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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봄을 알리는 곤충들은 어디에 있나요? 본문
봄을 알리는 곤충들은 어디에 있나요?
-심혜린 (과학칼럼니스트)
“봄은 왔는데 침묵만이 감돌았다.(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中)”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1964년의 봄. 한 여성이 암으로 사망했다. 미국에서 환경 운동 촉발에 큰 영향을 미친 한 권의 저서를 출간한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그렇다면 이 여성,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을 통해 무분별한 살충제 · 제초제 남용으로 인한 환경 파괴에 경종을 울린 때로부터 60여 년이 흐른 지금, 봄을 알리는 새와 곤충들, 그리고 자연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최근 네이처 지에는 니코틴계 살충제인 네오니코티노이드(neonicotinoid) 살충제가 꿀벌 종의 성장과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 연구 결과가 게재되었다. 네오니코티노이드 살충제가 야생벌과 꿀벌의 면역 반응을 감소시키며, 월동 성공률이나 군집 번식률 등을 감소시키는 등 벌의 생존율을 낮춘다는 사실은 기존 연구를 통해 여러 차례 밝혀진 바 있다. 살충제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벌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네오니코티노이드는 식물에 의해 흡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벌이 수분을 매개하는 식물에 살충제를 사용하는 것이 근방에 존재하는 벌 군집의 성장과 번식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새로 발표된 논문에서 연구진은 농업 과정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농약이 꿀벌의 성장과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경관 규모(landscape scale)에서 분석했다. 연구진은 꿀벌 서식지 주변에서 살충제를 사용하는 농업지의 비중과 농약의 사용 방식, 그리고 작물이 수분 매개자를 얼마나 잘 유인하는지에 따라 꿀벌의 살충제 노출 정도와 그에 따른 위험성이 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300여 개의 호박벌(Bombus terrestris L.) 벌집을 유럽 지역의 사과 또는 유채 농경지 총 100여 곳에 배치하고 작물의 개화 전후에 벌집의 무게 및 벌의 개체수 변동을 추적했다. 연구진은 주변의 농경지 비율이 높을수록 벌집의 성장률이 감소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연구진은 관측 지역 내에서 수집된 꽃가루에 잔류하고 있는 농약의 종류와 양을 분석했다. 벌집에서 수집된 꽃가루에서는 최대 27종에 달하는 농약이 발견되었으며, 일반적으로 8종 정도의 농약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현행 살충제 규제가 꿀벌을 포함한 수분 매개자를 보호하기에 불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규제는 개별적 물질에 대한 실험실 내 테스트나 그보다 조금 더 큰 영역에서 진행되는 세미필드(semi-field) 테스트로 진행되어, 넓은 영역에서 다양한 종류의 화학 물질이 섞여 상호작용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벌을 비롯한 곤충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연구자들은 ▲서식지 손실 ▲합성 살충제 및 비료에 의한 오염 ▲병원체 및 외래 도입종 등 생물학적 요인 ▲ 기후 변화 등을 곤충 감소의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최근에는 기후 변화와 서식지 손실 간 상호 작용에 의한 효과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 발표된 다른 논문에서는 벌의 열 내성 및 건조 내성을 바탕으로 기후 변화에 따른 벌 개체수 증감을 예측했다. 연구진은 연구를 통해 (1) 기후 변화가 벌의 풍부도(abundance)에 미치는 영향 (2) 기후 변화가 벌의 크기 및 다양성(biodiversity)에 미친 영향 (3) 기후 변화에 의한 생태계 전환이 벌의 생태에 미칠 영향이라는 세 가지 주제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여기서 풍부도란 생태계 내 존재하는 벌의 총개체수와 연관된 지표이며, 다양성은 생태계 내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벌이 있는지와 연관된 지표이다. 예를 들어 두 종류의 벌이 각각 만 마리 존재하는 A 집단과 열 종류의 벌이 각각 천 마리씩 존재하는 B 집단이 있을 때, 벌의 풍부도는 A 집단이 높지만, 벌의 다양성은 B 집단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른 낮은, 중간, 극단적 기후 변화를 가정한 3가지 기후 시나리오 모두에서 건조 내성이 높은 일부 꿀벌 종은 번성하는 한편 243종의 벌 종 가운데 46% 정도에서는 개체수 감소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었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두 효과가 상쇄되어 미래에도 여전히 지역 내 벌의 풍부도는 유지될 수 있으나, 다양성 측면에서는 감소한 형태를 보이리라는 예상이다. 한편, 연구진은 건조 내성이 높은 벌일수록 체질량이 큰 경향이 발견된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꽃과 벌 중 한 쪽이 지나치게 크거나 작지 않고 적절한 크기로 매치되어 있을 때 수분이 잘 일어나고 및 식물–수분매개자 상호 작용 네트워크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이는 기후 변화로 인해 한 지역에 분포하는 벌의 크기가 전반적으로 커지는 것이 수분 네트워크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몸집이 큰 벌에서 작은 벌보다 병원균 전파가 쉽다는 점에서 연구진은 큰 벌 종이 우세해지는 것이 전체적인 벌 공동체의 건강에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모델링을 통해 기후 변화 및 토지 이용 변화에 따른 생태학적 변화를 정량화하거나 예측하는 연구 역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벨기에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은 유럽 대륙에서 46종의 호박벌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생태학적 적합성을 분석할 수 있는 모델 구축 및 이를 이용해 얻은 예측 결과를 다루고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2010년대에 이르는 호박벌의 지역적 분포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성한 생태학적 모델링을 통해 연구진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중부 유럽에서 호박벌의 생태학적 적합성이 감소함을 확인했다. 또한, 연구진은 위도 55도 아래쪽 영역에서 호박벌의 종 풍부도가 감소했음을 발견했으며, 인류가 지금과 같은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유럽 대륙에서 위도 60도 아래 지역은 호박벌이 살아가기 부적합한 장소가 될 것이라 경고했다. 즉, 스칸디나비아반도에 해당하는 고위도 지역 정도만 호박벌에게 생태학적으로 적합한 지역으로 남게 되며, 그마저도 도시 인프라, 질병, 환경오염 등 예측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은 인위적 · 자연적 요인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영역이라 보기는 어렵다.
개체수 감소와 지역적인 멸종은 꿀벌 종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지난 2017년 독일의 자연 보호 구역 내 곤충 총량(biomass)이 1989년부터 2016년 사이 75% 이상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한편, 2016년부터 2022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독일의 곤충 총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는 최근 논문도 있다. 이 논문에서는 34년간 수집된 곤충 총량 추이를 바탕으로 기상 조건이 곤충 총량의 일시적 변화를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임을 확인했다. 분석 결과에 의하면 특히 겨울에 발생하는 기상 이상 현상이 그해의 곤충 총량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12월에는 900여 개에 달하는 육상 곤충 집합체(assemblage)의 장기적인 추세를 조사한 결과 곤충의 총량과 종 다양성이 모두 감소했다는 내용의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굳이 60년 전 출간된 책 이야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근래 몇 년간 봄 무렵이면 ‘꿀벌이 사라졌다’라는 내용의 보도를 각종 매체를 통해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올해 4월 당진시에서는 양봉 농가의 약 40%에서 폐사 등으로 인한 벌집 군집 붕괴 현상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다. 연구자들은 2080년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꿀벌 종의 지역적인 멸종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한다. 한편, 연구자들은 이와 같은 곤충 총량 감소가 새 등 곤충을 먹이로 삼는 다른 동물 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촘촘히 얽혀 있는 생태계에서 한 종의 몰락은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다. 꿀벌의 침묵은 꽃의 침묵으로, 과일의, 새의, 동물의, 인간의 침묵으로 이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태계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그림 설명
온실 가스 고배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예측된 유럽 대륙의 꿀벌 생태학적 적합성 변화 지도. 2080년에 이르기까지 꿀벌의 생태학적 적합성 변화를 현재(t0)와 비교해 나타낸 것으로, 기후변화가 지속된다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일부 영역(파란색)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 모두가 현재 대비 꿀벌 생존에 부적합(빨간색)해진다.
(출처: Ghisbain, G., Thiery, W., Massonnet, F. et al. Nature 628, 337–341 (2024).)
참고 문헌
Ghisbain, G., Thiery, W., Massonnet, F. et al. Nature 628, 337–341 (2024).
Kazenel, M.R., Wright, K.W., Griswold, T. et al. Nature 628, 342–348 (2024).
Müller, J., Hothorn, T., Yuan, Y. et al. Nature 628, 349–354 (2024)
Nicholson, C.C., Knapp, J., Kiljanek, T. et al. Nature 628, 355–358 (2024).
van Klink, R., Bowler, D.E., Gongalsky, K.B. et al. Nature 628, 359–36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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