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타이상(台商)’, 정치적 대립을 넘어 중국 경제를 견인하다 본문

5면/저자와의 대화

‘타이상(台商)’, 정치적 대립을 넘어 중국 경제를 견인하다

Jen25 2024. 10. 15. 14:44

 

타이상(台商)’, 정치적 대립을 넘어 중국 경제를 견인하다

 

지은주,대만은 중국의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켰나』, 버니온더문, 2024.

 

Q: 선생님께서는 본디 대만의 정치를 전공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저서는 경제에 관한 것입니다. 특히 대만의 기업가인 타이상들이 중국의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타이상은 어떤 사람들로 정의할 수 있으며, 중국 경제발전에 있어서 그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 경제 문제도 정치학에서 다루는 중요한 영역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이 책도 제 연구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이상은 말 그대로 한다면 해외에서 활동하는 대만상인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중국 외에 다른 나라나 동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대만 기업인과 투자자들을 두루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타이상이라고 하면 주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대만 기업인과 투자자를 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는 중국 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중국에서 활동하는 타이상의 숫자가 많은 점도 고려해야겠지만, 중국 학계와 언론에서 정의하는 타이상의 의미가 비교적 일반화되었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점은 타이상의 역할과 입지가 매우 독특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중국과 대만 간의 역사적 관계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인데요. 대만에는 독립세력통일세력이 있습니다. 독립세력은 대만의 역사와 문화가 대만 섬이라는 경계 내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는 점을 주목합니다. 반면 통일세력은 대만이 본래는 중국대륙과 대만 섬을 포함하는 중화민국에 속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과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타이상이 중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당시는 대만에서도 극히 소수의 독립세력을 제외한다면 대만 사회 전체가 통일을 바라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한편, 타이상이 중국에서 경제활동을 시작한 것은 대만정부가 허락하기도 전으로, 중국의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천명하며 대만상인들의 투자를 장려하던 때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의 타이상들은 중국이라는 잠재적인 시장을 투자의 기회로 본 것은 맞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닙니다. 타이상들 중 다수가 국민당이 대만으로 이주할 때 함께 넘어온 외성인들로, 낙후된 고향에 돌아가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이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문화대혁명이후 피폐해진 자국 경제를 회생하도록 하는 데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중국의 경제발전에서 타이상의 역할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타이상도 모두 한족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타이상 기업을 중국 기업으로 착각합니다. 예컨대 대표적인 타이상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폭스콘(Foxconn)을 많은 외국인들이 중국 기업으로 오해하곤 하죠. 둘째, 1980년대부터 여러 타이상 기업이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중국 기업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소속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셋째, 중국이 기업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만의 인재들을 초빙했다는 점에서, 실제 기업 운영 과정에서 중국인과 타이상이 혼재된 경우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SMIC는 대만의 TSMC 출신 인재들이 중심이 되어 창설한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입니다.

이렇듯 중국은 타이상의 역할 덕분에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타이상은 천안문 사태로 인해 전 세계가 중국을 견제하고,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투자의 안정성에 의문을 품을 때, 앞장서서 대() 중국투자를 이끌었습니다. 또한,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미국과 대만 정부를 설득한 타이상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해외투자의 유치와 세계시장으로의 진출은 중국경제발전에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러시아나 인도 등, 중국과 유사한 규모의 영토나 인구를 가진 국가들은 종종 있지만, 중국만큼의 성장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타이상과 같은 집단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이 제공

 

Q: 타이상의 독특한 점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양안관계에 있어서도 종종 대만 정부의 입장과 다른 행보를 보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1992년 중국과 대만의 공식적 교류 이전에도 확인되는 것이지만, 이후로도 꾸준히 나타납니다. 중국과의 관계는 안보의 관점에서도 중요할 것인데, 그럼에도 정부의 정책기조에 때때로 반()하는 타이상의 행보가 지속가능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 말씀하신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갖는 질문인데요. 이에 대해서는 네 가지 정도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 대만의 특수한 대외환경으로 인해 대만 정부는 타이상의 통제에 근본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정책으로 인해 어느 국가든 중국과 수교하기 위해서는 대만과 단교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 대만의 수교국은 12개국 밖에 남아있지 않죠. 또한 중국의 방해로 인해 대만은 국제사회의 다양한 협약이나 기구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대만의 세수를 충실히 올려주는 타이상의 해외 활동을 통제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타이상이 제 3국에 유령회사를 차려서 활동을 하더라도 대만정부는 자국의 법을 명시적으로 위반하지 않는 이상 특별히 규제하지 않죠.

둘째, 대만 헌법에 의하면 대만의 영토는 여전히 중국대륙과 그 부속도서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 대만은 아직 대륙의 중국과 하나의 국가라는 것이죠. 이러한 인식이 오늘날 현실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타이상의 중국 활동에 대해 일부 정서적인 지지의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중화권에서 많이 언급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서입니다. ‘서로 같은 것은 추구하고, 다른 것은 보류하자는 구동존이는, 상호간 경제적으로 이롭다면 정치적인 갈등은 뒤에 두고 이익을 추구하자는 뜻을 담고 있으며, 이러한 정서는 타이상의 중국 활동을 수용하는 사회적 태도를 형성했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대만은 우리와 유사한 분단국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정치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교류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죠.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정냉경열 (政冷經熱)’이라고 말합니다. 경제교류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의지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2008년 집권한 마잉주(馬英九) 정부는 8년간의 집권기간 동안 양안경제 교류를 위한 다양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넷째, 최근에는 아주 일부이지만, 대만인들에게는 타이상의 활동이 통일을 위한 활동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이 소떼를 이끌고 북한에 갔던 일화를 생각해보시면 이해하기 수월할 것 같은데요. 초기 타이상의 활동에 대해서는 이러한 정서가 있었던 것입니다.

 

 

Q: 책의 내용에 따르면 타이상의 중국 투자로 인한 대만의 대()중국 경제의존의 심화나 산업 공동화(空洞化)에 대한 경고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경제가 충분히 성장한 2010년대 이후로는 타이상이 주도하던 여러 산업들을 중국 기업들이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우려는 상당 부분 현실이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를 타이상의 역설이라고 보고 계신데요. 이러한 귀결을 양안관계나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A : 말씀하신 것처럼 타이상의 면모는 역설적인 측면이 있죠. 이를 양안관계와 국제정치의 영역으로 나눠서 설명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선, 양안관계에서 타이상의 활동은 중국의 통일정책에 기반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중국은 타이상의 이익추구를 도왔지만, 한편으로 중국의 발전에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2001WTO에 가입한 이후로는 그 우호적인 태도도 다소 달라졌습니다. 타이상이나 다른 해외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관리와 기술을 충분히 습득한 중국 기업은 타이상에게 베풀었던 관세 혜택을 거두었고, 동남부에 있던 기업들을 대만에서 먼 내륙으로 이전하도록 했습니다. 다수의 타이상이 이로 인해 대만으로 돌아오거나 혹은 중국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는 것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타이상은 이익을 추구하다가 스스로 입지를 줄여버린 것이 되었죠.

한편, 국제정치의 영역에서 본다면 중국은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이 주도했던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시장 자유화의 구조속에서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때 많은 학자들이 근대화 이론에 근거하여 중국이 이 과정을 통해서 민주주의 국가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으나 결과는 그러하지 못했죠. 이제 중국은 미국에 도전하는 새로운 강대국으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중국의 대외전략은 도광양회(韬光养晦)’에서 유소작위(有所作爲)’, 그리고 이제는 무소불위(無所不爲)’로 변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양안 간의 관계를 넘어 강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에게 타이상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중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다만, 중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데에 타이상이 기여한 바가 큰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Q: 2024년 초만 해도 국내에서 대만에 대한 뉴스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총통 선거 이후 그 관심은 퇴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중국 제조 2025(2015)’ 천명 이후 미국과 중국의 대립속에서 대만은 여전히 국제적 사안의 화두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대만의 존재, 혹은 행보가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A : 먼저, 2024년 대만의 총통선거가 우리에게 유독 관심을 끌었던 것은 선거의 판세에 따라 양안 위기가 고조되면서, 만약 전쟁이 발발하면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위기의식과 관련되었습니다. 그러나 라이칭더(賴淸德)의 당선이라는, 중국이 원하지 않았던 선거 결과가 나왔음에도 양안 간의 전쟁은 발생하지 않았죠. 대만에 대한 관심이 한 때의 이슈로 끝난 것은 그러한 이유로 풀이됩니다.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대만을 둘러싼 미·중대립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이상의 기여로 성장한 대표적인 분야인 반도체 산업은 미·중대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죠. 중국은 현재 여러 대만 중소기업에게 주던 혜택을 거두고 있지만 대만의 대기업과 반도체 기업은 예외에 해당하며, 특히 중국에 첨단 반도체를 공급해주는 TSMC와는 우호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에서 한국은 대만과 유사한 위치에 있고, 중국은 대만의 반도체 기업을 대하는 것과 유사한 태도로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을 대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반도체는 단순히 산업에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국방과 안보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국제정치의 영역에서도 중요한 소재죠. 그렇기에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제재를 가하면서 대만과 한국의 동참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대만 반도체 산업의 행보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정리 : 천관우 기자 kw10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