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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양태-관계의 존재론부터 정서의 윤리학까지, 스피노자 철학의 정수 『윤리학』을 파헤치다 본문

5면/저자와의 대화

양태-관계의 존재론부터 정서의 윤리학까지, 스피노자 철학의 정수 『윤리학』을 파헤치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10. 8. 18:32

진태원,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 그린비, 2022.

 

 

Q :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스피노자(Baruch Spinoza)에 대한 지난 10년의 강의록을 엮은 책인데요. 박사논문을 집필하기 전에 스피노자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 바깥의 시민 독자들에게 난해하기로 이름 높은 스피노자의 철학을 강의하시기로 결심하신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 저희 세대는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당시 이 논쟁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해주었던 것이 현대 프랑스 철학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들을 세부전공으로 선택하고자 마음을 먹었죠. 하지만 대학생들 사이에서의 위상과는 반대로 한국 철학계는 당시까지도 전통적 독일철학과 새로운 영미철학이 양분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현대 프랑스 철학은 이제 막 한국에 소개가 됐을 뿐 제대로 된 번역조차 하나 없었죠. 심지어 그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푸코(Michel Foucault)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나 데리다(Jacques Derrida)가 마약중독자라는 루머는 보수적인 학계의 편견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도 이들을 직접 다루기보다는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스피노자를 연구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그렇게 스피노자의 철학으로 박사논문까지 집필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 스피노자를 강의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윤리학(Etiqa)의 번역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적절한 번역의 부재로 인해 현대 철학을 공부하기가 어렵다는 문제의식은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오래된 철학자인 스피노자의 저서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윤리학을 직접 번역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윤리학의 심오함과 어려움, 그리고 그것을 읽어나가는 외로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강의를 택하게 됐고요. 그러면서도 대학이나 대학원 강의는 윤리학번역 작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에서 허락된 시간은 짧으면 한 학기에서 길어야 1년이지만, 윤리학의 공부는 훨씬 더 긴 시간을 요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다행히 대안연구공동체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강의할 수 있는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셨고, 전공이 아님에도 꾸준히 강의를 들어주셨던 여러 시민분들과의 만남은 제게도 결코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더군다나 그 결과로 윤리학의 번역 초고와 강의록까지 얻을 수 있었으니,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 스피노자는 그 철학만큼이나 매력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스피노자 생애의 중요한 계기들과 함께,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스피노자의 저서 윤리학이 그의 철학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간략히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네덜란드의 유대계 철학자였던 스피노자의 삶에서 중요한 사건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무신론자로 몰려 유대 공동체에서 쫓겨나는 사건이었는데요. 이는 스피노자가 나고 자란 터전과 강제로 이별하여, 자기만의 철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당시 네덜란드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신흥 부르주아와 기득권 종교-귀족 세력이 갈등하고 있었는데, 전자의 입장에서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스피노자와도 친했던 드 비트’(de Witt) 형제가 정치적 입장 차이와 그로 인한 농간에 의해 군중들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스피노자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 잔인무도한 군중들을 욕하는 플랜카드를 집밖에다 걸었을 정도로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이 사건의 충격은 정치철학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이어집니다. 교과서의 영향으로 인해 흔히들 스피노자를 형이상학자나 인식론자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스피노자의 인생은 항상 정치적이었고 그에 대한 정치철학적 고민은 신학정치론정치론등의 저서에 고스란히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정점은 윤리학입니다. 윤리학에는 윤리학의 기반이 되는 형이상학과 인식론부터 정신과 신체의 관계를 다룬 심신이론, 그리고 정치철학까지 모든 스피노자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스피노자의 철학 세계를 넘어, 세계 철학사에서도 이렇게 모든 주제를 다 깊이 있게 담고 있는 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가히 플라톤의 국가나 홉스의 리바이어던,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같은 종합 철학서들에 비견될 만한 책입니다.

 

진태원 교수

 

Q :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윤리학뿐만 아니라 철학의 4대 주제인 존재론인식론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며, 그것이 윤리학의 중요한 토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스피노자가 기존과 다르게 바라본 무한’, ‘실체’, ‘양태등의 개념을 통해 스피노자의 존재론과 인식론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스피노자의 존재론에서 제일 핵심적인 개념 세 가지는 실체’, ‘속성’, ‘양태입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스피노자의 존재론을 실체의 존재론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상당히 오해의 소지가 많은 명명입니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나 데카르트와 같은 형이상학자들이 말하는 실체는 대개 개체를 뜻하는 것인데, 스피노자에게 있어 실체는 개별적인 사물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뜻하는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전체적 실체에 의존하여 개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 흔히 개체라고 생각하는 것을 양태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스피노자 철학의 특수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개념입니다. 자기 자신의 원리에 입각해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의 전체적인 실체뿐이고, 나머지 모든 사물들은 혼자서 존재할 수 없고 항상 다른 사물들과 실체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의 존재론을 제시한 것이야말로 스피노자의 최고 업적인 만큼, 스피노자의 존재론은 양태의 존재론이라고 불러야 마땅하겠습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인식을 3가지 종류로 나눴습니다. 이를 각각 1, 2, 3종의 인식이라고 부르죠. 먼저 1종 인식을 스피노자는 상상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지각부터 사유까지를 포함하는 넓은 범위의 사고작용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인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1종 인식은 사실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환각적인 가상의 인식입니다. 예컨대 생일에 대한 인식이 그런데요. 내가 몇 월 며칠에 태어났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부모님이나 누군가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을 믿을 뿐이죠. 이렇듯 1종 인식이 환각적인 이유는 확고한 근거나 원리에 의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확고한 근거나 원리에 의지하고 있는, 예컨대 ‘1+1=2’와 같은 인식이 2종 인식입니다. 3종 인식은 그것으로부터 더 나아간 사물에 본질에 대한 인식, 존재론적으로 얘기하면 속성에 대한 인식이죠. 스피노자는 1종과 같은 부적합한 인식에서 벗어나, 2-3종과 같은 적합한 인식으로 나아가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들뢰즈(Gilles Deleuze)는 이 세 가지 인식이 곧 세 가지 삶의 방식으로 이어진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스피노자의 인식론이 결국은 윤리학에 대해 논하기 위한 기반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Q : 스피노자가 남긴 개념 아펙투스(Affectus)’는 현대 철학에서 ‘Affects’, 한국어로는 정서’, ‘감정’, ‘정동등의 개념어로 번역되어 많은 철학자들에게 주요한 사고틀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스피노자의 아펙투스란 개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그것이 스피노자 윤리학의 특수성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궁금합니다.

 

A : 아펙투스는 윤리학3부 세 번째 정의에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여기서 스피노자는 신체의 변용, 즉 신체 행위역량의 증가나 감소와 연관지어 아펙투스를 정의합니다. 예컨대 점심으로 초밥을 먹었고 그로 인해 기분이 좋아졌거나 건강해졌다면, 신체의 행위역량이 증대되는 방향으로 변용이 된 거죠. 이러면 우리는 초밥을 먹은 것에 대한 만족감과 기쁨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정서가 바로 스피노자가 이야기하는 아펙투스입니다. 반대의 상황에서는 행위역량이 감소하고 불만족이나 슬픔이 산출되겠죠. 따라서 어떻게 신체의 행위역량을 끊임없이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하는 것이 스피노자 윤리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기쁨이나 만족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수준은 아닙니다. 중독 증상과 같이 우리를 대상에 점점 종속되고 예속되게끔 만드는 기쁨은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아주 큰 슬픔이 될 수도 있겠죠. 스피노자는 이와 반대되는 기쁨, 스스로의 만족을 찾고 그것을 추구해 나아가는 기쁨을 능동적인 기쁨이라고 부릅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스피노자 윤리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일견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만 해결해야 할 듯한 윤리의 영역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인 정서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개입시켰다는 것이 스피노자 윤리학이 보여주는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알튀세르(Louis Althusser)와 발리바르(Étienne Balibar) 등 현대 철학자들을 연구하셨고, 번역과 강의를 통해 그들을 한국 학계에 소개하는 작업을 계속 해오셨습니다. 이러한 현대의 철학자들에게 스피노자가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또 스피노자는 앞으로의 철학에 어떠한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을지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A : 1970-80년대까지는 스피노자 하면 대개 전통적 형이상학자 혹은 범신론자 정도의 인식만이 존재했습니다. 그러한 스피노자의 상을 깨트린 것이 들뢰즈, 알튀세르, 발리바르, 네그리(Antonio Negri)와 같은 현대 철학의 스피노자 연구자들이죠. 간단하게만 말씀드리면 들뢰즈는 스피노자로 박사논문을 썼을 정도로 원래부터 스피노자에 정통한 철학자였고, 들뢰즈 철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무의식의 해방은 스피노자로부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알튀세르는 직접적으로 스피노자를 연구한 저서를 남기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들뢰즈와 대조되지만, 스피노자를 마르크스주의의 선조로 보았고 그에 따라 3종 인식과 실체에 관한 가장 독창적인 해석을 남긴 철학자입니다. 그리고 스피노자는 이들의 후속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발리바르에게는 반개체성의 철학자, 네그리에게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서의 다중을 제시한 철학자가 되어 여전히 현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현대 철학계에서 스피노자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요. 스피노자가 앞으로도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주체 중심의 역사에서 최초로 양태-관계의 존재론과 그에 따른 윤리학을 말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구조주의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현대 철학에서 주를 이뤘던 주체를 탈구축하고 해체하는 작업의 기초적 원리는 스피노자가 제공한 것입니다. 이러한 추세가 점차 강화될 전망이라면, 스피노자와 윤리학은 앞으로도 철학사의 거대한 출발점으로 기능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