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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산업수도’ 울산을 통해 보는 한국의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의 명암과지속가능성에 대한 모색 본문
‘산업수도’ 울산을 통해 보는 한국의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의 명암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모색
양승훈, 『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쇠락하는 산업도시와 한국경제에 켜진 경고등 』 , 부키, 2024.
Q: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산업수도’ 울산을 통해서 ‘제조업 강국’ 한국의 불안한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울산에 주목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울산이 한국 제조업에 있어서 상징성을 갖는 이유와 현재 봉착한 문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를 통해 살필 수 있는 한국의 제조업 중심 경제가 처한 위기는 무엇인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저는 대학 진학 전 거제도 조선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대표적인 제조업인 조선업이 몰락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고, 2019년에는 그 경험을 풀어내어 책을 썼습니다(중공업가족의 유토피아, 오월의봄, 2019). 다만 거제도에서 관찰한 것을 전국적인 문제로 바라보기에는 거제도가 영위하는 산업의 제한성이나 인구 면에서 한계가 있었습니다.
울산은 제 연구를 확장하는 계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울산의 제조업은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세 가지로 다각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100만을 상회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의 주력 제조산업을 상당한 규모를 유지하면서 오랫동안 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죠. 또한, 울산은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가 선택한 선도기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울산의 산업화 과정을 보면 대한민국이 성장해 온 길을 살필 수 있으며, 이는 전국적인 상징성을 갖습니다. 경공업을 넘어선 중화학공업화, 수출주도산업의 강화, 중산층의 양성 등의 목표가 있었고, 실제로 울산에서 이루었죠.
울산은 산업화 시기 이촌향도의 다른 한 면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서울로 몰려든 이촌향도만을 기억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울산으로 몰려들기도 했습니다. 원적지를 기준으로 할 때 울산의 토박이는 울산 인구의 30% 정도에 그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산업화 시기에 각자의 꿈을 안고 울산으로 왔던 것이죠. 그리고 당시에는 학력이나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 아닙니다. 산업화를 겪는 것은 다들 처음이었으니, 몸으로 부딪쳐 가면서 기술을 익히고, 국가와 함께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를 거치면서 노동운동을 통해 회사에 대항해서 성과도 이룩했습니다. 이렇듯 이룩한 게 지금의 울산인 것이죠. 오늘날까지도, 울산은 비수도권 지역 중에서 유일하게 수도권에 ‘대항’할 수 있는 거점으로 남아있습니다.
또한, ‘산업수도’ 울산의 쇠퇴는 대한민국의 제조업의 전반적인 쇠퇴를 나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공간분업이론에 따르면 구상과 생산의 분리가 진행된 결과입니다. 산업화 시기에는 구상을 담당하는 고급인력 엔지니어와 생산직 노동자가 같은 도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구상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수도권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역으로 생산공장마저도 수도권으로 이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울산은 흡사 도시의 시작이 그러했던 것처럼 또다시, 우리나라의 변화상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Q: 울산의 제조업 발전의 기원과 현황에서 지적되는 대표적인 문제는 원청-하청 관계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울산은 정규직-생산직 (남성)노동자를 중심으로 중산층을 형성한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저서에 따르면 이제는 울산의 공장에서도 정규직-생산직 노동자를 뽑지 않고 있습니다. 중산층-노동자라는 이상(理想)의 산증인과 같았던 울산이 이를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고 오늘날과 같은 하청 구조로 연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울산이 산업화의 선도기지였던 만큼, 산업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변화들을 관찰하고 그에 맞는 대응책을 모색해보는 일종의 ‘테스트베드(Test Bed)’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구조나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여러 문제들이 다른 도시보다 앞서서 나타났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원청-하청을 나누는 이른바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IMF 금융위기 이후에나 비정규직이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건설업이나 조선업에서는 산업 구조상 하청업체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울산에는 오래전부터 ‘비정규직’인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1987년의 국면에서 잠시 원청-정규직 모델로 통합되었던 것에 불과합니다. 즉 1997년 이후에 양산된 ‘비정규직’이라는 노동형태는 엄밀하게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울산의 원청-하청의 관계는 분명 이전과 다릅니다. 특히 울산에서 이 문제는 적대적 노사관계에 대한 회피 기제가 양쪽에서 작동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IMF 금융위기로부터 약 20년간 사측은 공정의 자동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숙련노동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었고, 노동자들은 회사를 신뢰하기보다는 당장 임금을 올리는 경제 투쟁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결과 정규직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어 현재는 더 이상 뽑지 않고, 이미 고용되어있는 원청-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만 노동쟁의의 혜택이 돌아가게 되어 새로운 정규직 일자리의 창출이 어려워지는 면도 있는 것이죠. 한편, 조선업의 ‘하청’체제도 진화했습니다. 처음에는 하청업체 직원을 마치 안정적인 정규직처럼 쓰는 모델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원청과 하청의 임금 차이도 심하지 않았죠. 그 다음으로 2010년대에 해양플랜트 사업이 부상하면서, 초단기 노동자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서 생산물량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단계에 와있습니다.
이처럼 울산은 원하청 문제의 심화와 그에 따른 정규직 고용의 부재라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1987년 이후 일시적으로 이뤄낸 원청-정규직 노동자모델로의 일원화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울산은 그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죠. 무엇보다 산업의 특성에 따라 하청은 존재할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문제는, 하청이나 비정규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원-하청 간에 임금 및 노동환경의 차이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한 다음 세대의 노동자들에게는 원청-정규직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Q: 선생님께서는 ‘산업가부장제’라는 개념으로 울산의 가장 중심의 가정 부양구조와 여성 배제, 그리고 노동양태나 인구를 비롯한 도시의 전체적인 ‘재생산’ 문제를 두루 살피셨습니다. ‘산업가부장제’란 무엇이고, 이것이 울산의 3대 제조업 및 대한민국의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에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A : 울산은 한국의 산업화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산업화에 따른 남성-정규직-생산직 노동자의 생계부양 모델의 산증인이기도 합니다. 바로 ‘산업가부장제’죠. 사실 산업화 시기에는 (남성)가장이 고소득을 받아 식구를 모두 먹여 살리는 남성 생계부양모델은 한국에서 관념적으로나 규범적으로나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물론 1997년 IMF 금융위기 이후로 남성생계부양 모델은 사라져갔지만, 울산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울산에서는 정규직-생산노동자가 안정적으로 고소득을 계속 얻음에 따라서 그 도시의 특성에 맞물려 산업가부장제로오랫동안 작동해온 것이죠.
이러한 산업가부장제의 문제는 그 다음 세대에서 삶에 직면한 문제로 나타납니다. ‘울산에서 태어났을 뿐인’ 젊은 여성들은 ‘산업가부장제’와 그 현신인 울산에서 제 자리를 잡기 어렵습니다. 우선, 울산의 산업의 태반인 제조업 현장은 관행적으로 여성을 거의 뽑지 않습니다. 설령 여성이 일하고자 해도, 자리가 없는 것이죠. 한편, 제조업 외에, 자신이 대학에서 배웠던 전공을 살리고자 해도 자리가 없습니다. 소위 ‘핑크칼라’ 직종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대체로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형태입니다. 청년 여성에게는 울산에 맞추는 것과 맞추지 않는 것 두 가지 모두 녹록지 않은 것이죠. 통계에 따르면, 울산의 청년 여성들은 50~70%가 고향인 울산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응답하지만, 일자리를 얻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떠날 수밖에 없는 양상인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산업가부장제’는 울산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오늘날 울산의 위기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Q: 결국 현재의 울산은 이전과 달리 지속가능성을 잃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울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조업으로 성장해온 한국 전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제조업을 이끌어온 울산이 21세기에도 지속할 수 있는 여러 대안을 제시해주셨는데요, 저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울산과 한국 제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전망과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A : 울산의 쇠퇴는 한국의 40~50년간 작동해왔던 유력한 모델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공부해야 성공한다’는 인식이 매우 강했죠. 그럴 때, 울산은 산업화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길’이기도 했습니다. 공부나 시험에서 탁월한 성적을 받을 수 없더라도 고소득이 보장된 현장노동을 통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약속이 있었죠. 이 모델이 지속가능성을 잃고 사라져 간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며 중요한 문제입니다.
현재 울산이 맞닥뜨린 문제의 핵심은 생산을 담당하는 산업도시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울산은 청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중년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지속가능성을 잃고 있는 것이죠. 산업도시, 그중에서도 생산을 담당하던 도시가 갑자기 새로운 산업을 창출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지자체 수준에서 갑자기 관광산업을 부각한다거나, 또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기존 산업과 연계성이 없는 서비스 섹터를 구축하겠다는 논의 등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도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울산을 지역의 일로 치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울산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자체 수준이 아니라 국가가 일정한 계획을 세우거나 대기업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산업도시’ 울산이 가진 역사성과 경험이 사라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울산은 산업화 시기에 꿈꾸는 사람들이 만든 도시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특정 지역(‘부울경’)의 것이 아니라 한국의 자산입니다. 이러한 ‘산업수도’로서 울산의 정체성과 경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시대에 울산이 담당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정리 : 천관우 기자 kw10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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