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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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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면/쟁점 기고

대만인의 2024 대선에 대한 하나의 소묘

Jen25 2024. 3. 9. 15:19

대만인의 2024 대선에 대한 하나의 소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 허경아

 

선거의 해2024년에 세계에서 첫 대선을 치르는 국가인 대만에서는 2024113일에 총통 및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가 막을 내렸다. 그 결과, 집권 여당인 민주진보당(民主進步黨,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65) 후보가 5586019(득표율 40.05)로 제1야당인 중국국민당(中國國民黨, 국민당) 허우유이(侯友宜·63)4671021(득표율 33.5%)과 제2야당 대만민중당(台灣民眾黨, 민중당) 커원저(柯文哲·65) 후보의 3374921(득표율 26.3%)를 압도해 최종 승리를 거두었다.

이번 대만의 대선은 이전에 민진당의 전 총통인 차이잉원(蔡英文)8년에 이어 4년을 더해 3번째 집권에 성공한 것에 이어 이번에도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집권하게 되면서 일각에서는 그 이유를 민중당의 반중 친미노선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중국의 대만에 대한 지속적인 군사적 압박과 경제적 회유는 미국과 협력해 중국과 거리두기’, 또한 대만 독립의 구호를 내세우는 민진당이 3연승 하도록 한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선거가 2020년과 대비해 볼 때 여러 가지 측면에서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2020년에 치러진 대선에서 민진당 후보 차이잉원은 810만 표를 얻었고(득표율 57.13) 대만 대선 역사상 가장 높은 표수를 받았다. 그때 2014년 해에 홍콩에서 중국의 개입 없이 공평한 행정장관 선거를 쟁취하기 위해 우산혁명(雨傘革命)이 일어났고, 2019년에도 도주인도법과 형사법 개정 법안의 도입으로 반송중(反送中) 운동이 벌어졌다. 홍콩이 중국에 편입되면서 점차 자주성을 잃은 상황을 보고 대만에서는 오늘의 홍콩은 내일의 대만이 될 수 있다’(今日香港 明日台灣)라는 구호가 청년층에서 매우 많은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또한 친중 성향이 강한 국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게 되면 대만도 홍콩처럼 중국에 의해 포섭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은 하여금 대부분의 청년 유권자들을 민진당에 투표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2024년의 선거에서는 기왕의 통일’, ‘독립이슈는 2020년처럼 선거 결과를 좌우시하는 유일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 총통인 차이잉원보다 반중 성향이 더 강하다고 평가받는 라이칭더는 당선되면 중국과 '평화, 대등, 민주와 대화'의 원칙을 지키겠다고 견해를 표했다. 국민당 후보인 허우유이도 외교정책 측면에서 친미화중(親美和中)이라는 노선을 내세웠고 민중당 후보 커원저도 친미우중(親美友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어도 미국과 중국 양 대국 사이에 최대한 균형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처럼 보인다. 대선 전에 실시했던 총통 후보 토론대회에서 드러났듯, 통일, 독립보다는 청년 거주권, 토지 정의, 사형 폐지, 핵 발전소의 존속 여부 등 민생(民生) 이슈가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또한 이번 대선에서 주목할 지점은, 처음으로 대선을 치른 민중당 후보 커원저가 바로 26.3%를 득표했다는 사실이다. 양당제가 주류였던 대만에서 제3의 정당이 이렇게 많은 표를 얻었다는 것은 대만 역사상 최초의 사례이다. 국민당 및 민진당과 달리 추상한 정치적 대의만 호소하지 않고 SNS 등 인터넷 플랫폼을 활용해 청년의 생계와 주거권 문제를 강조한 결과 그는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성공적으로 20, 30대의 청년층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대선 직전 여러 여론조사에 따르면 커원저는 젊은층에서의 지지율이 35-40%까지 달했다. 2020년에 민진당을 지지했던 청년층이 이번에 대부분은 민중당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셈이다. , 이번 대선에서 국민당과 민진당은 여전히 친중이나 반중이라는 거대담론에 호소하고 있지만, 현실적 측면에서는 소위 중국 요인은 더 이상 선거를 좌우시하는 유일한 요소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청년층들에게는 오히려 대만 내부의 사회나 경제 이슈가 이번 선거에서 더욱 관건이 되는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심지어 기존 친중이나 반중의 이념만 내세우는 국민당과 민진당에게 모두 지겹다”, “오랫동안 국민당과 민진당의 득세를 벗어나는 새로운 노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청년층 유권자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 커원저가 인솔하는 민중당은 광대한 청년층들의 지지로 그동안 민진당과 국민당만 정개를 차지했던 대만의 양당 체제를 깨고 제3세력이 부상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받는다.

다른 한편 민진당은 비록 총통선거에서는 승리했지만 113명의 입법위원으로 구성되는 국회 선거에서는 51석만 얻어 과반 의석을 획득하지 못했다. (국민당은 52, 민중당은 8) 이처럼 총통 득표율도 40%에 지나지 않고 반 이상의 입법위원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한 민진당은 다른 야당과 적절히 소통하지 않으면 정부가 정책을 실행하는 데에 있어 야당으로부터의 견제받을 것이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심할 경우에는 야당의 부결권 행사로 여당이 무슨 정책을 내세우더라도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결국 정부가 공전(空轉)의 위기에 빠질 우려도 있다. 이러한 '여소야대'의 위기를 두고, 어떻게 당파를 넘어 서로 합작할 수 있는 새로운 전기(轉機)로 전환할 수 있을지, 또한 모호한 민족주의적 구호에만 머무르지 않고 대만 사회 내부의 민생 문제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라는 과제가 바로 이번 대선의 승자인 민진당의 가장 큰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