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 n번방
- 죽음을넘어
-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 심아진 #도깨비 #미니픽션 #유지안
- 쿰벵
- 미니픽션 #한 사람 #심아진 #유지안
- 산업재해 #코로나시국
- 시대의어둠을넘어
- 보건의료
- 항구의사랑
- 518광주민주화운동 #임을위한행진곡
- 코로나19 #
- 임계장 #노동법 #갑질
- 애도의애도를위하여 #진태원
- 한상원
-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로나 콜른타이 #위대한 사랑 #콜른타이의 위대한 사랑
- 수료연구생제도 #고려대학교대학원신문사 #n번방 #코로나19
- 국가란 무엇인가 #광주518 #세월호 #코로나19
- 공공보건의료 #코로나19
- 쿰벵 #총선
- 선우은실
- 고려대학교언론학과 #언론학박사논문 #언론인의정체성변화
- BK21 #4차BK21
- 5.18 #광주항쟁 #기억 #역사연구
- 고려대학교대학원신문사
- 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염동규 #자본주의
- 권여선 #선우은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김승옥문학상수상작품집
- 김민조 #기록의 기술 #세월호 #0set Project
- Today
- Total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음식을 통해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그려내다 본문
-주영하, 『그림으로 맛보는 조선음식사』, 휴머니스트, 2022.
Q. 선생님은 문화·인문학·역사학의 시선에서 음식을 해석하고 연구해오고 계십니다. 이처럼 음식 속 역사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음식 인류학’이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분야인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어릴 때부터 중국사에 흥미를 느껴 학부 때 역사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에는 한 식품회사에 취직해 그곳에서 운영하던 김치 박물관을 관리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저는 발효공학, 식품공학, 식품영양학, 조리학, 또는 음식 역사와 고문서를 연구하시는 선생님들을 자주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선생님과 학술 활동을 이어갔는데, 점차 제가 인문학적 기반이 약하다는 것을 느꼈죠. 그래서 특히 음식을 중심으로 한 ‘물질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음식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대학원에서는 문화인류학과 민족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음식을 요리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에 대해 음식이 가진 역사적 혹은 문화적 의미를 해석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연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로 식생활을 더욱 풍족하게 하기 위한 자연과학자들의 노력이 이어져 왔지만, 음식은 단순히 식량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역사와 문화를 담은 그릇이기도 하죠. 특히 음식을 요리하고 함께 식사하는 문화는 인간만의 중요한 문화적 행위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음식이 지닌 역사·문화적 의미를 해석하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가 어떻게 변화했고, 또 그것이 세계 각 지역과 어떻게 연동되어 가는지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음식 인류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그림으로 맛보는 조선음식사』에서는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그림 속 음식 관련 장면을 중심으로 한국사를 추적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음식과 관련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문헌 자료와 달리 그림이 지니는 사료적 가치는 무엇일까요?
A: 문화인류학에서는 ‘시각 인류학(Visual Anthropology)’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연구자가 현지 조사를 통해 발견한 것을 글이나 영상으로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작업, 그리고 이때 생산된 시각적 이미지들에 담긴 시선을 해석하는 작업이 있죠.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림이나 사진 등 시각자료의 사료적 가치를 논하기도 합니다.
한편 조선시대 연구에서 주로 참고하는 사료인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는 주로 정치사를 다루다 보니 그 안에서 음식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조선 후기에 나온 일반 농서들 역시 농사에 대한 바람을 담은 것이지, 실제 생활을 기록한 것은 아니어서 왕실과 민간에서 남긴 다양하고 방대한 양의 자료를 봐야만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물질문화 중에서 집이나 옷과 같은 것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형태가 남아 있지만, 음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죠. 따라서 음식문화를 담은 자료 중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당시 생활 양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기록화와 풍속화입니다.
일례로 장독대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흔히 조선은 옹기의 나라였고, 한 집에 20개가 넘는 장독대가 있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 조선시대의 그 어떠한 기록화에도 그 많은 장독대가 등장하지 않고, 이는 오히려 식민지 시기에 찍힌 사진에만 보일 뿐이죠. 사실 옹기는 식민지 시기에 들어서야 그 쓰임새가 다양해지기 시작했고, 한번 사면 오래 쓰게 때문에 회전율이 높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반면 사기의 경우에는 일상적으로 활용되면서 잘 깨지기다 보니 국가가 관리해야 할 만큼 사기장이 발달했죠. 다른 문헌 기록을 봐도 조선 후기에 옹기장인을 국가 혹은 관찰사가 관리하는 양상에 대한 기록도 그림도 없고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서 옹기장인이 된 모습만 언급될 뿐입니다. 이를 통해 옹기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조선시대부터 널리 활용된 민중의 그릇이 아니라, 오히려 조선에서는 사기가 더욱 성행했다는 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림 자료는 단순히 역사적 문헌에 대한 배경 설명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며 오히려 문헌 자료에서의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던 사각지대를 조명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특히 음식 연구에 있어 시각자료를 활용하고 이를 문헌 자료와 함께 교차 검토하면서 그 안에 담긴 역사·문화적 맥락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됩니다.
Q. 책에서는 풍속화와 왕실·사대부의 행사를 묘사한 총 22점의 기록화를 꼽아, 그 속에 묘사된 식생활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인상 깊었던 작품 1점과 그 속에 담긴 음식문화의 모습을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15장에 보시면 《단원 풍속도첩》에 수록된 〈어장〉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한때 김홍도 작품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사실 왕실 도화서의 화원들이 연습용 그림으로 그린 작품인 것으로 밝혀졌죠. 이 그림에는 서해안에서 조기를 잡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수산업은 식민지 시기를 거치며 해방 이후에 확립된 것이고, 오히려 조선시대에는 먼 바다로 나가서 어로 행위를 하는 것을 조선 왕실에서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민간의 어선들을 개량하고 대형화시키기보다, 서해안이나 남해안 쪽에 간만의 차가 있는 지역에서 어전을 만들어 생선을 잡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에서도 조기를 많이 먹었고 식민지 시기에도 고급 생선으로 통했지만, 실제 조선 후기에 주로 먹었던 생선은 바다 생선보다는 민물 생선이 중심이었던 것이죠. 강태공 신화 때문에 조선시대 선비라면 유유자적하며 민물에서 낚시하는 것을 풍치로 여겼는데, 이 그림이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시기부터는 기생충인 디스토마 때문에 강 근처의 주민들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민물 생선을 먹지 말라는 경고가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는데, 특히 박정희 정부 시기에 수산물 생산량과 유통량이 급증하면서 민물 생선보다 바다 생선이 주식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어전>은 당시 고기잡이 방식과 생선의 종류가 지금 우리가 먹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19세기에 그려진 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오래전 과거가 아님에도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죠.
Q. 국가 주요 행사 때 왕실과 사대부들이 즐겨 마시던 술인 청주부터 농민들의 일상생활을 채워갔던 막걸리까지, 술은 늘 음식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우리 음식문화의 역사에서 술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술은 우리 음식문화의 역사뿐 아니라, 역사 자체에서도 매우 큰 의미를 지녀왔습니다. 천주교에서도 와인을 예수의 피라고 칭하는 것처럼 술은 다양한 종교에서 신과 교감하기 위해 쓰이죠. 이와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는 왕실부터 민가까지 조상 제사를 지낼 때도 술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멥쌀로 술을 빚었는데, 서양의 위스키나 와인과는 달리 주곡(主穀)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술이 주곡과 직결되다 보니, 술을 통해 일종의 계층성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지배층의 술은 바로 청주였습니다. 이는 18~25도 사이의 술인데, 보통 좋은 청주는 두 번 빚어서 만든 ‘이양주’, 혹은 그보다 더 고급스럽게 만들기 위해 세 번 빚는 ‘삼양주’가 있습니다. 술을 여러 번 빚게 되면 최종적으로 나오는 술의 양은 동일하지만, 곡물이 2~3배 들어가게 되죠. 그리고 이를 증류하여 만들 때 그 맛은 훨씬 더 좋아지지만, 같은 양의 곡물을 사용한다고 했을 때 나오는 술의 양은 10분의 1도 안 됩니다. 따라서 가장 최상위의 권력자들이 즐기던 술은 바로 소주 증류주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다양한 약재를 넣으면 왕실에서 약으로 마시거나 왕이 선물로 하사하는 홍소주가 되었죠. 다만, 소주를 비롯한 증류주는 고려 말기에 몽골의 증류 방식으로 만들어진 술이었기 때문에, 전통에 따라 종묘사직이나 지배층의 제사에는 가장 고급술로 여겨졌던 이양주, 즉 청주를 올렸습니다.
또, 청주를 빚고 나서 남은 찌꺼기를 술지게미라고 부르는데, 농민들은 여기에 물을 조금 더 타서 발효시킨 것을 즐겨 마시곤 했습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 술이란, 사람들과 어울리며 노동으로 인한 육체적 피로를 해소해주는 유흥이자, 권력을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Q. 16세기 이후 조선의 음식문화는 근현대 시기를 지나오며 많은 변화를 거쳐왔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언급된 음식문화 중 오늘날에도 주요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또한 이러한 연속성과 변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궁금합니다.
A: 사실 조선시대 요리법 중 오늘날 그대로 전해지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밥과 국·찌개, 반찬, 그리고 숟가락과 젓가락이 올라오는 일상적인 식사 양식은 어느 정도 이어져왔다고 볼 수 있죠. 이는 17세기 중반부터 형성된 양식으로, 이때부터 쌀밥이 아닌 곡물밥을 높게 쌓아 올린 고봉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나타난 소빙기에 따른 두 차례의 대기근, 그리고 광해군 때부터 실시되기 시작한 대동법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국물을 먹는 문화는 일본과 중국에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특히 한국에서 국물은 유교식 제사와 가부장적 질서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사에 탕국을 올리는 문화가 이어지면서 조선시대에는 제사의 주체인 남성이 밥을 먹을 때는 반드시 국물이 차려지도록 규격화된 것이죠.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지배층의 문화가 피지배층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인들은 일상적으로 고봉밥과 국물, 그리고 여러 동물성과 식물성 반찬을 섞어서 먹게 된 것이죠. 이는 17세기 중후반부터 고도성장이 달성된 1970년대까지 큰 틀에서 유지되어 왔습니다.
한편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인의 밥상에는 고기가 많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점차 반찬으로 일품요리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주식이었던 곡물밥의 양이 크게 줄어들었죠.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1980~90년대까지는 넉넉한 밥 위에 여러 동물성·식물성 반찬이 골고루 갖춰진 가정식을 하는 백반집이 종종 있었습니다. 이러한 백반집이 바로 한국식 밥상의 마지막 구조라고 할 수 있고, 육식과 서양식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한국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밥상의 구조가 무너지게 된 것이죠.
다만, 조선 후기를 아름다운 한국 문화의 원본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현상에 우려를 표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음식은 왕조, 식민지, 그리고 근대기의 복합적인 시간을 지나면서 형성·변화된 것으로, 다양해진 소스와 음식의 종류로 인해 이미 조선시대의 것과는 너무나도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저는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합니다.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조선시대 음식을 탐하지 말라’고요. 그만큼 입맛이나 재료도, 또 사회적 분위기도 다르기 때문이죠. 따라서 역사를 그대로 재현하려고 하기보다, 여러 사료를 통해 이러한 변화상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각 시대를 색다르게 해석함으로써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서윤 기자 jensyc@daum.net
'5면 > 저자와의 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원히 감상될 거장의 그림, 『백치』의 이미지를 해설하다 (0) | 2023.06.27 |
---|---|
전통 음식문화의 맛과 전승을 위한 노력 (0) | 2023.05.23 |
‘항상 조금 추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0) | 2023.03.15 |
문학의 틈을 찾아 그라운드 제로로 돌아가보기 (0) | 2022.12.12 |
‘재현’의 현실을 초과하여 시대를 넘나들(던) 문장들, 그 ‘삼투’의 힘을 드러내다 (0) | 2022.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