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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이슬람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넘기 위한 안내서 본문

5면/저자와의 대화

이슬람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넘기 위한 안내서

Jen25 2024. 4. 4. 16:38

 

이슬람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넘기 위한 안내서

 

박현도, 이슬람교를 위한 변명: 무함마드에 대한 우리의 오만과 편견에 관하여, 불광출판사, 2024.

 

 

 

Q : 󰡔이슬람교를 위한 변명󰡕비무슬림의 이슬람 설명서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소수인 무슬림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책을 썼다고 밝히셨습니다. 그만큼 본서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시대와 그 이후의 역사는 물론 이슬람교의 문화 전반에 대해서 꾸란의 구절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슬람학 전공자로서 오랜 기간 학계에서 활동하셨는데요, 이번에 일반도서의 형태로 출판하게 된 계기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주요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 이번에 나온 제 책은 종교문해력 총서’(이하 총서’)의 일부입니다. 해당 총서는 종교에 대한 총론을 시작으로 그리스도교(정교,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이슬람교까지 각 종교의 창시자들이 설파했던 보편적 생각이란 무엇인지, 또한 현대적 유효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대중들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슬람교에 대해 대개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하기 때문에, 설령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보편적인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적절히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총서내의 다른 책들과 달리 무함마드뿐만 아니라 그 이후 이슬람교의 역사, 이슬람의 문화적 요소들, 현대 중동의 동향에 대해서도 함께 소개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 책을 통해 보여드리려고 했던 것처럼, ‘가난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고 가난에 직면한 아이들이 가난에 대응하는 방식이나 성장하는 과정은 물론, 그에 따른 결과도 각기 다릅니다. 이를 드러내기 위해서 인터뷰 대상이 되는 아이들 한 사람마다 긴 시간을 두고 아이들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 제가 전하려고 했던 것은, 무함마드가 창시한 이슬람 역시 여타 다른 종교들처럼 보편적인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종교였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무함마드는 가난한 사람 소외된 이들을 보살필 것을 설파했습니다. 이것은 많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예수의 가르침과도 다르지 않은 것이죠. 저는 이 책의 부제 즉, 한국 사람들이 쉽게 내면화해버린 무함마드와 이슬람에 대한 오만과 편견과는 달리 이슬람 역시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담은 세계의 종교임을 독자분들께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Q : 이슬람교는 소위 평화의 종교를 표방하지만, 한국에서 이슬람교는 전제정치, 정교일치의 사회, 극단적 근본주의, 전쟁과 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와 결부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년 10월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그러한 인식을 더욱 증폭시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선생님께서 저서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종교적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이슬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따르는 평화의 종교인 이슬람에서 테러를 자행하고 반인륜적 폭력을 일삼는 근본주의자 집단이 여럿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A : 말씀하신 평화의 종교라는 해석은 엄밀한 관점에서 보면 사실이 아닙니다. 세간에는 흔히 이슬람이라는 말이 평화에서 비롯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정확하게는 복종하다라는 어구에서 비롯하였습니다. , 이슬람이란 하나님에 대한 복종 혹은 헌신의 종교라고 해야

정확한 의미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인은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말하지요. 그런데 평화의 종교라는 명제가 역사적 사실과 반드시 부합하지는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무슬림들끼리 싸우고, 비무슬림과 전쟁하는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평화라는 언명이 이슬람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어렵게 하는 면이 있죠.

이렇듯 평화의 종교라는 언명은, 사람들이 이슬람의 종교적 교리와 실제 역사 간의 괴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무함마드의 삶은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예를 들어 예수는 권력을 누리지 못했고, 일방적으로 핍박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삶은 그러한 순교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전쟁 지휘관의 모습이었습니다. 창시자의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서구를 비롯한 비이슬람 지역에서는 평화를 말하면서 시작부터 폭력을 동반하였던 모순된 종교로 받아들였던 것이죠. 이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경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함마드의 모습은 예수가 아니라 예수 이전 유대교의 예언자들과 비슷합니다. 그 당시에는 종교지도자는 공동체를 위해서 전쟁도 수행해야 했습니다. 무함마드의 행적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적절히 이해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평화의 종교라는 말은 현대에 와서 부각된 일종의 자기방어적인 구호이기도 합니다. 이슬람 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대부분 서구의 영향권 아래 놓였고, 대부분 독립하여 개별 국가를 이룬 지금까지도 서구의 힘과 공세에 밀립니다. 이러한 무슬림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이슬람교가 큰 역할을 했는데, 이것이 현재 이슬람(근본)주의의 중요한 기원입니다. 독립을 쟁취하는 운동의 과정에서 종교와 정치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 엮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투쟁하면서, 종교를 내세우니 이슬람교 자체가 과격하다는 이미지를 갖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슬람 세계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0년대만 하더라도 많은 나라가 세속주의를 채택하였습니다. 이들은 서구화/근대화를 해서 서구를 따라잡겠다고 주장했는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러던 중 1979년 이란 혁명으로 기조가 바뀌게 된 것입니다. 서구식 세속주의 정권은 실패했으니, 올바른 방향은 이슬람교에 있다는 주장이 다시금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죠.

그러나 오늘날에도 대다수 무슬림은 이슬람근본주의를 맹종하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의 이슬람 인식은 과도하게 이슬람 근본주의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실제로는 무슬림들도 대개 근본주의자들을 경계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국제정치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 전제왕정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마스나 헤즈볼라에 대해 매우 비판적입니다. 이슬람근본주의가 발흥하고 있다고 해서 이슬람교를 이슬람근본주의와 동일시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인터뷰이 제공

 

Q : 선생님께서는 본서를 통해 국내에 피상적으로만 알려져 있던 이슬람 율법의 여러 내용을 상세히 안내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정치와 종교가 적절히 분리되지 않은 삶의 모습이라든가, 관념상에서조차 미비한 여성 인권의 문제 등 현재 한국 사회가 이슬람의 문화적 요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적절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문화상대주의에 의거한 관용만이 정답일까요?

 

A : 우선 이슬람교만이 유독 정교분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인식은, 조금 시선을 달리 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요컨대 그리스도교 계열의 종교나 불교는 정교분리가 진행되었는데 이슬람교나 무슬림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것은 정확한 구분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그리스도교 중 개신교 교단에서는 현실정치인들이 배출되기도 하고, 정치인들이 종종 종교적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기도 하죠. 이렇듯 엄밀하게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란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모든 무슬림 국가에서 정교분리가 되어있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정교분리의 양상은 종교자체에 내재한 특성이 아니라, 신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서구에서 살아가는 무슬림들의 삶의 모습은 중동의 무슬림들과 달리 제법 종교와 삶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말씀하신 여성 인권의 문제에 관한 한 현재까지는 이슬람 법학자들이 게을렀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슬람 세계에서 나타나는 여성에 대한 차별은 꾸란에서 여성의 상속분을 남성의 반()으로 규정한 데서 기원했습니다. 여성 인권에 대한 경시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도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경전 구절에 대한 ‘()해석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죠.

종교의 핵심은 재해석입니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종교가 시간을 초월하여 설득력을 가질 수는 없고,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합니다. 이슬람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함마드의 가르침 역시도 재해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저는 이슬람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고수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서구에서 살고 있는 무슬림들의 사고 양식이나 삶의 방식은 기존의 전통적인 무슬림과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특히 이러한 서구의 무슬림들이 이슬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많이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세기의 그리스도교와 오늘날의 그리스도교가 다르듯이, 이슬람교도 점차 변화해가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슬람이라는 낯선 종교와 그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문화상대주의적 관용이 분명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종교보다는 종교를 믿는 사람을 이해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어떠한 종교를 고정적인 모습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종교를 믿는 개인을 만나 교류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종교가 아닌, ‘종교를 믿는 인간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제가 공부하는 종교학의 본령이기도 합니다.

 

Q : 이제 한국에도 이슬람교 신자들이 제법 거주하게 되었고, 대학 내에도 무슬림으로 보이는 유학생들을 여럿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아직 소수이며, 이슬람에 대해서는 오만과 편견이 앞서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앞으로 무슬림과의 평화로운 공존이 요구되는 사회에서 살아가게 될 학생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A : 제가 고려대학교에서 이슬람에 대해 강의하게 된 것이 이번으로 세 학기째입니다. 제가 맡은 교양 강의 이슬람문화의 이해수강생이 매학기 꾸준히 많습니다. 전보다 많은 학생들이 이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실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중심적, 일방적 세계인식에서 벗어나고, 아울러 비서구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넓은 안목, 좀 더 객관적인 시선을 갖기 위해서도 이슬람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필요할 것입니다. 저는 무슬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을 전파할 목적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 학생들이 좀 더 이슬람 문화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슬람에 대한 이해라는 것은 어떠한 정태적 종교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 신앙을 가진 사람, 즉 무슬림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렇듯, 보다 넓은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견지에서 고려대학교 학생들도 무슬림들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인터뷰·정리 : 천관우 기자 kw10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