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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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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면/쟁점 기고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11. 7. 20:45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백희정(광주광역시 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 사무국장)

 

은둔형외톨이 정책과 관련해 광주는 최초수식어가 유독 많다. 지자체 차원으로는 전국에서 최초로 은둔형외톨이지원조례(2019)’가 제정된 이후 은둔형외톨이 실태조사 실시(2020), 중장기기본계획 수립(2021), 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 설치(2022) 등의 과정은 모두 지자체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일이었다. 광주광역시는 은둔형외톨이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지자체가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퍼스트펭귄역할을 해냈다. 이후 202310월 현재 25개 지자체에서 은둔형외톨이지원조례가 제정되었다.

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이하 센터)는 지난해 5월에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다. 센터 사업은 조례에 근거한 사업 범위, 기본계획의 연차별 계획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혹자는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센터가 문을 열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지원 대상자로서 은둔형외톨이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을 은둔형외톨이로 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다 보니 지자체마다 은둔 상태에 있는 기간, 연령, 은둔 당사자 지원 방안도 조금씩 다르다. 센터에서는 은둔형외톨이를 한정된 공간에서 사회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사회적·공간적 고립을 겪고 있으면서 동시에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센터에서 지원 중인 은둔 당사자들 중 대부분은 가족과 지인을 통해 센터에 의뢰해왔다. 가족이 당사자 발굴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사 기관에서도 연계 의뢰를 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올해는 당사자가 직접 문의하는 건수가 늘었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적 관심과 인식 변화가 생기면서 숨어있는 은둔 당사자들이 사회로 나오기 위해 조금씩 용기를 낸 것으로 해석된다.

센터는 연령에 제한을 두지 않고 은둔 당사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70여 명의 당사자를 만났는데, 그중 20~3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청년층의 은둔·고립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 등교를 거부하는 10대 후반의 은둔 청소년과 40대 성인에 이르기까지, 은둔이 반복되는 사례도 발견되었다. 은둔 원인도 다양하다. 은둔형외톨이는 10대 이후에 은둔하게 되었다는 보고가 높았다. 이들 중 학교에서 왕따, 괴롭힘, 학교폭력은 물론 가정 내에서도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거나 가정 폭력 피해 경험을 지닌 이들이 높은 비율로 발견되었다. 취업 실패와 직장에서 적응이 힘들었던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대인기피가 생겼고 차츰 집안이나 방안에만 있게 되었다고 했다. 또 오랜 기간 은둔 상태에 있다 보니 불안과 우울 질환을 동반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센터는 초기부터 은둔 당사자에 대한 단계별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았다. 단계별 지원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개별 지원이 되다 보니 품과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당사자들과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있고 맞춤형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궁극적인 목표인 재은둔을 막고 원활한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한 시도였다. 프로그램은 심리상담을 시작으로 생활습관개선, 대인 관계향상, 사회기술훈련의 영역으로 나뉜다. 당사자가 센터에 오면 먼저 상담을 시작한다. 상담은 회기의 정함 없이 지원되고 당사자 가정으로 방문상담도 가능하다. 당사자들은 생활습관이 많이 깨져있다.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씻거나 시간에 맞춰 일어나고 밥을 챙겨 먹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생활습관 개선 프로그램은 참여자에게 미션을 주고 수행하도록 하기도 하, 자신들이 목표한 생활습관을 기르는 연습을 할 수 있게 돕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은 주로 SNS 채널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

, 당사자들은 대인관계에서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나가고 싶지 않고 버스를 타는 것도 걱정된다는 사례도 있었다. 따라서 대인관계 개선 프로그램은 은둔 당사자들끼리 만나 소규모로 진행된다. 현재 센터에서는 체험활동 중심인 명랑한 은둔자 모임과 집단상담 활동인 토리, 여행을 떠나다가 진행 중이다. 은둔 당사자들에게 소속감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매일 모처로 출근하게 함으로써 방 바깥도 안전한 곳이 있음 알려주는 아무튼 출근프로그램도 좋은 호응을 얻었다.

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모든 프로그램은 당사자들의 상태와 요구가 반영되어 기획되었다. 프로그램 참여자 중 일부는 청년도전지원사업에 참여하기도 하고 디지털배움터를 통해 진로를 탐색하고 있다. 나아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도전해보기도 하고 은둔고수가 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을 해내기도 한다. 물론 아직 준비가 덜 된 당사자들도 많다. 일부는 다시 은둔하는 등 기복을 겪고 있거나 대인기피로 여태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센터는 지난 16개월 동안 당사자들과 즐겁기도 했고 안타까워하기도 하면서 함께 해왔다. 대부분 자신에게 어려움이 와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사회적 관계자본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최근 흉악범죄자들이 은둔형 외톨이로 살았다는 기사 때문인지 이들이 범죄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지원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리를 대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겨우 사회에 나오기 위해 용기를 낸 당사자들에 또 다른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20대 당사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다. 집 밖에 나와도 안전하게 느끼고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웃들이 많아 그들이 더 많은 용기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결국 집 밖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해 자신을 집에 가둬버린 은둔 당사자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집 밖에도 안전한 공간과 사람들이 있고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