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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디저트를 통해 바라본 식민지 조선 본문

5면/저자와의 대화

디저트를 통해 바라본 식민지 조선

Jen25 2025. 6. 9. 15:19

박현수,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한겨레출판, 2025

 

디저트를 통해 바라본 식민지 조선

 

 

Q : 선생님께서는 식민지 조선의 음식과 문학 작품에 많은 관심을 보여오셨습니다. 해당 책은 소설이나 신문기사에 나타난 음식의 흔적을 넘어 디저트의 역사나 유래, 가격 등을 자세히 추적하고 있는데요. 문학과의 연결지점을 지닌 역사 추적의 시도는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 저는 학부와 석·박사 과정을 통해 현대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을 전공했습니다.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미디어의 논리가 문학 텍스트에 각인되는 과정, 또는 문학 텍스트가 어떤 미디어의 논리에 영향을 받았는지 등을 주로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다 보니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인문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오랫동안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공부가 무엇일지 스스로 묻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제가 음식과 문학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문학의 경우 시기를 한정한다면 식민지 시대 작가와 지식인 혹은 당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식민지를 둘러싼 여러 거대 담론들보다는 정말 그 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갔는지 접근하고자 했고, 자연스레 음식에 주목했습니다. 음식과 함께 경성의 공간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주로 누가 일상을 보내게 되었는지 살피기도 했죠. 경제나 돈에도 관심이 많아서, 음식이나 상품의 가격을 함께 살피기도 했습니다. 주로 신문이나 잡지 등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참고하는 음식 연구는 단편적인 정보가 반복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학 중에서도 소설은 아주 구체적인 형상화의 과정을 통해 나타나기에 이를 경유해 음식점, 음식을 만드는 행위나 소비 과정 등을 공부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음식 연구를 통해 시도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먹는 음식은 100년 정도 전쯤부터 갖추어진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그 이전부터 먹었던 음식이 지닌 상징적인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질문해 보고 싶었습니다. 거칠게 예를 들면 동지 때에는 왜 팥죽을 먹고 정월 대보름에는 왜 나물을 먹는지 질문을 던지다 보면 근대화되기 이전의 사고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다만 이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둘째로는 지금 먹고 있는 불고기, 돈가스, 우동, 스테이크, 콜라와 사이다 등의 음식이 어떻게 등장하고 자리를 잡았는지 제도적 기반을 살피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예컨대 식민지 시대 때 이태준이나 채만식 같은 작가들은 커피가 맛이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당대의 작가들은 거의 매일 커피가 유통되는 다방을 방문했죠. 맛이 없는데 왜 자꾸 다닐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문학 작품을 통해 음식을 살펴보면 기존과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식민지 지식인이 이야기하는 다방이라는 공간은 우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지만, 청각적·시각적으로도 주목해 볼 수 있습니다. 이상이 문을 열었던 제비다방도, 전면을 통유리로 꾸려서 종로의 풍경을 다 볼 수 있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들이 방문했던 다방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가의 축음기가 놓여 있기도 했기에, 다방에서 클래식과 재즈를 듣기도 했죠. 결국 식민지 커피 소비의 행위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문학 텍스트 그 자체가 주는 특별한 정보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짜장면 같은 음식도 역사학에서는 1950~60년대 이후에 주로 먹기 시작했을 것이라 이야기하는데, 식민지 시기 풍경을 그리고 있는 박태원의 『천변풍경』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짜장면이 ‘된장 국수’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문학을 통해 음식을 조명하는 시도는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언급되는 음식을 대상으로 분석하는 시각과는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인터뷰이 제공

 

Q : 책에서 커피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식품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이 판매 및 구매되는 다방이라는 공간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서 중요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엇을’ 먹는가를 넘어 ‘어디에서’ 먹는지 질문하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요?

A : 지금 우리의 식탁에 오르거나 음식점에서 사 먹는 음식은 1910년대 일제에 의한 강점을 전후로 많이 정착했습니다. 이때 다른 나라의 음식들이 식민지 조선에 수용되는 과정은 대부분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커피를 예로 든다면, 우선 경성에서 주로 일본인이 체류하며 활동하는 공간에 다방이 생겼습니다. 일본인을 주된 고객으로 영업을 시작하죠. 이후 조선인 소비자들이 점차 생겨나고, 단골이 되면서 그것을 가정의 식탁에서도 마시는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재료를 사서 집에서 만들어 먹는 모습을 통해 외래의 음식이 식민지 조선에 자리를 잡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죠. 제가 일본인들이 주로 갔던, 또는 조선인들이 주로 갔던 식당·음식점이라는 공간에 함께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이러한 까닭 때문입니다.

  식민지 시절 당시 본정(本町)으로 부르고 지금은 명동에 해당하는 곳에는 미쓰코시, 미나카이, 조지아 백화점 등이 있었습니다. 세 개의 백화점 모두 매우 큰 규모로 다양한 상품을 취급했고, 이곳에 있는 식당에서도 여러 종류의 음식을 판매했습니다. 서양, 일본, 중국 음식을 비롯하여 이들 나라에서 유입된 과일과 그것으로 만든 음료 등을 살펴볼 수 있죠. 그런데 본정은 분명 경성에 있었지만, 조선의 음식을 판매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처럼 경성에서 음식이 소비되는 공간을 조명하다보면, 식민지라는 상황과 관련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Q : 당대의 디저트를 먹는 것은 생계유지를 위한 ‘식(食)’이라는 행위와 유사하면서도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 같은데요.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려보고 싶습니다.

 

A : 식민지를 살아간 조선인 대부분은 한 끼의 식사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고, 이러한 시대의 디저트를 조명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부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책에 나와 있는 디저트는 지금처럼 식사 이후에 먹었던 음식도 물론 함께 있지만, 고구마나 호떡, 만주와 같이 상대적으로 밥보다 저렴했기에 식사 대용으로 먹었던 음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멜론처럼 매우 비싸기에 과시의 목적을 위해 먹었던 음식도 존재했죠. 중요한 사실은 이것들이 식민지 시대 때 소비되고 누군가 먹었던 음식이라는 점입니다. 당대의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음식, 그중에서도 디저트에 주목했던 것이 책을 쓰게 되었던 가장 주된 동력이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디저트 중에서 라모네를 사이다나 콜라로 바꾸어본다면, 지금도 먹고 있는 디저트가 됩니다. 커피, 만주, 멜론, 호떡, 초콜릿, 군고구마, 빙수 등 친숙한 음식들이죠. 잠시 언급했지만, 이러한 음식이 어떻게 소비되었는지 그 출발점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식민지 조선을 조명했습니다. 책에는 서술하지 못했지만, 이들이 문학 텍스트에 드러나는 상징적 사고를 바탕으로 정리한다면 아주 달거나 차가운 것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원래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한과, 약과, 엿 등의 위상과는 분명하게 다릅니다.

이들의 수용과정과 소비의 맥락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까닭을 읽어내 보고자 했습니다. 

  제가 이전의 책을 쓰면서 살펴본 내용이지만, 식민지 조선의 소설에서는 본정에 있는 청목당이나 조선철도호텔 등에서 판매했던 정식을 먹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요즘의 정식은 세트메뉴 정도로 이해되지만, 당대 일본에서 정식(定食)은 ‘먹는 것을 정한다’는 의미로, 유럽의 코스 요리를 번역한 단어로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애피타이저가 나오고 이후 채소들이 나오며, 해산물이 제공된 후 메인 고기 그리고 디저트의 순서에 따라 먹는 방식이죠. 지금으로 따지면 10만 원에서 15만 원 정도에 해당하는 식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보통은 식민지 시대라고 하면 거의 비슷한 형태의 ‘식’의 행위를 하며 살았을 것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당대의 설렁탕 식당인 이문식당의 가격이 7천 원에서 1만 원 정도라고 추정해 본다면, 식민지의 먹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차이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디저트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먹었던 것들과 사치를 표현하기 위해 먹었던 음식들이 공존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죠.

 

Q : 책은 서론에서 “100년 전 디저트를 다룬 이 책은 누가 더 많이 먹는지를 겨루거나 맛집 찾기에 몰두하는 데서 벗어나 먹는다는 행위의 온전한 의미를 더듬어보려는 작업의 하나”라고 밝히셨습니다. 오늘날 해당 책을 쓰신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였는지 마지막으로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A : 먹는다는 행위의 온전한 의미를 ‘배를 부르기 위한 것’이나 ‘맛에 대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것’과는 다른 시각 속에서 발견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음식을 상징적으로 사고하려는 저의 노력과도 관련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최근의 음식과 관련된 사회의 모습은, 조금 고상하게 이야기한다면, 자본이 모든 것을 다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회주의라는 것을 통해 자본의 잠식에 대해서 조금의 대안이나 다른 방향이 있지 않을까 고민해 보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사회주의 역시도 자본주의와 같이 근대적인 사고였다는 결론이 도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지향이나 움직임이 멈추어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계속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상징적 사고’라는 것은 이러한 자본이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세계에 대해 조금은 다른 방식의 사고가 가능한지, 그 가능성을 생각하려는 시도입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이나 주거의 형태 그리고 소통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방식 같은 경우에는 근대화가 되기 이전의 모습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음식의 경우, 우리는 아직도 김치를 먹고 된장찌개를 먹고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음식도 생기고 맛도 변했지만, 동지가 되면 우리는 팥죽을 떠올립니다. 따라서 음식이라는 것은 자본이 전면화되기 이전의 마지막 기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처럼 누가 더 많이 먹고, 어느 집에 가는 것이 가장 맛집인지 묻는 것에서 벗어나, 예전에는 왜 금방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발효시켜서 오랫동안 두고 먹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았죠. 부족하나마 자본이 전면화된 오늘날의 대안 혹은 도움을 찾아가는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디저트를 먹는 것처럼, 초콜릿 또는 빙수나 군고구마가 먹고 싶은 것처럼, 취향에 따라 읽고 싶은 부분을 따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인터뷰·정리 : 정재훈 기자 wjd8889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