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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열린 구조와 현재성 : 노발리스와 프리드리히 슐레겔을 중심으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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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열린 구조와 현재성 : 노발리스와 프리드리히 슐레겔을 중심으로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9. 11. 14:34

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열린 구조와 현재성 : 노발리스와 프리드리히 슐레겔을 중심으로

김진환 독어독문학과 현대독문학 전공

 

 

 

<논문목차>

 

1. 서론

1.1. 연구 목표

1.2. 선행 연구 검토

1.3. 연구 대상 및 범위

1.4. 연구 배경 및 의의

2. 낭만적 정신의 토대

2.1. 토대로서의 반토대주의’: 피히테의 절대자아에서 타자관계적 자아로

2.2. ‘무한성의 이념: 유한성의 괴테에서 무한성의 낭만적 문학으로

3. 열림과 닫힘의 무한 교환으로서의 낭만적 세계

3.1. ‘파라바시스부터 아이러니의 아이러니까지: 열림의 기제로서의 낭만적 아이러니

3.2. ‘아름다운 혼잡’: 아라베스크 문양의 낭만적 상징성

3.3. ‘보편적 무질서’: 카오스와 무한한 개방의 세계

4. 언어 또는 의미의 종결을 넘어

4.1. 노발리스의 독백: 언어의 자기생성으로서의 자기독백

4.2. 슐레겔의 아테네움 단편: 대화의 연속으로서의 파편들의 체계

4.3. 자기지시적 언어에서 자기지시적 예술로: 낭만적 비평론

5. 무한완성의 예술

5.1.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점진적 보편포에지이념

5.1.1. 그리스 포에지 연구에 관해: 고대의 보편성에서 현대의 개별성으로

5.1.2. ‘소설’: 착종의 형식

5.1.3. ‘선험 포에지’: 예술의 자기강화로서의 자기성찰

5.1.4. ‘점진적 보편포에지’: 무한한 개방의 시학

5.2. 혼종성의 낭만적 미학: 철학과 예술 사이의 부유

6. 가치론적 위계질서의 개방: 노발리스의 의 시학

6.1. 꿈은 이미 현실이다: 푸른 꽃6.2. 어둠은 이미 빛이다: 밤의 찬가

7. 결론

 

<논문요약>

 

 이 논문은 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정신을 개방성또는 열린 구조라는 용어로 규명하고자 한다. 이는 낭만주의에 관한 특정한 입장에서의 해석 또는 판단은 유보하고, 오늘날 역사기술 차원에서 낭만주의를 시작했다고 여겨지는 노발리스와 프리드리히 슐레겔 두 인물의 텍스트로 직접 들어감으로써 그들 정신의 현재성을 읽어내고자 하는 작업이다. 낭만주의란 특정 의미로 규정되기가 어려우며 오히려 다의적으로 파악될 수밖에 없는 어떤 운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대부분 연구가의 공통된 입장이라면, 이 같은 접근법은 유효한 것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필수적으로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초기 낭만주의 연구는 지금까지 크게 두 가지의 입장에 기초한 일련의 경향성을 보인다. 1980년대 활발히 이루어진 후기구조주의 담론에서의 연구 경향이 하나이고, 1990년대 이후 2000년대를 거치며 이어지는 낭만주의 철학에 관한 관심에 기초한 연구 경향이 다른 하나이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 경향들에는 두 가지 한계가 관찰된다.

 첫째, ‘낭만주의라는 정신사적 현상을 문학적인 것 또는 철학적인 것으로, 이를테면 양자택일의 입장에서 규정하려는 경향이다. 그러나 노발리스와 슐레겔에게서 문학적인 것/예술적인 것과 철학적인 것은 이미 구분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철학하기란 언제나 예술적 활동을 요구하는 행위이고, 마찬가지로 예술활동은 철학적 사유를 요구하는 행위다. 낭만주의의 수많은 용어들이 그렇듯이 예술/문학철학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서 파악될 필요가 있다.

 둘째, 초기 낭만주의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시도하는 최근의 연구들은 대부분의 분량을 프리드리히 슐레겔 개인의 철학에 의지한다. 이때 노발리스의 것은 제한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만 언급된다. 슐레겔의 사유가 초·중기 사유(낭만주의 사유)와 후기 사유(보수주의적 사유)로 분명히 구분되는 점, 그리고 그와 노발리스 중에서 누가 어떤 사유를 먼저 했는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그들이 활발한 교류에 기초한 공동사유를 펼친 점을 고려할 때, 낭만주의 철학을 고찰한다는 목적하에 슐레겔의 철학을 고찰하는 접근법에는 분명한 한계가 관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낭만주의 정신이 발현되는 시공간에 위치한 노발리스와 슐레겔이 말하려는 정신을 포괄적으로 고찰해내기 위해서는 첫째, 어떤 특정한 입장에서의 이론적 틀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은 채 그들 텍스트를 내부로부터 그리고 포괄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으며, 둘째, 노발리스와 슐레겔의 사유를 함께고찰할 필요가 있다.

 ‘낭만주의는 삶의 절대성을 보장해주는 신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들어선 인식론적 주체로서의 인간의 내면적 분열 상태와 대결했다. 즉 주체와 보편성의 관계 설정 문제가 관건이었다. 이때 낭만주의자들은 둘 간의 간극을 어느 한 방향으로 해소하려 하기보다, 그 간극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의 조건으로 바라보려 한다. 지속하는 변화라는 아이러니에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남는 것은 변화라는 양식이 지니는 동력이다. 그것은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낭만적 정신은 어떤 관계에 참여하는 관계항들의 대립에서 발생하는 존재론적 모순을 발생론적 과정으로 치환해 이해한다. 나인가 너인가, 인간(자유)인가 자연(운명)인가 등의 문제에 대한 양자택일의 최종 결론은 낭만적 정신으로 인해 지속 완성 중인 과정의 것이 된다. 이처럼 우리는 낭만주의에서 타자로 나아가는 구조 또는 형식을 만날 수 있다. 이같이 타자에 관해 논하고있는 낭만주의자들은 세계에 관한 어떤 최종의 진술이 가능하다는 근대적 현실관의 한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스스로가 근대의 타자가 된다. ‘개방성이라는 하나의 낱말, 다른 모든 용어와 마찬가지로 아이러니의 작용에 노출되어 무한히 열려 있을 그 낱말을 통해 낭만주의를 오늘날 읽는 것은 이런 점에서 필요할 것이다.

 

<저자 인터뷰>

 

1. 해당 전공을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럽의 국가를 그 나라의 언어로 여행해보고 싶어 독어독문학과를 선택했습니다. 나의 삶과는 전혀 다른 양식의 어떤 삶을 살고 있을 사람들이 궁금했습니다. 학부생으로서의 공부로는 채우지 못한 갈증이 있어 석사과정에 지원했고, 석사논문을 미처 쓰지 못하고 회사에 취직하며 도피했습니다. 세상의 길과 나의 길 사이에서 방황했고, 항상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신 지도교수님 덕분에 다시 학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제게 특별한 계기랄 것은 없습니다. 어떤 결정이든 그저 그 당시에 제게 끌리는 무언가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어떤 특정한 순간, 끌림을 이기지 못해 한 선택이 있고, 그 이후의 시간은 그 선택에 대한 사색의 시간입니다. 여러 고민이 항상 제 주변에 서성이지만,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제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합니다. 그 호기심은 어떻게 사는 것이 사는 것일까라는, 어쩌면 아주 소박한 질문에서 시작한 것임을 이제야 깨닫고 있습니다.

 

2. 논문 주제를 선정하시게 된 이유와, 논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꼭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차원에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현실적인 차원. 저는 최대한 나다운주제를 찾고 싶었고, 저의 삶과 밀접한 무언가가 되어있을 것에 대해 논문을 쓰고 싶었습니다. ‘낭만적이라는 단어가 제게는 매력적이었고, 저는 앞으로도 낭만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둘째로 학문적인 차원. 독일 낭만주의가 특수한 지점은 문학(예술)과 철학이 한 데로 어우러지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낭만주의는 사실 철학적 운동이기도 하도, 문학(예술) 운동이기도 하고, 문화 또는 민족운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데 예술적 사고, 철학적 사고, 과학적 사고가 따로 있던가요. 우리는 그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접하며 다양한 고민을 하며 지냅니다. ‘살다 보면 다 알게 된다라는, 누구나 다 아는 표현을 다시 읽을 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몰라도 다 살게 된다.’

 

3.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면 어떤 것들인가요?

 

 논문쓰기에는 여러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다만, 이를 아무리 체화하려 해봐도 실제로는 안 된다는 것이 문제지요. 그저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맞고 틀리고에 집중해 왔지만, 논문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주장이 있고 주장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리적 근거들이 필요할 뿐입니다. 데이터 기반의 경우라면 나의 가설이 있고 그것을 증명할 데이터를 찾으면 됩니다. 이러한 주장이나 가설은 모두 에서 출발합니다. 분야를 떠나 학위논문은 대단한 진리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세계에 내가 한 발짝 들여놓겠다는 자기주장일 뿐입니다. 그 자기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나의 주장은 주장이 되는 것이고, 나의 가설은 증명 가능한 사실이 되는 겁니다. 반 발짝, 반의반 발짝 정도 들어와 계시다면, 우리 조금만 더 뻔뻔해집시다.

 

4. 논문쓰기를 앞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부탁드립니다.

 

 공부를 하며 여러 현실적인여건에 부딪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유럽, 특히 독일 관련한 공부를 하며 이 공부 잘했다라고 생각한 지점은, 옳고 그름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이 과연 옳은것일까요. 옆 사람이 생각한 생각은 과연 틀린것일까요. 반대로 상대가 맞다, 나는 틀린것일 테지요. 과연 옳고’ ‘그른생각이 있었나, 여기부터 시작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생각도 어쩌면 틀렸을 수도, 상대의 생각이 어쩌면 맞을 수도, 그러니까 나나 너나 그저 각자의 다른생각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한 독일어 교육 관련 유튜브 채널에서 길거리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독일은 이민자가 많으니 그들에게 독일에서 생활하며 가장 많이 바뀐 점에 대

해 물었습니다. 답변 중 한 단어가 기억에 남습니다. ‘열림(Offenheit/Openness).’ 한국은 열리기 힘든 조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한번 창문을 열어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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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정리 : 정재훈 기자 wjd8889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