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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4 파리올림픽 XY 염색체 여성 권투선수와 스포츠 공정성 본문
2024 파리올림픽 XY 염색체 여성 권투선수와 스포츠 공정성
고려대학교 국제스포츠학부 임승엽 교수
스포츠는 단순한 신체 활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구현하고 사회 통합을 이끄는 문화적 실천이자 인간 존엄성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 스포츠의 의미와 가치가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성 발달 차이(Disorders of Sex Development, 이하 DSD) 또는 안드로겐 과다증으로 인해 XY 염색체를 지닌 여성 선수의 엘리트 스포츠 참여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이 전 세계 스포츠계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된 계기는 최근 파리올림픽에서 불거진 XY 염색체 여성 복서의 출전때문이다. 알제리의 이만 칼리프 선수와 대만의 린 유팅 선수가 여자 복싱 종목에 출전하자 이를 둘러싼 격렬한 찬반 논쟁이 일었던 것이다. 생물학적 성별, 성 정체성, 그리고 운동 능력이라는 복잡한 요인들의 충돌이 스포츠 현장에서 어떤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엘리트 스포츠에 내재된 포용성과 공정성의 조화라는 난제를 새삼 절감하게 한 계기이기도 했다.
이 논란의 중심에는 이른바 DSD로 불리는 의학적 상태가 있다. 이는 성 염색체, 성선, 생식기 등 성 결정 및 분화 과정에서 전형적인 남성 혹은 여성 개체와는 다른 발달 양상을 보이는 경우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일례로 XY 염색체를 가졌으나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에 대한 반응성이 낮아 결과적으로 여성의 신체적 특성을 나타내는 개인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완전한 남녀의 구분을 전제하는 전통적인 스포츠 시스템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들을 스포츠 경기에서 어떻게 대우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이 문제를 둘러싼 가장 치열한 논점은 공정성 담론이다. XY 염색체는 특히 근육량과 힘 등에서 이점을 가질 수 있는 남성적 신체 조건과 연관되기 때문에 여성 선수로 간주되는 DSD 선수가 이 같은 조건을 가진 채 여성부에서 경쟁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비롯한 다수의 스포츠 단체는 DSD 여성 선수들에게 테스토스테론 억제 요법 등 의학적 개입을 요구해왔다.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들의 신체를 ‘여성 범주에 부합하도록’ 인위적으로 변형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다각도의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DSD 여성의 신체적 이점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운동 능력의 관계는 상당히 복잡하고 개인차가 큰 것으로 보고된다. XY 염색체와 테스토스테론 조건을 모두 갖춘 여성 선수라 할지라도 후천적 훈련의 영향으로 평균적인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경기력을 과도하게 문제화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윤리적 문제의식이다. DSD 여성의 참여 자격을 특정한 신체적 조건에 따라 차등화하는 것은 스포츠의 근본이념인 인권 존중, 비차별의 원칙에 반한다. 개인의 신체적 특성에 근거해 정상/비정상을 구분하고 불이익을 강요하는 관행은 오랜 편견에 기댄 또 다른 차별이라는 것이다. 스포츠는 모든 인간 개체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무대여야 한다는 철학적 당위에서 출발한 문제 제기다.
이 양 극단 사이에서 대안적 입장을 모색하려는 시도도 있다. DSD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합리적인 경기력 평가 기준 수립 등을 통해 점진적 개선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가령 XY 여성에게 일방적인 호르몬 조절을 강제하기보다는 근육량, 골밀도 등보다 직접적인 신체 조건에 주목하는 새로운 기준을 설정하는 식이다. 단순히 특정 성을 배제하거나 낙인찍기보다는, 모든 개인이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포용적 접근인 셈이다.
이처럼 DSD 여성 선수의 스포츠 참여 문제는 단순한 해법을 찾기 어려운 다층적이고 근원적인 화두이고, 공정성, 윤리, 다양성, 과학적 합리성 등 스포츠의 제반 가치와 철학이 교차하고 때로는 충돌하는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서는 어느 한 편에 경도된 단선적 사고보다는 종합적이고 열린 자세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스포츠만의 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스포츠는 사회의 축소판이자 동시에 미래를 예견하는 전범(典範)으로 기능해 왔다. 따라서 스포츠를 통해 다양성과 포용의 문제를 어떻게 조화롭게 풀어갈 것인가의 물음은 결국 우리 공동체 전체가 직면한 도전이자 과제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XY 염색체 여성 선수의 사례는 우리에게 인간 존엄성과 사회적 정의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성찰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상의 논의에서 제시된 다양한 쟁점과 관점은 쉽사리 일치점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 모순과 긴장마저도 스포츠의 가치를 보다 깊이 있게 고민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스포츠가 우리 사회 인권 규범의 진전을 선도하고 다양성이 꽃피는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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