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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교사 그리고 연구자로서, 청소년이 겪는 ‘빈곤 대물림’ 문제에 다가가다 본문

5면/저자와의 대화

교사 그리고 연구자로서, 청소년이 겪는 ‘빈곤 대물림’ 문제에 다가가다

Jen25 2024. 3. 9. 15:36

교사 그리고 연구자로서, 청소년이 겪는 빈곤 대물림문제에 다가가다

 

강지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돌베개, 2023

 

 

 

Q : 선생님께서는 현장에서 학생들을 직접 만나오셨을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정책을 공부하신 전문 연구자이시기도 합니다. 교사로서, 그리고 연구자로서 가족을 중심으로 한 빈곤 대물림에 대해 연구를 하시게 된 이유와, 그 간의 성과 중 일부를 일반도서의 형태로 출판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 이 책은 제가 10여 년간 학교 안팎의 학생들을 직접 만나오면서 아이들에게 직접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가정과 사회에서 나타나는 빈곤 대물림에 대해 조명한 것입니다. 제 박사학위 논문이 빈곤가족의 구성원인 청소년들이 그들이 직면한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가는지를 연구한 것이었다면, 이 책을 통해서는 조금 더 대중적 견지에서 학생들의 생애사()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가난한 아이들이라고 하면 특정한 프레임을 씌워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아이들의 모습은 특정 키워드나 그로부터 연상되는 이미지로 고착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아이들이 겪고 있는 가난또한 특정 기준에 따라 손쉽게 정의하고 진단할 수 있는 문제로 생각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안일한 인식이나 관점이 아이들의 삶과 관련되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복지 정책 전반에도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 책을 통해 보여드리려고 했던 것처럼, ‘가난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고 가난에 직면한 아이들이 가난에 대응하는 방식이나 성장하는 과정은 물론, 그에 따른 결과도 각기 다릅니다. 이를 드러내기 위해서 인터뷰 대상이 되는 아이들 한 사람마다 긴 시간을 두고 아이들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Q : 이 책에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가족으로 보입니다. 저서에 따르면 빈곤은 가족을 통해 대물림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빈곤가족의 구성원인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한편, 때로는 힘든 삶을 견디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선생님께서는 가족부양의 문제를 오로지 가족의 영역으로만 두는 현실태에 대해 특히 한국에 만연한 효() 관념과 관련하여 비판하기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빈곤을 가족의 사적(私的) 문제로 치부하는 인식은 어떠한 문제점을 내포하며, 도리어 그로 인해 가족을 통한 빈곤 대물림이 사회적으로 조장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 우선, 질문해주신 것처럼 가족에는 양가적(兩價的)인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은 구성원인 학생을 지지해주고, 감싸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생의 생애에 부정적인 영향 미치는 면도 있죠. 특히 빈곤가족의 경우에는 그러한 지점이 부각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가족이라는 사적 단위를 강조하는 인식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선별적 복지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가난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관련 제도하에서는 한 청소년이 자신의 의지로 빈곤을 벗어나고자 노력하더라도, 부모가 의탁하고자 하면 아이는 다시 원가족에 묶이게 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가족 중심으로 설계된 보장제도가 빈곤의 대물림을 오히려 조장하는 면이 있는 것이죠.

가족이 사적 보장체계라면, 국가는 공적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하고 운영합니다. 이러한 부분이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를 거치면서 많이 확대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서는 전통적 가족구조와 정상가족프레임이 결합 되어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돌봄의 의무를 가정(가족)이라는 사적 단위의 역할로 국한하여 보는 한편, 효 관념에 입각해서 의무부양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는 충분히 분화되었고, 가족의 형태도 변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소위 전통적인 담론이 설득력을 유지할 만한 가족의 형태는 상당부분 물리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도권만 본다면 1인 가족(가구)은 이미 전체의 50%를 넘었죠. 그럼에도 사람들의 인식은 물론이고, 국가의 제도나 정책도 여전히 정상가족을 상정한 채 시행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소 역설적이게도, 정작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은 소위 정상가족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일치의 지점들이 빈곤의 사회적 해결에 있어서 많은 부조리를 초래합니다. 예를 들면, 의무부양제에 따라 부양할 수 있는 가족이 있으면 복지 혜택이 축소됩니다. 여기에는 (서류상) 부양할 능력이 있는 가족 구성원이 있다면, 굳이 국가가 나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빈곤을 겪는 가정은 부양의무자와 실질적으로 유리되어 있거나, 갈등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빈곤에 대한 문제를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집행하는 것은 제도의 설계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과는 다른 관점과 새로운 방식으로 관련 제도를 재설계를 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생활동반자법> 등으로 혈연가족이 아니더라도 동거인에 대한 훨씬 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고 복지혜택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가족의 형태가 빈곤층에서 더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정상가족을 벗어난 폭넓은 제도를 좀 만드는 것이 빈곤층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가족은 기본적인 공동체로서 특히 심리적 측면에서 분명 아이들에게 도움을 줍니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가정 내에서 겪어온 빈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족을 계속 사랑하는 것이나, 또 원가족을 떠나서도 가정을 꾸림으로써 행복을 찾고자 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가족의 본원적 역할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분화된 사회에서 가족의 형태를 전제하거나, 가족에게만 부양의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의 접근은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Q : 선생님께서는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서 사회적 안전망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방안 중 하나로 일선학교의 역할에 주목할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그 의미와 구체적인 방안이 궁금합니다.

 

A : 종합사회복지관, 지역아동센터 등 일선에서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 청소년 복지를 내실화하기 위해 일선학교와의 협력을 많이 말씀하십니다.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에 따라 축적된 자료 역시 학교에 많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할 때 학교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가 매우 주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는 기대되는 역할만큼 그 기능을 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우선, 현재 학교의 운영은 입시로 대표되는 선별과 경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뒷전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앞서 가족의 해체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이것이 학교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가정에서 당연히 배웠을 것이라 전제하는 기본적인 예절, 한글, 심지어 가위질 같은 것들도 가족이 해체됨에 따라서, 배우지 못하고 학교에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학교가 어느 정도 기존 가정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는데, 여전히 학교는 지식을 배우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기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에 따라 오히려 부정적 경험만 쌓여가면서 학교를 떠나게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여러 가지 이유로 도움이 필요하고, 충분히 학교가 도울 수 있음에도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다음으로, 교내에 복지업무를 담당하는 전문인력이 부족합니다. 이것은 나름대로 잘 갖추어진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회복지사처럼 복지 관련 업무를 전담하도록 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유럽의 복지국가들은 물론이고, 미국을 보더라도 학교에 사회복지사가 있어서 관련 업무를 전담합니다. 복지정책을 잘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책의 목표를 잘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 사회복지사들은 그 처우나 역할이 교육청마다, 심지어 각각 학교마다 제각각입니다. 물론 교육청을 거쳐 일선학교의 행정실에서 수혜가 필요한 아이들을 파악하고 주기적으로 관리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집행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학교에 복지전담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도가 실제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를 담당하는 전문인력이 학교에 적절히 배치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 저서에서는 현재의 한국이 이전보다 비교적 풍부한 사회보장제도(복지제도)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여러 측면에서 두루 조명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지금과 같은 시혜적 시선에 입각한 선별적 복지에 대해 비판하시면서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빈곤가족의 구성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현재와 같은 빈곤 대물림의 사회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보편적 복지가 필요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A : 가난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현재와 같은 선별적 복지로는 빈곤의 대물림이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현재의 복지제도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각종 서류를 스스로 준비해서 일일이 신청하는 방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이에 제도의 혜택을 실제로 받기까지 많은 문턱이 존재합니다. 첫째, 빈곤한 가족일수록 정보격차로 인해 제도자체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둘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에 대해 인지하고 있더라도 서비스를 받기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위신문제와 관련 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이렇듯, 설령 제도가 잘 만들어져 있다 해도 그 혜택이 필요한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또다른 문제입니다. 이렇듯 여러 가지 이유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제도 안팎에서 실질적으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면, 결국 빈곤 대물림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많은 발전을 이루어왔습니다. 이제는 그 논의의 영역을 확장해서 보편적 복지제도 확립에 대한 고민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현재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의무교육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된 인식에 발맞추어 적어도 20살이 될 때까지는 별다른 걱정 없이 빈곤하든, 그렇지 않든 그들의 가족이 잘 살 수 있도록 보편복지의 차원에서 지원해주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한국 사회가 대체로 보편복지에 대한 저항감이 크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상급식문제를 비롯하여, 본래는 많은 반발을 사던 논의들이 지금은 정책으로 현실화되어 시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을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한 가족의 사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난의 대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 섣불리 어떠한 한계를 정하기보다는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하나씩 시도해보는 것이 미래세대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정리 : 천관우 기자 kw10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