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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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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원우칼럼

저는 이제 석사를 마무리합니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9. 11. 15:08

저는 이제 석사를 마무리합니다

 

생활과학과 박사과정 김연광

 

 지나고 보면 왜 그렇게까지 하고 살았을까하는 순간이 있다. 나에게는 석사과정이 그랬다. 대학원 진학을 오래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내가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지 학부 시절 많은 탐구를 했지만, 나의 관심 분야는 국내에서 연구가 많이 되지 않은 분야로 어디서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면 좋을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졸업이 가까워질 때까지 마땅한 묘책이 없었고 먼저 대학원에 간 선배들은 입학하고 나면 알아서 정해질 테니 일단 진학부터 하라는 조언을 많이 해줬지만 나는 그게 싫었다. 무수한 고민 끝 내가 내린 결론은 유학이었다. 하지만 당장 유학을 떠나긴 실력이 부족했고 유학자금도 모을 겸 경력도 쌓을 겸 무엇보다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뭔가 구체적으로 가시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취업을 먼저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한 시대에 길이 남을 역병이 창궐하면서 내가 종사하던 산업계는 폭삭 주저앉았고 얼마 못 가 나는 실직자가 되었다. 더는 진학을 늦출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국내로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었다.

 진학 후 가장 큰 고민은 돈이었다. 모아둔 돈이 있었지만,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선 학비와 생활비를 벌 수단이 필요했다. 또 여전히 국내에선 비주류였던 나의 연구 분야를 좀 더 공부하기 위해선 교외에서 열리는 강좌를 수강할 필요도 있었다. 그 이유였을까 돌아보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던 거 같다. 한 학기에 9~12학점씩 수강했고, 연구를 진행하며 외부 강의를 수강했으며 기간제 교직원까지 하며 정말 하루를 쪼개 썼다. 어쩔 수 없었다. 나에게는 그게 일상이자 생존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렇게 진행했던 연구가 어느 순간 빛을 보기 시작했고 나에게도 졸업 논문이라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유사한 주제의 논문이 먼저 세상에 나왔고 그제야 내가 설계한 연구에 결함이 있었다는 걸 발견되었다. 지도교수는 조목조목 문제점을 말하기 시작했는데 슬프게도 반박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희망이 신기루로 변해버린 순간이었다.

 논문 심사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모든 연구 설계를 전면 수정하기 시작했다. 심사까지 남은 시간은 3개월 남짓이었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마음은 불 하나 켜지지 않은 터널을 걷는 것과 같았지만 또 어떤 봉변이 나를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달렸다. 그래도 그간의 고생이 헛되진 않았는지 어찌어찌 결과를 냈고 그렇게 논문 심사까지 올라갔다. 논문 심사를 디펜스(defance)라고 부르는 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연구에 공격하는 질문을 다 쳐낼 수 있는 자질을 갖췄는지 판별하는 이유라 했다. 하지만 나의 심사는 내가 쳐낼 기회조차 주지 않는, 심사위원들의 혹평을 연달아 듣는 자리였다. ‘졸업이 전부가 아니고 한 학기 더 해도 상관없을 듯 하니 이번에 떨어질 수도 있다라는 말을 목전에서 듣고는 심사장을 나갔다. 생각보다 결과 발표가 늦어져 걱정하던 그때 연락이 왔고 연구는 그냥 그렇지만 그 창의성과 그동안 열심히 한 거를 봐서 졸업은 시켜주기로 했다라는 답을 받았다. 심사가 끝났고 졸업도 확정되었지만 잘해서 받는 우수상이 아닌 노력상을 겨우 받는 기분 때문인지 전혀 후련하지 않았다.

 심사 이후 논문을 수정하는 마음 역시 편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새롭게 결과를 도출하긴 어렵다 보니 얼기설기한 연구를 수정하는 건 마치 보잘것없는 선물에 어떤 화려한 포장지를 쓰면 좋을지, 리본은 한 개를 달지 두 개를 달지 고민하는 것과 같았다. 수정할 게 많냐는 주변의 말에 내 논문이 마음에 들지 않아라는 답을 항상 뱉었지만, 어차피 졸업이 확정된 마당에 그렇게 수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다른 사람의 말은 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예뻐 보이게수정한 논문을 마감 2분 남기고 제출하고 나니 허망했다. 돈 벌겠다고 연구에 집중 못 한 게 문제였는지, 나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겠다고 다른 여러 일을 벌인 게 문제였는지 문제점을 계속 찾기 시작했고 미결된 허탈함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그렇게 졸업을 앞두고 연구실을 정리했다. 그동안 있던 소속과 집단을 떠나니 오롯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그제야 찾아왔다. 돌아보면 나의 문제가 꼭 무엇이라고 단정짓긴 어렵지만, 그 문제를 제대로 직면하고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생각이 부재한 채로 단순한 허망에 사로잡혀 나오지 못하는 문제가 가장 컸다. 그 개미지옥 같은 생각을 탈출해 허망함을 조금씩 부실 수 있었던 건 결국 주변 동료의 관심과 응원이었다. 연구자는 각자 독립된 연구를 수행하다 보니 때로는 서로를 경쟁자라고 인지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같은 공간에 생활하다 보면 그 익숙함에 서로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더 쉽게 보게 된다. 그렇기에 나와 마음이 맞는 동료를 만나기는 정말 쉽지 않지만,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하면서도 옆에서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항상 서로 응원하고 함께 힘을 낼 수 있는 동료를 만났다는 건 힘든 대학원 생활을 헤쳐나갈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을 얻은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때론 영양제 몇 개 먹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고,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를 짊어지고 가는 일도 있었지만, 학위라는 꽃이 만개하고 꽃잎이 하나둘 떨어져 새로운 씨앗을 맺는, 진정한 학위과정이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었던 건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게 된 것 같다.

 

그럼 나는 이제 정말 석사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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