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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전통 음식문화의 맛과 전승을 위한 노력 본문

5면/저자와의 대화

전통 음식문화의 맛과 전승을 위한 노력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5. 23. 01:40

한복려 외, 『다시 보고 배우는 음식디미방』, 궁중음식문화재단 선일당, 2022

 Q. 『음식디미방』은 1670년경 집필된 최초의 한글 조리서로,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飮食知味方)이란 의미를 지닌, 한국 음식 연구에 중요한 기록유산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이와 관련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선생님께서도 1999년에 『다시 보고 배우는 음식디미방』의 초판을 발행하셨는데요, 이 책을 처음 집필하시게 된 계기와 24년이 지나 새롭게 나온 개정증보판은 이전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1999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이달의 문화인물’로 『음식디미방』의 저자인 ‘정부인 안동장씨(장계향)’가 선정되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학술발표를 열고 재현한 음식을 전시하며 대대적으로 알리고자 했는데요, 이때 『다시 보고 배우는 음식디미방』 초판이 출간되었습니다. 과거 학계에서는 고(古)조리서를 고서 그 자체로 다루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원문의 해제본과 영인본을 함께 첨부해 책이 지닌 학술적인 의미를 살림과 동시에 『음식디미방』을 다룬 책 중 최초로 조리법과 음식 사진을 더해 직접 음식을 재현할 수 있는 조리서의 기능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의 원형은 모친이자 국가무형문화재 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2대 기능보유자이신 황혜성 교수님께서 1980년에 출간한 『음식디미방(閨壼是議方) 해설본』입니다. 황 교수님은 1960~80년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현 문화관광부)  에서 주관한 ‘한국민속종합조사’의 식생활 분야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셨으며, 전국을 돌며 향토음식에 대한 현지 조사를 진행하시던 중 『음식디미방』의 존재를 확인했고 노력 끝에 원본을 찾아 기록으로 남기셨습니다.

 『다시 보고 배우는 음식디미방』은 첫 출간 이후 절판되었으나 한국 음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면서 재출간이 고려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책이 출판되면 초판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저희는 시대에 맞춰 내용을 보완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초본 집필 당시, 궁중음식 연구자가 소수였기 때문에 일부 설명이 모자라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었고, 궁중음식 이수자들이 과거보다 많이 늘어났습니다만 이들이 단순 기록에 의존하기보단 직접 다시 보고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 저와 이수자들 8명이 모여 새롭게 개정증보판을 출시했습니다. 이번 판은 책의 디자인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 책의 표지와 내용을 꾸미고, 음식의 재료가 좀 더 직접적으로 보이게끔 재현해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Q. 『음식디미방』과 같은 고조리서를 번역하는 작업은 단순히 조리과정을 번역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배경 지식을 기반으로 여러 해석이 필요한 작업으로 보입니다. 이에 고조리서에서 나타나는 특징과 이를 번역하며 느끼는 어려움은 무엇일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A : 고조리서는 크게 한문본과 한글본으로 나뉩니다. 한문본은 1450년경 작성된 최초의 조리서인 『산가요록(山家要錄)』부터 시작되는데, 이는 단순 조리뿐만 아니라 농사, 약선, 약재 등의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후 1800년대부터는 『음식디미방』과 같은 한글 조리서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는데, 한글 조리서는 주로 음식을 직접 만들던 여성들에 의해 작 

성되어 각 집안의 특색있는 음식이나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조리 시 중요한 점, 아쉽게 느낀 부분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제사와 같은 의례적 행위로서 양반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음식을 잘 만들어야 했고, 두 번째로 성리학이나 유교적인 측면에서 접빈(接賓)문화가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조리서의 내용을 보면 음식뿐만 아니라 술 빚는 방법인 주방(酒方) 역시 잘 서술되어 있습니다. 

 고조리서 번역은 어려운 작업입니다. 번역이 어려운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작성 시기가 불분명한 책이 많다는 점입니다. 이 경우에는 사용된 종이의 연대나, 시대를 추측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 다른 서적들과 비교하며 파악합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부추를 경상도에 선 ‘정구지’, 충청도에선 ‘졸’, 전라도에선 ‘솔’이라 부르는 것처럼 지역마다 사용하는 식재료의 방언이 달라 조리서에 기록된 재료명을 해석하기 난감한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책의 어투를 파악해 어느 지역 방언인지 먼저 살펴봅니다. 예를 들면 경상도인지 충청도 인지, 경상도면 안동인지 경주인지 같이 말이죠. 지역이 파악되면 현지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해당 언어가 존재하는지, 실제로 그러한 의미로 사용했는지 조사합니다. 고조리서의 번역은 이렇게 기록과 실제를 수차례 확인하며 진행합니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 지금은 전문화된 사료 데이터베이스가 잘 구축되어 있어 작업이 좀 더 수월 해졌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고조리서에 대한 학제 간 연구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주로 국어학, 사학 등의 분야에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해당 고어를 풀이하고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 외에도 조리서인 만큼 식품과학적 지식으로 해석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한 요리책에서 A라는 음식이 나타나면 그 음식이 후대에서는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다른 조리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조리되었는지 종횡적 시각으로 다양한 비교를 해야 정확하게 파악이 되는데, 이때 식품과학적 지식이 배제된 상태로 해석하는 경우 그 의미가 잘못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다학제적 접근으로 해석하기 시작한 건 저희가 거의 처음이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러한 과정 을 통해 여러 문헌을 번역할 수 있었기에 매우 값진 노력이었다 고 생각합니다.

 

Q. 과거의 기록에만 의존해 당시의 음식을 재현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음식 재현의 과정에서 어려운 점과 음식 재현이 가진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모든 문화는 과거·현재·미래가 하나의 실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현재는 국제화 시대로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러한 혼재된 문화가 미래로 이어진다면 새로운 전통으로 될 수도 있지만, 과연 그 시작점이 어디인지 파악하기 위해선 자국의 고유한 과거 문화가 잘 지켜져야 하고 현재에서 이를 기록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음식 문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궁중음식이 이어온 과거의 자료를 현대에 맞게 해석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이러한 기록을 이해하기 쉽게 직접 음식으로 재현해 사진, 영상 등으로 남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과거의 음식을 재현할 땐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 합니다. 

 고조리서에서 나타나는 계량 단위는 지금과 규격이 다르고 사용한 식기도 집집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에 이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 의궤와 같이 조리법 없이 음식명과 재료만 기록되어 있는 경우, 특정 재료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대추를 사용했다 해도 그것을 고명으로 썼는지, 내용물로 썼는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거죠. 그리고 저는 재현을 통해 그 시대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비아니를 만든다고 가정해볼까요. 지금은 정육 기술이 좋아 소고기를 각지게 썰어 팔지만, 과연 과거에도 그랬을까요? 다진 파나 마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곱게 갈아서 쓰는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칼로 다져서 사용했을 것이고 고명으로 사용하는 깨 역시 지금은 통깨를 주로 쓰지만, 과거에는 부숴서 깨소금으로 사용했습니다. 이처럼 과거의 음식을 재현할 때는 그 당시의 상황과 기술적인 한계를 고려해야 하고 이러한 세밀한 부분까지 염두에 두지 않으면 결국 단순히 과거의 조리법을 따라 만든 현대의 음식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재현은 사람의 경험을 통한 감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글과 설명만으론 전달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경험이 많은 전수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꼭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과거의 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응용해 그 본질과 의미를 이어나가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궁중의 방식으로 두부전골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부를 한입 크기로 자르고 녹말을 발라 고기소를 넣은 후 미나리로 묶어 가지런히 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번거로운 방식만이 옳다고 고집한다면 두부전골은 점점 그 자취를 잃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현대사회에 맞춰 두부를 크게 자르고 고기소를 따로 쌓아 올리는 등 좀 더 접근하기 쉬운 방식으로 해석해 재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즉 그 형태가 원형과 다르더라도 옛 맛과 음식의 본질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융합하여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면 이 역시 재현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Q. 선생님께서는 국가무형문화재 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로서 궁중음식의 보존과 음식 문화유산의 발전을 위해 50년간 다양한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다시 보고 배우는 음식디미방』 외에도 『계미서』, 『봉접요람』, 『음식절조』 등 다양한 고조리서를 입수해 연구와 출판을 하고 계신데요, 이러한 활동을 꾸준히 하실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이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로 지정되고 이 길을 걸어온 지 어느덧 50년이 넘었습니다. 기능보유자는 음식연구가이자 학자로서 궁중음식을 끊임없이 반복해 연구해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더욱 심도 있는 연구를 위해선 과거의 음식 문화나 식품과학적 지식 등 다양한 공부를 해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직접 음식을 만들며 오랫동안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이는 기능보유자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궁중음식은 모든 한국 음식을 어우르는 중요한 문화유산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제가 공부하고 수집한 자료들을 공유하지 않고 묻어둔다면 후대에 이 중요성이 전달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궁중음식연구원이라는 교육기관을 통해 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수하고, 더 나아가 의궤, 고조리서 등의 과거 음식문화의 기록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거쳐 주기적으로 학술발표, 논문 게재, 출판 등을 통해 대중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현재 진행하는 연구들은 특별한 연구비 지원 없이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궁중음식과 이를 통해 지켜져야 하는 문화가 보존되는데 꼭 필요한 일이라는 신념으로 지금까지 계속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앞으로 궁중음식의 본질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궁중음식을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정리 : 김연광 기자 dusrhkd99@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