 한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하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오래 살기로 결심했다. 이는 당신에게 고맙다거나 하는 갸륵하고 깜찍한 마음이 아닌 복수이다. 내가 제일 오래 사는 이상 당신도 죽지 못한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를 배반한 당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난 당신에 대해 거짓말도 많이 하고 다닌다. 당신은 전라도 사람이 되었다가 땅부자가 되었다가 사기꾼이 되었다가 전쟁미망인이 되었다가 빨갱이가 되었다가 계주가 되었다가 계모가 되었다가 뒤죽박죽이다. 그러나 나는 상상력의 힘을 신뢰하고 이에 의지해 하루하루 간신히 살아가는 문학도이기 때문에 뜻밖에 당신을 근사하게 꾸며낸 날은 스스로 몹시 뿌듯하다. 이러다 노벨상마저 타는 게 아닐지. 상상력의 좁은 길을 부단히 걷고 걸으며 빙글빙글 돌다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어떤 중심에 다다랐을 때, 변하지 않는 무언가와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날이 따뜻해지자 곳곳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도저히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우악스럽게 피어대는 꼴을 보니 기분이 뒤숭숭하다. 병자들은 추운 겨울을 나기가 힘들다. 그래서 겨울엔 장례식이 많고 병실 침대는 주인이 빠르게 바뀐다. 나도 당신에게 미리 자리를 덥히고 있겠노라고, 나 성격 급하다고, 빨리 오라고 그렇게 졸라댔건만 끝내 당신은 봄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봄은 오고 꽃이 핀다.

새해가 되어 나에게 꽃을 준 사람이 있다. 언젠가 다시금 멈춰섰을 때 갑자기 그 사람이 생각이 났던 적이 있다. 하필 외국으로 놀러 왔던 중이라 카드를 사서 편지를 쓰고 선물을 사고 한국으로 돌아와 꽃을 샀다. 꽃을 건네는데 어쩐지 조마조마했다. 꽃을 주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구나, 이 사람은 용기를 낸 거였구나.

그 사람은 말했다. 어머니랑 고모는 내가 있어서 행복감을 이미 느끼고는 계시는 게 분명하고 이미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잘 하고 있다고, 그리고 사실 각자의 행복은 각자 찾아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으니까, 어머니와 고모도 어른으로서 본인의 행복을 잘 찾아내셔야 하는 거라고. 하나하나 다 설정하고 컨트롤 할 순 없는 거니까 너무 마음 무겁게 먹지 말라고.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약간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사람을 좀 먹게 되더라고. 우리는 여튼 좋은 사람이니까 행복해질 거라고, 우리가 행복하면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질 거라고. 나를 우선순위로 조금 더 올려도 된다고. 좋은 사람이라는 걸 항상 기억하고 나를 우선순위로 올려놓으라고.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거 보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자고 우리.

넌 아직 나를 잘 모른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꽃을 건네면서도 바들바들 떠는 쫄보야. 

언젠가 다시 만나 꽃을 줘야지. 두 손을 꼭 잡고 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책을 다시 펼쳐야지, 용기를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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