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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미래’를 퀴어링하기 본문
‘미래’를 퀴어링하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오현지
젠더의 시각에서 저출산 문제를 조망하는 원고를 부탁받고 떠올린 것은 ‘김규진의 모모일기’였다. 김규진씨는 동성 결혼 법제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한국에서 레즈비언의 삶을 다룬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의 저자이자, 2023년 퀴어퍼레이드에서 임신 사실을 밝혀 화제가 된 인물이다. ‘모모(母母)일기’는 김규진씨가 딸 라니를 출산한 이후 변화한 일상과 육아에 관해 한겨레에서 연재하고 있는 시리즈의 제목으로, 자신의 가족이 부인을 부르는 호칭에 관한 10번째 글에서 신승은 감독의 단편영화 <마더인로(Mother in Law)>의 주제곡을 인용한다. “There is no word to call you (당신을 칭할 단어가 없네) / There is no world to live with you (당신과 살아갈 세상이 없네)”
위의 기사를 보면 매해 열리고 있는, 그러나 올해도 서울광장 사용 허가를 받지 못한 퀴어퍼레이드에서 퍼레이드 참여자들보다 더 큰 목소리와 꽹과리 소리로 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혐오 세력이 든 팻말이 떠오른다. “남자 며느리와 여자 사위는 싫다!” 그런 팻말을 볼 때마다 이런 의문이 생긴다. 어느 쪽도 곤란하다면 이름을 부르면 안 되는 걸까? 모모일기도 “오히려 적합한 지칭이 없다는 건 행운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며, 동성 부부와 비교할 때 이성 부부가 기존의 성역할에 따라 가사노동·돌봄노동이 불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밝힌 연구 결과를 언급한다. 물론 동성 부부든 이성 부부든 서로를 배려하며 최대한 평등한 부부 생활을 이어가는 데에는 피차 노력이 따르겠지만, 이 노력을 ‘어떻게’ 해나가면 좋을 것인지 고민하는 데에 성역할이라는 ‘방해물’이 덜 한 셈이다.
기존의 국가와 가족의 관계에서, 가족은 국가 산업의 생산력을 담당하는 개별 국민을 ‘재생산’하는 장소였다. 특히 한국 사회는 산업화 시기에 이성 부부와 아이 두 명이라는 핵가족 모델이 이른바 ‘정상 가족’의 표본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때 남성은 공적인 인력으로 가정의 경제부양자의 역할을, 여성은 가정 내에서 출산과 함께 가사·돌봄노동을 수행하는 역할을 할당받았다. 그러나 역사상 남성 가장의 소득만으로 최소 3인의 생계유지가 가능한 경우는 일부의 고소득 가정에 제한되었고, 특히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또한 국가의 발전이 개인의 행복보다 우선시 되는 분위기가 변화하였고,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함에 따라 기존의 국가-가족 모델은 그 시효가 끝난 시점에 이르렀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저출산 대책을 고민할 때, 국가 유지를 위해 출산이라는 재생산이 필요하다는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실효성 없는 대책만 나올 뿐이다. 어떻게 하면 개개인이 원하는 삶의 형태가 결혼 또는 출산·양육과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 질문해야 한다.
이 고민에 대해 퀴어의 관점은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퀴어퍼레이드 장면으로 되돌아 가보자. 혐오 세력은 축제를 향해 ‘문란하다’라고 외친다. 퀴어들이 만나서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며 퀴어-프라이드 굿즈를 마음껏 사기 위해 모이는 퀴어퍼레이드가 ‘문란하다’라는 부정적 낙인이 찍힌 이유는 무엇일까? 시스젠더-이성애자들이 자유분방한 성적실천을 한다고 해서 ‘이성애자는 문란하다’라고 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퀴어의 성적실천에 문란하다는 낙인이 찍히는 것과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지 않는 현실 사이의 연결고리는 바로 ‘재생산’에 있다. 즉, ‘아이’라는 ‘미래’를 재생산할 것이라 기대되는 이성애 커플과 달리 흔히 시스젠더-동성애 커플로 상상되는 퀴어의 관계 맺기는 미래가 주어지지 않은, 오직 한시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김규진씨 가족을 보면서 알 수 있듯, 과학의 발전에 따라 변화한 현실은 ‘정상적이고 규범적인’ 이성애 부부 가족의 출생만을 인정하는 법과 제도를 앞질렀다. 2020년 정자 기증을 받아 아이를 출산한 사유리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라고 명령해온 이성애 규범성의 사회는, 그 규범을 수행할 개인의 행복은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미래를 위한 아이만을 원했을 뿐 아이를 위한 미래는 상상하지 않았다. 치솟는 육아 비용만이 문제가 아니다. 노키즈존이 늘어나는 카페거리, ‘맘충’이라는 말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댓글 창,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동 대상 범죄, 가중되어가는 입시 스트레스 등 ‘아이를 낳기가 무섭다’ ‘태어날 아이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뒷받침할 상황은 무수히 많다. 최근 문제가 된 공교육의 교권 하락에 관해서도, 몇몇 사건의 가해자였던 고위층 학부모의 비도덕성에 분노하는 한편으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의 부재를 오롯이 교사가 책임짐으로써 아이와 학부모, 교사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동성 결혼 법제화와 같은 제도의 변화는 사회를 한 번에 바꾸어놓는 마법 주문도 아닐뿐더러, 퀴어 당사자의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다는 목적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문제다. 또한 퀴어가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를 시스젠더-동성 커플의 결혼에만 제한하는 것은 또 다른 규범성을 낳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데, 특히 결혼을 통해 보장된 부부 관계만이 사회 제도 내에서 상호 보호 관계로 인정된다는 점에서 문제다. 생활 동반자 법안은 법이 보장할 수 있는 상호 보호 관계의 영역을 넓힌다는 점에서, 기존의 가족 관계가 아닌 새로운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동성 결혼 법제화와는 또 다른 친밀성에의 상상력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단순히 미래를 위해 현재를 견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퀴어화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 동성 결혼 법제화와 생활동반자 법안은 우리가 요구해야 할 전부가 아니라, 미래를 퀴어링하기 위한 조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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