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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커피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다시 보다 본문

5면/저자와의 대화

커피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다시 보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12. 5. 23:43

5_저자와의 대화

이길상,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 역사비평사, 2023

 

커피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다시 보다

 

Q : 교육학을 전공하시면서 커피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으며, 커피 세계사+한국 가배사(2021)에 이어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 제 본 전공은 교육학 중에서도 근대 교육사입니다. 학부 때부터, 그리고 특히 미국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서양사와 여러 언어를 배우고 활용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아내의 권유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게 되었는데, 필기시험 내용으로 접했던 커피의 역사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커피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서구, 남성, 기독교 중심적 시각에서 왜곡된 가짜 뉴스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죠. 커피를 생산하는 중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의 커피 농장과 노예들을 철저히 배제한 채 커피를 소비하는 낭만적인 유럽의 카페와 문화만 서술되고 있었습니다. 국내 서적 역시 이러한 왜곡된 시각을 그대로 번역하는 마이너리티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어 더욱 분노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구할 수 있는 대로 영어, 일본어, 한자, 프랑스어 등으로 된 원서와 사료를 찾아서 읽기 시작했고, 제 분노와 수치심을 극복하고자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커피 세계사+한국 가배사를 내게 되었는데, 사실 책을 내면서도 스스로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부끄러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 책이 큰 호평을 받았고, 그 부끄러움을 이겨내고자 내용을 온전히 다 소화한 상태에서 두 번째 책을 내고 싶었습니다. 두 책을 통해 저는 커피에 녹아 있는 서구 중심적 시각을 타파하는 동시에, 역사 속 영웅악당을 커피의 역사에서 다시 평가해보고 싶었습니다. 예컨대 앙투안 갈랑(Antoine Galland)천일야화를 번역하고 유럽에 이슬람 세계를 소개한 인물로, 문학사와 고고학사에서 뛰어난 위인으로 평가받곤 합니다. 그런데 커피의 역사를 추적하다 보면, 그가 남긴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인상은 기독교 역사관에 기반한 지나친 문명적 우월주의의 시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례로 죽기 직전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숨을 거두었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긴 무솔리니는 커피 역사에도 중요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무솔리니가 추진한 이탈리아 알루미늄 산업은 여러 새로운 창작품을 낳았는데, 그때 만들어진 것이 현재까지 사용되는 모카포트입니다. 영어 표현을 이탈리아식으로 바꾸도록 장려하는 정책으로 인해 커피를 내리는 바맨(barman)’도 이때부터 바리스타(barista)’가 되었죠. 이처럼 일반 정치사 또는 전쟁사에 나오는 인물들을 커피의 역사라는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보고, 여성,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커피 생산자들이 대변하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커피를 통해 한국에서 세계사에 대한 인식의 출발점을 바꾸기 위해, 오리엔탈리즘에 물들지 않은 커피의 역사를 쓰고자 했습니다.

 

Q : 이 책에서는 커피의 역사에 대한 왜곡과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커피의 원조를 규명하려는 시도는 어떠한 선입견을 동반해왔는지, 또 원조 논쟁을 넘어서 커피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는 커피 인문학이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 현재까지 커피의 원조에 대한 서술은 동양에 대한 서양인들의 멸시 의식이, 동양에서 만든 음료인 커피에 그대로 반영된 채 이어졌습니다. 오랫동안 유럽에서 통용되던 커피의 기원 전설은 커피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밤새 춤을 추는 모습을 한 목동이 우연히 목격하고는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는 염소 목동 칼디 전설이었습니다. 커피를 발견한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고, 이는 인간의 노력과 무관하게 신이 자연을 이용해 가르쳐준 지혜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이처럼 역사적으로 동양에서 탄생한 과학적 발견들은 대개 하찮은 동물을 통해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치부되어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염소는 커피 열매를 먹지 않을뿐더러, 아라비아 지역 이슬람교도들이 그 효능과 맛을 깨달으면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여러 사료에서 발견되죠. 이처럼 커피 역사에는 17세기 후반 서구인들이 즐기던 커피를 탄생시킨 것이 서구 문명이 아니라 동양 문명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서구인들의 문명관, 즉 동양에 대한 정형화된 부정적 인식인 오리엔탈리즘이 반영되었고, 이러한 인식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커피는 단순히 하나의 음료, 또는 역사 논쟁의 대상을 넘어서 우리 삶에 깊은 교훈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맥스웰하우스를 창업한 칙(Joel Owsley Cheek)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커피 배달 사원으로 일하면서도 정작 커피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칙은 가장 좋은 커피를 추천해달라던 어느 고객에게 결국 제일 비싼 커피를 추천했습니다. 그런데 이 경험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칙은 과연 제일 비싼 커피가 제일 좋은 커피일까하는 의문을 품고 커피 연구에 뛰어들게 됩니다. 수많은 원두를 접하고 커피를 맛본 끝에 내린 결론은 모든 커피는 각자의 장점과 존재 가치가 있으며, 우열이 아닌 취향의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칙은 각 커피의 장점을 반영하여 최초로 원두를 섞는 블렌딩 기술을 만들어냈죠. 이 일화는 우리가 늘 고민해야 할 문제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격을 비롯하여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인식되는 것들은 결국 다 누군가의 시각을 반영하며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커피 원두가 그러하듯,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존재 가치를 지니죠. 따라서 이를 단일한 기준으로 평가해서 줄 세우기보다, 각자의 가치를 찾아서 인정받게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자세입니다. 고급스러운 싱글 오리진 커피를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브라질 원두 등 여러 가지가 섞여서 만들어내는 에스프레소 한 잔의 맛이 이토록 아름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이런 태도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Q :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한국의 커피문화는 서구’ ‘근대 문화그리고 사치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한편, 한국의 다방 문화를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커피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의 다방 문화의 특징은 무엇이며, 이를 통해 형성된 한국의 커피 문화는 어떠한 특징을 지니는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한국의 다방은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형태의 문화입니다. 먼저, 19세기 말부터 일본에서도 커피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커피보다는 음식과 술을 비싼 가격에 판매하고 여급들이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퇴폐적인 끽다점(きっさてん)’이 대거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문화가 식민지 조선에도 전해지자 일부 조선인들이 이를 비판하면서 저렴한 커피와 차를 마시며 누구나 와서 건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순끽다점’, 즉 순수한 다방을 열게 되었죠. 물론,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 접대원들, 특히 해방 이후에는 다방 레지로 불리던 이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에 출발한 순끽다점은 일본식 퇴폐문화에 대한 저항심리와 조선인들의 사회경제적인 위치를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1980~1990년대까지도 다방은 몇 번이나 전성기가 반복되었죠.

이러한 다방 문화는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데, 첫째는 식민지 시기 이후에도 다방이 흥행할 수 있었던 한국의 문화적 배경입니다. 사랑방에 모여서 수다를 떨던 한국인들의 주거공간이 아파트로 바뀌면서 이를 대체할 공간으로써 다방이 성장했죠. 이에 더해 커피가 주는 문화인의 이미지는 교양을 추구하는 한국인들의 정서와 잘 맞기도 합니다. 대학생과 지식인 등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다방에서 만나곤 했죠. 두 번째는 다방이 만들어낸 오늘날 한국의 커피문화입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오랜 시간 공부를 하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고, 낯선 사람과 만나서 일 얘기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으로서 카페가 기능하는 것은 극히 한국적인 문화입니다. 이러한 카페문화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죠. 이것은 1990년대에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빠르게 정착하고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오랜 다방 문화와 정서, 서구 문화의 유입, 그리고 스타벅스가 지향하는 공정무역 커피와 재활용을 통한 사회적 기여 노력 등이 종합적으로 결합된 채 오늘날의 커피문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Q : 커피는 인류의 역사를 대변하는 동시에,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향유되는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커피문화는 현대사회의 어떠한 특징을 반영하고 있으며, 또 현대문화에 어떠한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A : 먼저, 현대사회에서 커피와 카페는 기존 사회가 소통 네트워크 사회로 전환되는 데 기여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소통이 안 되는 술과는 달리, 커피는 마실수록 오히려 생각이 더 또렷해지고 대화의 질적 수준도 높아지죠. 따라서 소통의 수단으로서 커피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또한, 커피는 현대사회을 정의하는 주요 개념 중 하나인 융합과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시는 모든 커피는 여러 요소가 결합되어 만들어집니다. 최초의 커피는 물과 원두의 결합이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기호를 반영하여 다양한 재료를 섞어 창의적으로 만들어낸 베리에이션 음료가 많이 생겼죠. 특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한국 사회의 욕구는 고구마라떼, 인절미라떼 등을 만들어냈는데, 전 세계적으로도 카페 메뉴가 이토록 다양한 곳은 없습니다. 메뉴뿐 아니라 장소도 다양해지고 있는데, 방앗간이나 인쇄소를 개조해서 카페로 만들기도 하고, 또 커피 오마카세, 스터디 카페, 고양이 카페, 사주 카페 등 이색 카페들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한국의 카페문화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현대사회와 잘 결합되어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사회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한 한국의 카페문화는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고, 성장의 가능성이 아직도 많이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맛에 대한 소비자들의 취향도 높아지고 있고, 카페 업자와 원두 공급자들까지도 수준이 같이 높아지면서 소비자와 서비스 제공업자 사이에 균형이 유지되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스타벅스에 소속된 바리스타가 약 20만 명인 것에 비해 한국에서 현재 바리스타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이 약 100만 명 정도 됩니다. 세계 커피 박물관의 절반이 한국에 있기도 하죠. 이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대단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여전히 커피 역사 관련해서는 가짜 뉴스가 만연하기 때문에, 커피의 수준과 함께 커피 역사를 해석하는 태도 역시 비판적으로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

 

최서윤 기자 jensy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