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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항상 조금 추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본문
시인과의 대화
김승일, 『항상 조금 추운 극장』, 현대문학, 2022
Q : 선생님께서는 200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신 이래, 매번 다른 방식으로 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계십니다. 처음에 시를 쓰시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시’란 무엇인지 먼저 여쭙고 싶습니다.
A : 사실 어떻게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냐는 질문에는 계속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말하자면, 예술이라는 것이 멋져 보였고 어린 시절부터 글에 대한 칭찬을 들어 온 것이겠네요. 그렇게 시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시에 매료된 이유는 시가 다른 예술 장르와 명백히 구별되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수전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예술 작품을 하나의 진리로 압축시키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시가 본래 ‘해석된 것’이자 ‘선택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에 등장하는 비유 하나, 묘사 하나도 모두 작가에 의해 선택되고 판단된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시가 작가의 해석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뜻은 아닙니다. 해석을 펼쳐놓지만 그것이 의미화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또 다른 해석을 덧붙이는 것이죠. 시는 여기에 진리가 있다고 가리키기는 하지만 그 무엇도 진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진리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끝나지 않을 질문만을 던지고 있죠.
저는 이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야말로 시만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해석들을 중첩시켜서 또 다시 하나의 질문을 만드는 것, 그 과정에서 결코 해결되지 않는 모순들이 발생하지만 그럼에도 질문들을 계속하는 것. 이렇게 말이 길어질 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그 어려움에 이끌려 저는 ‘시’를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 『항상 조금 추운 극장』은 세계에 좌절하고 부딪히고 슬퍼하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대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담겨있는 시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 시들을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A : 첫 시집 『에듀케이션』에서는 지금까지 살면서 겪었던 의문의 순간들을 썼고 두 번 째 시집 『여기까지 인용하세요』에서는 ‘나’ 이외의 존재들, 그와 그녀, 신, 이방인, 기계와 같은 비인간들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봤을지에 대한 상상들을 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그 사람 어떻게 살까’에 대한 질문을 계속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에는 없는, 과거의 사람들이 자꾸 생각이 났고 많이 보고 싶었어요.
말씀해 주셨듯, 시 속 인물들이 세계에 좌절하고 부딪히고 슬퍼하고 있는 게 맞지만 저는 그들이 좌절하고 부딪히고 슬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죠. 기대하는 사람은 자신이 좌절이나 부딪힘이나 슬픔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 기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겠죠. 이번 시집에서 저는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고, 제대로 애도하고 싶었어요. 그들의 죽음이, 좌절이나 슬픔이, 인문학적으로 또 사회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하기보다는 조금 더 사적인 언어로 말하고자 했던 게 가장 컸습니다. 아마 이번 시집은 그러한 사적인 애도 작업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항상 조금 추운 마음으로, 이 시들을 썼던 것 같아요.
Q : 첫 시집 『에듀케이션』에서는 ‘학교’라는 무대를, 두 번째 시집 『여기까지 인용하세요』에서는 ‘무대-기계’를 보여주셨는데, 이번 시집에도 ‘극장’이라는 또 다른 무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선생님의 시에서는 시적 공간이 하나의 연극 무대처럼 작동하는 순간들이 매우 돋보이는데요. 그동안의 창작 취지와 함께 이번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항상 조금 추운 극장’은 어떤 공간인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저는 항상 화자와 공간을 미리 생각해 놓고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가령 오늘은 최원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말하게 해야겠다. 오늘은 학교에서 말하게 해야겠다. 이런 식으로요. 물론 잘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죠. 그래도 저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저만의 선택과 판단으로 이루어진 화자와 공간이 떠오를 때까지요. 극작을 공부한 영향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시를 쓴다는 것은 굉장히 자의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나에게 있었던 일만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여기까지 인용하세요』를 쓸 당시, 시는 결코 현실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연출’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시 안에서도 무대라는 공간이 자연스레 나타났던 것 같아요.
어쩌면 이 ‘무대’라는 공간이야말로 타자의 삶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아닐까요. 무대에 올라가지 않으면 우리는 타자를 타자라고 인식하기가 참 어려운데,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너무도 극명하게 타자는 나와 다른 사람이 되잖아요. 인류에게는 아주 옛날 그리스 시대부터 무대 위에 타자를 올려놓고 그들의 비극을 지켜보면서 ‘나’와 타자의 삶을 구분해 온 역사가 있기도 하고요. 무대는 그야말로 타자들의 장(場)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그 공간을 만들어 준 것이고요.
그런데 이번 시집에서의 ‘극장’은 ‘무대’와는 조금 다릅니다. 제가 생각하기론, 무대는 내가 직접 직조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극장은 내가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없는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나’는 수많은 타자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기억하지만, 그들에게 직접 무어라 할 수는 없죠. 그렇다고 내가 액션을 취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타자들을 계속해서 기억해 보려고 하고,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들이 조금 더 행복했으면, 아프지 않았으면, 너무 많이 슬프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타인들을 위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항상 조금 추운 극장’은 그런 공간입니다. 타인을 기억하고 애도하며 그들이 괜찮기를 기도하는, 일종의 종교 시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Q : 이번 시집에는 시 30편과 함께 선생님의 에세이 「취소」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시를 취소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취소되는 것이기에”라고 언급해 주셨듯, 이 에세이는 ‘시’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취소’되는 ‘시’와 그것을 ‘반려’하는 ‘나’는 선생님께서 시, 나아가 문학과 관계 맺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과 시를 쓰면서 가닿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 앞서 시는 ‘해석’의 중첩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시가 취소된다는 것 또한 이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언가가 취소되려면 그에 앞서 무언가가 있었다는 가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가령 우주는 빅뱅이라는 것으로 인해 탄생했는데, 그 우주를 다시 없애려면 빅뱅이라는 것을 먼저 ‘취소’해야 하죠.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시가 취소되려면 그 시를 이루고 있는 ‘해석’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시가 ‘해석’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다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가 시로서 존재하려면 이 ‘해석’과 함께 ‘취소’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예요. 이 취소를 통해서 해석이 끝없이 정지되고, 특정한 해석이 해답이 되지 않을 채 중첩되어 무한한 질문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해석을 취소한다는 것은 예컨대 이런 거예요. 어떤 위대한 예술가에게는 고결하고 미적인 면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 아들의 사교육 때문에 괴로워하는 면도 있겠죠. 그러한 자신의 삶을 낱낱이 고백하라는 건 아니지만, 어떤 굴곡이 있으면 그 굴곡들을 숨기거나 모조리 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조금씩은 ‘해석’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더 진솔한 고백이 될 수 있고 그래야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문학이라는 건 이 모든 것들을 다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좋은 점도, 내 못난 점도, 내 오만함도, 내 흠결도, 내 귀여움도 다 같이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인 것 같아요. 그런데 다 데리고 가려면, 나에게 이러한 것들이 있다고 꺼내서 보여줘야 되지 않을까요. 그것이 제 반려(伴侶)예요.
Q : 선생님께서는 시인인 동시에 <말과활아카데미>에서 꾸준히 시를 가르쳐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벌써 10년 이상 시 수업을 진행해 오셨는데요. 처음 어떻게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게 되셨고, 그로 인해 선생님께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A : 처음 시를 가르치게 된 것은 생계 때문이었습니다. 2011년 <재미공작소>에서 시작해서, 하다 보니 재미를 붙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네요. 제게 생긴 변화라고 하면,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시를 가르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학생들에게 심문하듯이 질문을 많이 던졌어요. 전에 해보지 못한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정말 집요하게 질문을 했거든요. 학생들이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밀어 붙였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게 됐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만 해주고 넘어갑니다. 오랫동안 글을 쓰려면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니까요.
오늘은 대단한 시를 쓰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질문한 것은 계속해서 남죠. 오늘 답을 내리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다음이 있고 남아 있는 질문들이 있어요. 오에 겐자부로처럼 나이가 들어도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생각들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 요즘은 더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다자이 오사무나 미시마 유키오가 살아있었다면 더 재미있는 글들을 썼을지도 모르는데, 그들은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전부라고 믿었다가 결국 죽음을 택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그 시대에는 굉장히 충실한 고민이었겠지만 그들에게도 다음이 있었다면 더 입체적인 면모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요즘에는 오래도록 글을 쓸 수 있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끝없이 계속되는 ‘다음’의 시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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