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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한국인 학자들이 미국에서 쓴, 한국인을 위한 미국 정치 안내서 본문
박홍민·국숭민, 『미국에서 본 미국 정치: 선거와 양극화 그리고 민주주의』, 오름, 2023.
한국인 학자들이 미국에서 쓴, 한국인을 위한 미국 정치 안내서
Q: 본서는 미국의 정치제도를 개괄적으로 소개하면서도, 단순히 제도에 대한 해설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의 화두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의 양극화, 인종·젠더 이슈, 국제정치의 영역을 두루 포괄하고 있습니다. 이에 가장 먼저, 이러한 구성을 통해서 선생님께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A : 본서는 저와 국숭민 교수(미시간주립대학교)가 공저한 책입니다. 저희 모두 미국의 국내정치를 전공했고, 미국에서 미국인 학생들에게 미국정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책을 쓰면서 저희가 의도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요. 먼저, 흔히 미국의 정치제도를 모범적인 것으로 전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미국의 정치제도 역시 다른 나라의 것과 마찬가지로 장점과 단점이 공히 존재한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특히 금권정치적 요소, 게리맨더링, ‘현직자 이점(incumbency advantage)’ 등을 다루면서 ‘선진적인’ 미국의 정치제도 안에는 어느 정도의 ‘부조리함’이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음으로, 미국의 정치제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미국도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볼 때는 미국도 마치 우리나라처럼 중앙집권적이고 일사불란하게 전국적인 정책집행이 이루어질 것
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은 기본적으로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각각의 사안의 집행에 관해서는 주정부가 갖는 힘이 연방정부보다 강할 때도 많습니다. 즉, 정책집행에서 ‘수직적인 복합성’이 작용하는 것이죠. 한편,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행정부-의회-대법원 상호 간에 견제도 상당히 강하게 나타나므로 대통령이 속한 행정부만으로 제도화된 정치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수평적인 복합성’도 미국 정치제도의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이렇듯 여러 차원에서 복합성이 작용하면서 정치가 운영되므로, 특히 미국정치에 대해서는 다층적인 접근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책에서 젠더, 인종과 같은 사회문화적 이슈, 국제정치의 영역을 일부 다룬 것도 정책의 결정과정과 실행과 관련되어 미국 국내정치의 복합성과 다층성을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Q: 본서에서 다루고 있는 미국 선거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선거자금에 대한 느슨한 규제입니다. 이번 미 대선에서도 선거자금 문제가 크게 주목받으면서 미국의 ‘금권선거’ 요소가 두드러진 점은 흥미로운데요. 다만, 이번 대선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더 많은 선거자금을 모금했다
고 해서 반드시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선거에서는 왜 선거자금이 화두가 되고, 그러면서도 반드시 승리를 담보하지 못하는 것인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A : 현재 미국에서는 자금의 사용처만 밝힌다면 선거에 있어서 그 용도나 모금액에 큰 제한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법적인 틀, 내지 규제가 상당히 느슨하게 유지되고 있죠. 그렇기에 자본이 정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돈을 써서 정치를 매수하려고 하는 것을 문제시하면서, 선거자금에 대한 일련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은 19세기 중반부터 있어 왔고, 지금도 과반수 이상의 미국 국민들은 선거자금 관련 제도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인식하에서 가장 최근에는 2002년에 존 메케인(J. McCain) 당시 상원의원이 선거자금에 대한 규제를 담은 법안을 입법한 바 있고 정당을 초월해서 폭넓은 지지를 받기까지 했지만, 2010년에 연방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위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다시 말해, 선거자금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미국의 ‘금권정치’적 성격은 현실적으로 시정되지 못하고 있을 뿐 미국에서도 꾸준히 문제제기되고 있는 사안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선거자금으로 많은 돈을 쓴다고 해서 반드시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거자금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현재까지 데이터로 축적된 미국의 선거 경향을 보면, 오히려 앞서가고 있는 후보에 대해 추격자의 입장에 있는 후보가 돈을 더 빨리, 더 많이 모으려고 하는 경향도 나타납니다. 보다 다양한 곳에, 또는 필요한 곳에 자금을 써서 역전을 노리는 것이죠. 그래서 대통령 선거는 물론이고 하원이나 상원 선거를 포함해서 볼 때 미국의 선거에서는 선거자금을 많이 모았던 후보가 패배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선거자금의 규모나 모금속도를 두고 볼 때는 이번 대선 결과도 큰 이변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대선의 흐름을 보면, 바이든(J. Biden)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부터 미국 민주당이 앞서나가던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해리스(K. Harris)로의 후보교체의 국면에서 선거자금의 모금을 통해 역전을 노리는 양상이었기 때문입니다.
Q: 2016년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트럼프(D. Trump)의 당선에는 경제문제가 핵심 쟁점이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서에서는 특히 백인 노동자들이 느끼는 ‘경제적 박탈감’의 핵심이 사실은 인종주의라고 파악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해석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한편, 이번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의 인종별 동향을 보면 히스패닉 남성의 과반 이상, 흑인 남성의 상당수가 트럼프에 투표한 것으로 나옵니다. 트럼프의 정치적 원동력이 결국 ‘인종주의’라면 왜 이러한 ‘이반’이 일어난 것일까요?
A : 미국의 인종주의는 그 뿌리가 깊습니다. 물론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노골적인 인종차별은 많이 사라졌지만, 특히 백인들은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백인이 아닌 타인종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1960년대를 거치면서 공교육을 통해 인종주의적인 사고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형성되었고, 심지어는 법 제도를 통해 처벌하기도 하지만, 지금도 인종주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현재에는 인종주의적 사고가 일방적, 폭력적인 혐오로 직결되기보다는 일종의 ‘복합적인 감정’의 양태로 사회에 잠재되어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평소에는 수면 아래에 있지만, 이를테면 경제 위기 등에 의해 삶을 위협받는 상황이 올 때 그것이 인종주의로 ‘표출’되는 것이죠. 당연하게도,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쇠락이나 현재 미국에서 나타나는 인플레이션은 흑인이나 히스패닉들에 의해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현재 미국이 직면한 문제의 원흉처럼 지목되고, 비난의 화살이 그들에게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인종주의가 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경제가 화두인 것은 맞지만 그것만으로는 트럼프의 대두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고, 경제적 박탈감이 인종주의적으로 표출되는 지점까지 봐야 한다는 점에서 인종주의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입니다
한편, 인종주의적 사고는 비단 백인의 전유물은 아니므로 흑인이나 히스패닉계에서도 당연히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트럼프를 상당수 지지한 흑인들은 대체로 고학력, 고소득층 남성들로 나타납니다. 이들은 오히려 흑인 커뮤니티에서 나타나는 저학력 기조, 각종 범죄의 빈번한 발생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 여론조사에 집계된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경우도 선거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불법 이민자가 아니라 이미 미국 국민으로 자리잡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불법이민자는 자국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들이거나, 잠재적인 경쟁자일 뿐입니다. 물론, 히스패닉 남성의 경우는 과반수가 넘게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점에서 작지 않은 변화라고 보여지므로, 추후에 그 이유에 대해서 좀 더 탐구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어쨌든 트럼프 지지를 두고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에서 나타난 동향 또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인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역시 인종주의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한편, 저서에서는 인종, 젠더 갈등과 같은 오늘날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사회문화적 갈등의 여러 ‘전선’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점들이 선진국의 발달한 민주주의제도 하에서 세심하게 다뤄지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기폭제로 해서 더 큰 갈등으로 치닫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단순히 미국의 문제만은 아니라, 오늘날 민주주의를 운영하고 있는 여러나라에서 종종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한데, 미국에서 나타난 양극화 상황이 특히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선생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A : 오늘날 선진국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사회문화적 지향들은 경제적인 이념을 기준으로 하는 ‘진보·보수’의 구별에 비하면 그 방향성이 훨씬 더 복잡다기하고 때로는 정치, 경제적 지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회가 선진화될수록, 정치 제도가
시스템에 따라 운영되면서, 고정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정치·경제의 영역보다 때로는 더 세심하게 다루어져야 할 다양한 사회문화적 쟁점들도 주로 경제를 기준으로 하는 기존의 ‘진보·보수’의 구분에 따라 양극화되어, 일종의 선악구도 속에 함몰되어 버리는 것이죠. 결국 선진국에서도 사회문화적 쟁점들은 그 사안에 맞게 적절히 다뤄지지 못하고 있는 셈이고, 이것이 오늘날 ‘선진국’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첨예한 갈등의 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비단 미국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이러한 지점을 풀어가는 방식은 한국에도 일정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번 2024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확인된 공화당과 민주당의 변화인데요. 앞서 언급되었던 히스패닉 남성 유권자들의 동향 변화나,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게 민주당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공화당은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가는 상황은 기존의 ‘진보·보수’의 구분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즉, 젠더, 소수자 인권 등 사회문화적 영역에서 등장한 새로운 이슈들이 기존의 정치적 균열 구조와 다른 양상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저는 이러한 새로운 ‘균열’들로 인해 장기적으로 정치구도가 재편되면서 현재의 갈등과 대립도 점차 해소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사례가 ‘정답’은 아니겠지만, 앞으로 이러한 미국 국내정치의 흐름을 계속 살펴본다면,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갈등과 대립에 있어서도 실마리를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인터뷰·정리 : 천관우 기자 kw1045@naver.com
'5면 > 저자와의 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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