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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이상(李箱), 김동희 역, 『영원한 가설 : 이상의 일본어 시 28편』, 읻다, 2023. 본문

5면/저자와의 대화

이상(李箱), 김동희 역, 『영원한 가설 : 이상의 일본어 시 28편』, 읻다, 2023.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9. 11. 15:09

 

이상(李箱), 김동희 역, 영원한 가설 : 이상의 일본어 시 28, 읻다, 2023.

 

 

이상(李箱)의 무한한 방황에, ()가능성에 기꺼이 몸을 던지며

 

Q : 이상(李箱)은 한국문학사에서 매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입니다. 그 명성에 걸맞게 그는 박제가 된 천재라고 불리며 오랫동안 많은 독자·연구자들의 관심을 받아 왔는데요. 영원한 가설의 역자이자 이상 연구자이기도 하신 선생님께서 이상 문학을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더불어 이상 문학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A : 저의 첫 기억은 네다섯 살 때쯤부터 시작하는데요, 당시 저는 세계문학 전집을 탐독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때 주로 읽었던 소설의 내용이 매우 흥미로운 터라, 중학교에 들어가 권장도서로 읽게 된 한국소설에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상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상의 시 거울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은 제게 신선한 자극을 주더라고요. 거울을 각색하고 재창작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제가 살아온 모든 순간에 문학이 있었고 그 안에 이상이라는 존재가 깊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제가 번역자이자 연구자로서 이상 문학을 마주하게 된 건 대학원에 들어와서였습니다. 말씀해 주셨듯, 이상은 한국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기도 하고 워낙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갖고 있어서 제가 대학원에 다니던 당시에도 많은 연구자들이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었던 시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첫 학기 때부터 이상과 관련된 수업들을 들으면서 제가 줄곧 매료되어 왔던 것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명명하면 좋을지 고민해 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석사 3학기 때 일본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어 이상이라는 존재를, 또 그의 문학을 좀 더 본격적이고 지속적으로 연구하게 된 것이죠.

사실 저는 반복되는 것과 익숙한 것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인데, 이상의 작품들은 같은 작품을 읽었을 때도 매번 다르게 읽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계속해서 어떤 실패 혹은 불가능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럼에도 그 과정 속에서 가능한 것을 찾게 되는, 그런 방황과 순환. 그것이 이상 문학의 가장 큰 매력이자, 이상 문학이 오래도록 의미를 갖는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 : 영원한 가설1956년 발간된 이상 전집 이후 두 번째로 발표된 이상의 일본어 시 번역집입니다. 본 역서는 기존 전집의 오류(원전 확정의 모호함이나 번역자의 주관에 의한 번역 등)를 해소하고, 일본어 시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난해시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상의 시를 번역하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번역 과정에서 특히 염두에 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사실 이전부터 번역에 대한 제안은 여러 차례 있었는데요, 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탓이었는지 선뜻 시작을 하기가 두려웠습니다. 시대적인 언어 감각을 제가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 또 한국어와 모국어가 아닌 일본어의 감각들을 잘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번역을 하겠다고 마음먹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러 고민을 안고 시작했던 번역이라, 제 스스로 몇 가지 원칙을 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상의 작품을 최대한 온전하게 전하고 싶어 어순은 절대 바꾸지 않는다’, ‘주관을 최대한 배제한다등의 원칙을 정했는데요, 이를 지키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예컨대 어순의 경우, 어떤 표현들은 어순을 바꿔주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오히려 바꾼 것이 더 당연하게 통용되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이상의 시는 워낙 난해하기로 유명하다보니 혹여 이상의 의도를 제 주관대로 바꾸어버리는 것이 될까 우려되어 우리말로 어색한 부분이 있더라도 어순은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출판사 측에서도 역주나 해석을 넣지 않길 원했죠. 제 의견이 반영되면 독자의 자유로운 해석을 제한할 수도 있으니까요. 독자가 이상의 작품을 최대한 가깝게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에 서로 그렇게 합의를 하고 번역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번역 작업을 하다 보니 일본식 한자어와 명사 사이에 위치한 조사 ()’의 번역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자어의 경우, 우리와 표기가 같아도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 어휘가 있어 다른 어휘로 번역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조사 ()’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어에서 명사와 명사 사이에 놓이는 ()’는 언어습관으로 인해 그냥 존재하는 것에 가깝지, 반드시 필요한 조사는 아닙니다. ‘()’를 그대로 번역하면 ‘~라는 조사가 연달아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원문의 리듬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해서 저는 필수적인 부분에만 ()’를 살려 넣었습니다.

번역의 불가능성이라고 하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대한 원문에 입각해서 직역을 하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되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 선택의 시점에서 번역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것. 사이의 감각을 어떻게든 설명하고 싶었는데 그것마저 불가능한 것. 제 고민의 과정과 그 선택의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었기에 번역을 마친 지금도 이상의 시가 독자에게 잘 전달이 될까 하는 염려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역자 제공

Q : 본 역서에 수록된 선에 관한 각서연작에서 화자 는 끝없이 증식되며 과거와 현재, 미래 사이에 동시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는 언젠가 사고의 파편에 찔려 죽음을 맞이할 것으로도 보이는데요. 이렇듯 이상의 시는 무수한 를 감당하지 못해 달아나는 또 다른 와 그를 둘러싼 죽음의 징후가 돋보이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과, 원어(일본어)와 번역어(한국어)에서 오는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 시를 감각하는 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A : 선에 관한 각서연작은 시·공간에 대한 이상의 고찰이 담긴 작품들입니다. 말씀해 주신대로 이 시 안에는 무수한 의 복수형이 등장하는데요, 이 복수의 는 당대 양자역학에 대한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으로, 순차성과 동일성에 대한 파괴 심리가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차성은 선형적 시간의 흐름에 관한 것으로, 과학 기술의 진보와 발전에 대한 기대와 관련이 있죠. 동일성은 자기 복제에 대한 가능성이 내재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선에 관한 각서는 이러한 순차성과 동일성에 대한 사유가 시를 이끌어가는 추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죽음의 징후는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겠죠. 선에 관한 각서이외의 다른 작품에서는 종교, (정조), 집안이나 문벌 등 당대 주요한 사상적 요소들에 대한 비판 의식도 주요한 주제로 등장합니다.

또 앞서도 잠시 말씀드렸듯, 원어(일본어)와 번역어(한국어) 사이의 차이는 늘 존재합니다. 오래된 건축물을 복원할 때, 이전과 완전히 동일한 것을 목표로 하지만 결코 동일해질 수 없는 것처럼요. 그러나 이상의 시는 그러한 원어-번역어의 차이보다 언어 자체의 불가능성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번역을 하는 내내 모국어라고 해서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를 안다고 해서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언어의 파장을 그대로 마주하는 것, ()가능에 부딪히는 것이 이상의 시를 감각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봅니다.

Q : “동경(東京)을 헤매는 백면의 표객”(사신(私信))이라고 자신을 표명할 정도로, 이상은 일본(동경)에 남다른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어 시 전문가로 알려진 선생님께서도 일본 도쿄·교토에 체류하시면서 연구해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상에게 일본과 일본어는 무엇이었을지, 또한 지금까지 일본과 관련한 번역·연구를 지속해 오신 선생님께 일본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A : 이상이 처음 자신의 작품을 발표한 매체는 조선과 건축이라는, 당시 조선총독부 산하에 있었던 조선건축회의 기관지입니다. 이 때 이상이 작품을 발표한 만필(漫筆)’란은 어떤 장르의 글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발표한 일본어 시가 그의 첫 발표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로서 문학과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있었던 그에게, 이 지면은 자유롭게 자신의 시를 발표할 수 있는 기회였을 겁니다. 그렇기에 일본어는 시문학의 길을 열어준 하나의 통로였다고 볼 수 있죠. 그가 일본(동경)행을 결심한 것도 이러한 맥락 속에 있습니다.

이상은 자신과 자신의 문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조선에서 줄곧 품어 왔던 예술에 대한 열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일본에 가고자 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서구 예술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에, 최첨단의 문학을 지향했던 이상에게 일본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공간이자 경유지였던 것입니다. 그 경유지가 결국 생을 마감한 장소가 되어버렸지만 말이에요.

저의 경우에는, 이상과 같은 식민지기 문인들과 그들이 창작한 작품들이 당대 어떤 맥락 속에 놓여 있었던 것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식민지기를 경유했을 때 일본()’를 배제하고 이야기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당시 문인들이 거쳐 온 발자취를 좇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연유로 일본에 가게 되었고, 가서 당시 문인들의 체험을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일에 주로 힘을 쏟았습니다. 일본 유학을 통해 새로운 문학의 장()을 체험하고, 일본어로 창작을 했던 그들의 시·공간을 따라가 본 경험은 연구자로서의 제 삶에 정말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제가 번역과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터뷰·정리 : 조수아 기자 lovelove992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