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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한 개인의 역사에서 모두의 역사로”허홍무의 생애를 돌아보다 본문
5면 저자와의 대화
이동해,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 푸른역사, 2024
“한 개인의 역사에서 모두의 역사로”허홍무의 생애를 돌아보다
Q : 이 책은 선생님의 외할아버지이자 ‘무명인(無名人)’인 허홍무의 생애를 톺아봄과 동시에 한국의 여러 역사적 사건을 소환하는 구술 생애사의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이 방식을 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먼저 여쭙고 싶습니다.
A : 이 책은 이론적인 고민이나 심도 있는 문제의식보다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학부 시절 역사를 공부할 때에는 미시사와 관련된 저서를 많이 접하며 흥미를 느꼈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구술사가 역사 연구의 중요 키워드로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저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때마침 머릿속에 할아버지가 떠오르면서 무명인의 삶에 대한 집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원고를 쓸 때는 기존의 구술 생애사와 차별화한 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존 구술 생애사의 한계로 지적할 수 있는 채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분석이나, 개인의 구술이 지닌 신빙성에 대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사람의 감정이나 기억, 기억하는 방식 등에 초점을 두는 서술 등을 보완하고 싶었죠.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개인의 구술을 검증하고 신빙성 있는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기존의 구술 생애사 서술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구술사 연구는 특정 주제를 담아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정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경험과 관련된 구술만 추출하여 심층적이고 분석적으로 정리하는 것이죠. 이 책의 경우 특정 주제를 선별하여 서술하는 것이 아닌 한 개인이 살면서 재미있던 경험이나 힘들었던 사건을 나열하는 방식에 속합니다. 제가 조명했던 무명인의 삶은 독립운동을 하거나 정계에 몸담은 사람들과는 달리 그 방향성이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특별하지 않은’ 사람의 생애를 서술할 때에는 구술 내용 자체를 하나하나 뜯어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서론에도 밝혔듯 맥락을 찾고 검증한 뒤 특정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다뤘습니다. ‘검증하기’는 의도적 왜곡이나 실수로 인한 왜곡 등을 구분하는 방식이며 ‘특정하기’는 당대의 다른 사료를 바탕으로 구술을 구체화하고 특정하는 과정입니다. 미시사를 연구할 때 흔히 ‘두껍게 읽기’가 강조됩니다. 한정된 자료를 당시의 배경을 바탕으로 검증하는 것을 통해 작은 사료에서 많은 이야기를 꺼내는 방식을 활용해서 기존의 구술 생애사 서술과 차별되는 지점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기존의 역사 연구는 주로 시기 구분을 통해 이루어지다 보니 이에 따른 한계점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시기 구분을 넘어 개인의 생애 전체를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지점을 만들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제 시기’와 ‘해방 후’의 시간을 단편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닌, 그사이에 중첩된 부분을 조명하고자 했던 시각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죠. 또한, 이 책은 ‘공공역사’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이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가족사를 재구성할 기회의 출발점이자 참고점이 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역사에서 말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경험이 조금 더 많이 발표되고 역사 연구의 한 분야로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 책 전반에 걸쳐 허홍무 개인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로 나타나며 또한 마을 사람들과 허홍무 사이의 관계도 중요한 비중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시기별로 허홍무와 가족 그리고 마을공동체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관계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 여쭈어봅니다.
A : 구술 생애사를 위해서는 가족의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 합니다. 한 개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를 둘러싼 배경을 알아야 하고 이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방식이 가족이죠.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허홍무 가족들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책에 녹아들었던 것입니다. 가족을 등장시키는 것은 제가 선택했던 글쓰기 방식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허홍무의 할아버지인 허벽은 춘궁기에 마을 사람들에게 쌀을 나누어주었고, 이 과정을 책에서 설명하면서 마을공동체를 언급했습니다. 또한 한국전쟁 시기 강신항의 일기를 통해 그의 할아버지가 마을 지도자의 성격을 띠고 있었지만, 인공치하 상황에서도 숙청을 당하지 않았다는 부분을 서술하면서 마을공동체의 역할을 서술하기도 했죠. 그는 지주이자 명백한 우익 인사였기에 숙청 대상이 되었지만, 마을의 인심과 마을 사람들의 강력한 지지를 통해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이는 조금 희귀한 경우라고 생각했고, 어떻게 보면 마을공동체 내에서 좌우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인공치하 상황에서 중요 간부들이 숙청당하는 사람들의 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장면들을 함께 언급했죠. 사실 저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공부할 때 계급적인 부분을 많이 인식하게 되고, 이것이 역사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틀이 될 수 있음을 줄곧 배워왔기에 이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사례를 통해 계급적인 해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윤해동의 ‘회색지대’라는 개념은 역사학계에서의 일제 시기를 이분법적으로 양분화하여 분석하려는 경향을 비판하려는 시도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역사 연구에 있어서 완전한 이분법은 없으며, 그사이에 존재하는 무언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죠. 이런 관점을 활용해서 좌우 대립 혹은 계급적인 이분법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가족, 그리고 마을공동체 속에서의 개인의 생애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이죠. 이를 단순히 이분법에 균열을 내는 과정으로만 요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계급 갈등 이전에 분명 존재하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던 무언가를 발견하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 책은 일제 시기에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를 바탕으로 소작료 징수나 지세 및 소득세에 대한 이야기를, 해방 전후에는 황금광 열풍 속에서 개인의 금광 투자 등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각의 시기별로 개인의 경제적 활동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A : 우선 직업을 선택하고 저축하거나 투자하는 활동 등 개인의 경제활동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과 필연적으로 관련됩니다. 전쟁이나 경제 공황, 자연재해에 따라서 결합되고 균열되는 양상이 관찰되는 것은 당연하죠. 하지만 집필 과정에서 조금 더 주목했던 것은 시대와 관계없이 인간이 지닌 본성 즉, 먹고 살 궁리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결핍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경제활동에 주목한 것이죠. 먹어야 살고 그래야 삶이 가동될 수 있기에 개인의 경제활동은 한국사나 세계사를 넘어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인간이 늘 지니고 살아야 할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늘날 돈이 생기면 안정적인 투자처도 찾고 싶고 원룸에서 전세로 조금씩 나은 환경을 찾아가게 되는 것처럼,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죠. 일제 시대의 지주와 소작 관계도 지금의 월세 개념과 크게 다를 게 없으며 땅이라는 자본을 통해 지대의 형태로 수익을 얻는 과정이라고 바라보았습니다. 허벽이 황금광 시대에 광산에 투자하는 과정도 오늘날 비트코인을 투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위험이 높지만, 수익성 역시 높을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었으니 허벽은 과감하게 투자를 했고 이후 투자 실패로 인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사료를 활용할 때 있어서도 저는 구체적인 액수나 돈과 관련된 수치를 다양하게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우선 역사 서술에 있어서 두루뭉술한 부분은 최대한 지양하고자 했기 때문이었고, 독자의 궁금증이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서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금전적인 부분을 자세히 서술하게 되었죠. 도대체 금이 얼마였기에 이렇게 무리한 투자를 했을까 궁금증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책 속의 인물들이 했던 선택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때 신문자료를 살펴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요. 물가를 확인할 수 있는 기사들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경제활동을 분석할 때에 있어 다양한 사료를 종합하여 당대를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던 개인을 설명하고 있는 구체적인 수치를 살펴보는 과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구술사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한 개인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동반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밝히신 것처럼 집필의 과정에서 가족들 사이에서 “공감과 치유의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는 구절을 여러 번 곱씹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구술사를 집필하는 과정 자체가 가지고 있는 치유의 효과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A : 치유는 보통 상처가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처는 주로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만의 특징으로 한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인의 상처는 주로 소통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이 생겼을 때 가족에게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가부장제를 통해 살펴볼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을 단순히 가부장제만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부족할 수 있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공유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을 간과해 왔고, 이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저희 가족의 경우 할아버지가 겪은 힘든 일들을 가족에게 공유하지 않은 채, 짜증이나 화를 내는 방식으로 표현하다 보니 가족들은 이유를 알 수 없이 또 다른 상처를 받는 경험을 반복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책을 집필하기 위해 할아버지의 구술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죠. 할아버지의 성향이 형성된 데에는 구술 속 내용이 굉장히 중요하게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중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가난으로 가지 못했거나, 전쟁 속에서 죽음의 장면을 목격했다는 사실 등을 혼자만 안고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가족들이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죠. 책을 통해 무뚝뚝하고 짜증이 많으며 이상한 성격을 지닌 개인 뒤에 숨어있던 배경을 확인하며 공감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이런 것들이 치유라는 이름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책을 발표하고 한 60대의 독자분이 저에게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책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죠. 가족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개인적인 서술에 머물 것이라 우려하기도 했던 책이 누군가에게 치유의 과정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 인터뷰·정리 : 정재훈 기자 wjd88899@naver.com
'5면 > 저자와의 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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