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군형법 추행죄가 상상하는 동성애는 없다 본문

3면/쟁점 기고

군형법 추행죄가 상상하는 동성애는 없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12. 5. 23:39

군형법 추행죄가 상상하는 동성애는 없다

 

심기용(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는 군인 간의 동성 성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다. 정확히는 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 등 그 밖의 추행을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입법 취지는 동성애가 비정상적인 추한 성적 행위(추행)이고, 폐쇄적 환경에서 성욕이 활발한 남성 사이에 동성애가 쉽게 발생할 수 있으므로, 동성애 때문에 군기와 전투력을 손실시킬 것을 우려해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한, 행정적 징계로는 군대 내 동성애를 막을 수 없으므로, 형사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법은 네 번 위헌심판을 받았고 모두 합헌 판결을 받았다. 세 번째 판결까지의 헌법재판소의 위헌의견은 이렇다. 문구만 봤을 때는 항문성교가 동성 간 성행위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고, 합의 여부, 여성 동성 성행위 여부 등 주체, 객체, 행위를 명확하게 지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 안타깝게도 합헌의견도, 위헌의견도 이 법이 동성애 혹은 동성 성행위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동성애자를 공사구분 못하고 사리분별 없이 성욕에만 이끌려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이들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지난 1026일 네 번째 위헌심판에서의 위헌의견은 훨씬 진전된 입장을 보였다. 이 법이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과잉금지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보았다. 이성애 혹은 이성 성행위는 업무수행에 방해가 될 때 행정적으로 징계하는 수준으로 끝나는 반면, 동성애 혹은 동성 성행위는 가장 가혹한 조치인 형사처벌로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점에서 평등 원칙에도 어긋나므로, 불합리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대가 변해 더 이상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평가를 할 수 없는데도, 이 법은 아직도 동성애나 특정 성적지향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가치판단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현재 남녀 군인은 연애하고 결혼도 할 수 있다. 성관계를 맺는 것은 당연히 사적인 행복추구 행위 정도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 군인들이 군기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징계 또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전투력 손실은 거론되지 않는다. 그런데 남-남 군인이 사랑하고 성관계를 하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이들이 남녀 군인과 다르게 동성애를 확산시켜서 전투력을 약화하고 결국 군대를 무너뜨리기까지 한다고 보는 것이다. 즉 이성애 관계를 맺는 이들은 공사구분하며 임무 수행을 문제없이 할 수 있지만, 동성애 관계를 맺는 이들은 공사구분하지 못하고 임무 수행도 못 하고 심지어 조직을 해한다는 것이다.

폐쇄된 환경에서 남성들의 동성 성행위가 창궐한다는 것은 그저 판타지 소설이다. 남중, 남고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남성이 밀집하고 성욕도 활발한 나이고 폐쇄된 환경이지만, 결국 발생하는 것은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 차별과 혐오다. 동성애, 동성애자는 더럽다고 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소위 여성스러운남성 청소년은 쉽게 성희롱의 대상이 된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98%의 청소년 성 소수자가 학교에서 성 소수자 대한 혐오 표현을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랑과 쾌락이라 아니라, 혐오와 폭력인 것이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도 그랬다. 오히려 군인들은 서로 의도치 않게 성적인 부위를 접촉하게 되면 불쾌해했다. ‘예쁘장하게 생긴동기나 후임들을 만지고 안고 하다가도 그 양상이 과해지면 너 호모야? 남자 좋아해?”라고 물으며 놀리거나 욕했다. 한 번은 선임이 훈련 대기 시간 중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너희들은 게이를 어떻게 생각하냐며, 자기는 그들을 발견하면 교회에 몰아넣고 불을 질러 죽일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 말을 일상적으로 들어야 했던 나에게 샤워실은 항상 긴장의 공간이었다. 사실 전방부대 일과가 너무 피곤해서 다른 사람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지만, 혹시라도 내 몸의 생리적 반응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날 의심하기 시작하면 어떡하나 생각하며 위축되었다. 남자들은 심심하면 성기 크기를 가지고 서로 비교하며 이야기하는 문화가 있는데, 그런 대화를 할 때 내가 말을 얹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언젠가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모든 순간에 대해 비난해올 것 같았다.

군 동료들이 내 성기를 만지거나 엉덩이에 자기 성기를 비비거나 하는 행동을 장난이랍시고 할 때가 있었다. 그건 성적 욕구를 풀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냥 남성끼리의 친밀한 장난이었다. 기겁해서 싫다고 해도 반응이 재밌다며 더 하는데, 어떻게 멈출까 하다가 침대에 던져놓고 확 덮치는 척을 했다. 어설픈 행위자가 본 것은 실제로 남자와 성관계를 하는 데 숙련된 사람의 자세와 눈빛이었으니, 달라도 뭔가 달랐을 것이다. 당황했던 그 애는 아 형은 뭔가 달라, 진심 같아라며 다신 나에게 그런 장난을 치지 않았다. 그가 원한 건 폭력적인 장난이었지, 남성과 나누는 성적 쾌락이 아니었다.

동성애는 확산되고 창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망상에 기반한 이 동성애 처벌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성적지향이나 성행위 양상을 초월해서, 마음을 모으고 침략적 전쟁을 반대하는 군대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성 소수자들도 사랑, 쾌락 추구 행위와 군사적 임무 수행을 구분할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항상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었다. 그리고 성 소수자 군인들은 이성애자 남성의 문화로부터 배제당하거나 그런 혐오의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위축되어 살아간다. 무엇이 진짜 군사력을 약화하고 있는지, 헌법재판소는 차별의 색안경을 벗고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