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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이후 세대의 상상력, 광주를 너머, 세대를 너머 본문
5․18 이후 세대의 상상력, 광주를 너머, 세대를 너머
-5․18 민중항쟁 40주년 기념 학술대회-
지난 8월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간 전남대 5․18 연구소 주최 5․18 민중항쟁 4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열렸다. 올해는 5․18 민중항쟁 40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여러 기념 행사들이 대거 축소되고 취소된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그간 “5․18세대의 연구자들은 정치적 부채의식과 윤리적 책임감을 가지고” 5․18 민주화 운동을 연구해왔고 이것이 중요한 연구 동력이었으나 이후 세대와의 사이에서 커진 “정서와 감각의 격차”를 문제시하며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시선의 확장성을 시도하는 학술장을 마련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주목할 만한 발표문 몇 편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묘지에서 몸으로 만드는 민주주의
-군사 독재와 싸우는 광주항쟁의 “제사 액티비즘”-
김하야나는 80년의 억압적 정치상황 속에서 금지된 추모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버리는 비통함의 애도가 이후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이를 위해 퍼포먼스 이론과 구술 인터뷰라는 방법론을 사용한다. 연구자는 사람들이 ‘묘지’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그리고 확장해 벌였던 집회, 시위, 추모 등의 행위를 전시적인(presentational) 형태로 대중을 향해 사회적 메시지를 보내는 퍼포먼스로 상정하며, 특히 광주항쟁 이후 시기 추모 집회를 통해 군사 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주의 운동을 ‘제사 액티비즘’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하며 살펴본다.
연구자는 ‘비통함’이라는 감정을 연구의 초점으로 가져오는 것은 유가족들을 과격한 감정에 기댄 극단적 모습으로 보는 시선을 지양하고 정치와 감정의 관계를 질문하기 위함이라고 밝힌다. 특히 ‘묘지’라는 장소에서 이들이 싸움을 시작한 것은 유가족들이 사회에서 배제된 정도를 반영하는 것이며, 유가족들이 “다시 직조한 민주주의”는 비통함을 중심으로 법과 제도를 넘어서 몸으로 확장된 민주주의가 되었다. 광주항쟁의 유가족들은 ‘무’와 ‘상실’의 공간인 망월묘지에서 제사 액티비즘을 통해 대안적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리허설해보였다는 것이다. 그가 정의하는 제사 액티비즘이란 1980년대 광주만의 지역적 특수성의 맥락 속에서 잉태된 개념이라는 전제 하에 죽은 자의 민주적 명분을 부활시켜 “지금 이곳에” 새로운 봉기를 만들어 이것이 미래에까지 연결되게 하는 추모의 액티비즘이다. 이것은 죽은 자에게 책임을 다할 때 가능해진다.
가족의 장례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던 1980년에 유가족들은 폭도라는 폄훼적인 단어로 항쟁의 민주적 의의를 지우려는 사회의 “지적인 정의(epistemological justice)”와 “지적인 폭력(epistemological violence)"에 맞섰다. 제사 액티비즘은 누군가의 죽음은 공공의 영역에서 비통함을 가지고 대중들이 기억해야하는 권리로 여겨지고 다른 누군가의 죽음은 죽음으로 인식되는 것조차 부정되어 사람들의 지각에서 잘려나가는 차별적인 애도 상태에 대한 재분배 행위로 작동했다. 유족에게 파묘를 하는 대가로 돈을 주며 장소와 기억을 허물려는 시도들에 대해 유가족들은 감시, 납치, 가택 침입 등의 정부 탄압에도 불구하고 후퇴 없이 견디는 방식의 저항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유가족들의 노력은 1981년에 장관을 이뤘던 추모 집회로 이어질 수 있었다. 군사 독재 정부가 항쟁에 대한 애도를 금지했을 때 가족의 슬픔은 사적인 영역 내부로만 고립될 수 있었으나 유가족들은 망월 묘역을 무대로 시민들과 함께 대규모의 추모 집회를 열어 이에 대항했다. 논자는 그 현장을 담은 사진에서 개별 시위자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감각적 에너지(sensory)와 몸의 사회성 및 수행성을 읽어낸다. 개인들이 공공집회라는 추모의 집단퍼포먼스를 통해 빚어낸 상호관계성이 이들 사이의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내며 퍼포먼스가 일어난 공간은 공동체의 공간이 된다. 이를 통해 제사 액티비즘은 비통함을 공공의 것(public), 공동체의 것(communal)으로 만들어내며 이 지점이 비통함이 정치에 개입하는 지점이 된다. 슬픔에 종지부를 찍기를 거부하고 또다른 창조의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사 액티비즘을 통해서 감정과 정치가 얼마나 밀접하게 엮여있는지를 알 수 있다.
1984년 이후에도 제사 액티비즘은 계속 되었고 매년 많은 사람들이 망월 묘역을 방문하며 시간들을 겹겹이 쌓아올렸다. 망월 묘역은 자연의 공간이자 아직 오지 않은 장소를 향한 기대의 공간, 즉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불러올 공간이 되었는데 이곳에서 누적된 집단적인 희망과 기대는 1987년 6월 항쟁의 순간을 가져오게 했다고 연구자는 설명한다.
▶사진1. 1980년 5월 29일, 망월묘역이 조성되어 청소차에 실려 온 시신을 묻는 장면
@한겨레
항쟁을 쓴다는 것
-5․18 일기에서 실천과 감응(affect)-
일기는 사적 기록이지만 오월 일기의 일부는 유네스코 세계기억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항쟁의 영향과 흔적이 남겨있는 공적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박경섭은 5.18을 쓴 일기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항쟁의 합법화와 제도화라는 “5․18의 위상 변화”와 관련이 있음을 지적하면서도 단순히 5․18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일기에 이전에는 없었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 것인지를 질문한다. 즉, 오월 일기 자체가 지닌 고유성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 이 연구가 지닌 문제의식이다.
오월 일기는 우선 항쟁이라는 사건(성)과 분리불가능한 일차적 속성을 가진다. 일기는 일기임을 드러내는 서명인 날짜와 저자의 필체, 종이로 구성되며 읽는 독자를 ‘여기, 지금’으로 옮겨놓는다. 그런 의미에서 항쟁 당시 쓰인 일기와 항쟁 종료 이후에 쓰인 일기는 구별될 필요가 있다. 논자는 시간적 관점에서도 접근법을 달리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간 5․18에 대한 연구들은 현재 시점에서 현재와 과거, 항쟁 당시와의 거리감 속에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기억과 구술 또한 기록화되는 과정에서 행사되는 발화 시점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의 시점에서 5․18을 측정”하는 연구였다. 일기는 항쟁의 시공간과 분리되어 있지 않은 채 그 시점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연구의 현재적 인식과 기준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다는 텍스트 자체의 고유한 물성(物性)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항쟁과 일기의 불가분성, 항쟁의 시공간에의 정박이라는 속성은 기준점을 일기가 쓰인 시간이 되게 하고, 접근의 방향성 또한 현재로부터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로 되돌아오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현지인의 관점에서 현장을 바라보려는 인류학의 민족지 쓰기에 대한 성찰성을 참조한다.
연구자는 일기를 읽어나가며 감응을 전달하기 위해 연역적으로 구성된 조작적 개념을 사용하기보단 제3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적합한 표현들을 찾아나가려는 과정 가운데 일기가 지시하고 뿌리내린 항쟁의 시공간으로부터 현재를 향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밝힌다.
공개된 16편의 일기들을 보면 글쓴이들의 구성이 다양하다. 직접 시위에 참여하고 계엄군에 맞서 싸운 사람들뿐 아니라 시민군을 위해 밥을 지은 여성, 서울에서 광주와 전남을 함께 아파했던 이들 모두 항쟁의 또 다른 주역임을 보여준다. 광주에 대해 진실이 날조되고 온갖 유언비어가 교차되던 당시 광주 항쟁에 대해 일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항쟁에 대한 감응이자 자신과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항쟁에 참여한 사람들의 일기에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것과 전해들은 것을 명확하게 분리하려는 저자들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양자는 섞여 있는데 그만큼 항쟁의 시공간과 이들이 분리된 개인일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작자 미상의 「찢어진 깃폭」과 김성용 신부의「분노보다는 슬픔이」와 비교해보면 그 특징이 보다 명확해진다.「찢어진 깃폭」은 항쟁 종료 직후 외부에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 유효한 텍스트로 간주되어 널리 알려졌지만 오월 일기와 비교해 진실성을 확인할 수 없고 허구적인 성격을 가진다. 1인칭 시제로 항쟁 상황을 묘사하지만 고립된 개별적 자아의 시선이며 자신이 목격한 것을 타국의 사례, 은유를 통해 생생하게 항쟁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일기에는 그러한 성찰의 여유와 시적 표현의 자유가 허용될 수 없었다.「분노보다는 슬픔이」도 사후적으로 쓴 일지 형식의 보고서에 가깝다. 또한 두 텍스트는 일기 전체의 제목뿐 아니라 소제목이 붙여있는데 제목과 소제목은 텍스트 전체에 대한 고려 없이는 붙여질 수 없다는 점에서 일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 글에서는 16편의 일기 중 민영량, 박연철, 장식의 일기에 주목해 5․18에 대한 감응적 특성과 변화를 살핀다. 먼저 일기는 항쟁의 신체라는 맥락과 분리되지 않는다. 항쟁을 통해 시민들은 ‘우리의 거리’를 형성하고 항쟁의 신체 일부가 되었으며 일기에는 그 일체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기를 하나의 실천 형태(사회적 행위)로 간주하는 것도 항쟁의 장 전체가 감응의 공간이고 이를 표현하는 것이 일기를 쓰는 일이었으며, 쓰인 이후 우연한 독자와의 접촉 속에서 그 항쟁의 감응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기는 쓰인 이후 호소문의 형태로 구성을 달리해 상황을 요약해 객관화하기도 하는데 자신의 판단과 상황 묘사의 문장이 제3의 청자를 염두에 둔 문장과 계속해서 섞이기도 한다. 항쟁에 대한 자기 인식과 항쟁의 진실을 모를 국민에 대한 고려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나타나는 혼동은 5․18에 대한 일관된 서술과 설명체계가 확립되기 전의 관념의 혼합, 이행, 변이로서 항쟁의 감응을 보여준다. 또한 일기는 항쟁의 시공간과의 결별, 항쟁과 죽은 이에 대한 애도의 감응 또한 나타내는데 항쟁을 통해 자유와 민주주의 장소를 모색하게 되는 감각의 변화를 반영한다. 아직은 모호한 지시대상이던 민주주의와 자유는 애도라는 감응에 합당한 관념의 확보를 위한 싸움 과정 가운데 기나긴 오월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게 했다.
▶사진2. 1980년 5월 서석고 3학년이었던 장식 씨의 일기, 직접 목격한 계엄군의 집단 발포상황이 담겨있음.
@경향신문
『5월의 사회과학』과 절대공동체의 감정 동학
황옥자에 의하면, 5․18 당시 광주에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모였으나 기억되어야 할 감정이 5․18 정신으로 기념화하는 과정 가운데 “보편적이고 박제화된 정신”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과정 가운데 5월 광주에서 구체적으로 작동했던 행위자들의 감정은 삭제되어버렸다. 논자는 그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는데 개별적이고 특수한 ‘감정’은 사회과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며, 5월 광주의 감정들을 부정적인 것들로 여기거나 혹은 종교적 개념으로 승화해버리는 경향 때문이다. 때문에 5․18 이후의 세대들은 그 시대의 분노, 부채감, 환희를 공유하지 못한 채 전 세대와 공유지를 가지지 못했다. 논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최정운의『5월의 사회과학』에서 제시된 ‘절대공동체’ 논의를 중심으로 그간 논의되지 못했던 ‘감정’의 구성을 살핀다. 절대공동체 형성 전과 절대공동체까지 광주 시민들의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고 연결되는지를 여러 증언자료집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5․18 공동체 담론은 최정운이 1999년『5월의 사회과학』에서 제시한 절대공동체론이 계기가 되었다. 그에 따르면 1980년 5월에 광주는 원초적 가치로 불릴 만한 절대공동체를 체험했으며 자유, 평등, 국가, 민주주의 등의 이상이 모두 얼크러져 하나의 이름 모를 느낌으로 존재했다고 설명한다. 이후 연구자들은 서구의 다른 정치철학 이론이나 사건을 5․18에 직접적으로 대응해 비교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논자는 그로 인해 5․18의 고유성이 사라지고, 내적 형성 원리는 밝히지 않은 채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에만 집중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절대 공동체’라는 용어의 모호함을 인정하더라도 5․18 공동체 담론이 특이성이라는 영역 안에서 성역화되거나 서구 담론을 이식해 보편성의 가능성으로 비약하는 것 모두를 비판하며 당시의 행위자들의 감정과 마음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해석해 항쟁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논자는 절대공동체 형성의 배경으로 먼저 당시에 공수부대가 보였던 폭력성과 모욕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기 시작했던 인간애와 분노를 꼽는다. 공수대원들은 시민들에게 집단적 혐오감을 가지고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동물처럼 대했다. 이를 본 시민들은 분노와 공포, 약자에게 가해지는 잔인함에 대한 분노를 느꼈고 공포로 인해 함께 하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는 자책감을 느꼈다. 이를 넘어선 자들이 만들어 낸 해방공간이 절대공동체였다. 시민들은 그 안에서 가짜 나라를 인정하지 않은 채 스스로가 국가가 되어 애도식을 시행했다. 21일 새벽에 발견된 시체 두 구에 대해 시행된 애도식 때, 태극기가 관 위에 씌워진 것은 이들 안에서 ‘국가적 차원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사람들은 슬픔이라는 집단적 감정을 공유했고 그 가운데 아리랑 가락이 울려 퍼졌는데 황옥자는 이것이 호남인들이 가진 차별과 배제의 한과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항쟁 밖에서는 이성과 평화, 용서의 프레임이 구성되어 항쟁을 멈추지 않는 자들은 비이성적인 폭도, 간첩, 평화를 원하지 않는 깡패들로 규정되고, 국가는 평화적 사태 해결을 원하는 자가 되었다. 항쟁 밖에서 항쟁을 규정하는 언어는 ‘지역감정’이라는 맥락 하에 감정을 비판하고 분노의 감정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절제와 냉철한 이성을 통해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지만 5월 공동체 안에 존재했던 분노와 감정들은 “공포를 극복하는 이성적 결단”에 의한 것으로 “이성적 분노”였던 셈이다.
누스바움의 혐오 이론은 합리적인 공적 감정에서 제외되어야 할 혐오가 오히려 공적 영역에서 소환되고 이에 대한 관망이 혐오의 정치를 지속화하는 데 일조하면서 폭력과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문제를 지적했다. 논자는 오늘날 광주나 호남에 가해지는 혐오의 감정과 표현들이 그날 광주가 지닌 이성적 분노와 슬픔을 더 고립시키고 왜곡시켜왔다고 본다. 1980년 5월 그날 사람들이 남긴 증언(감정)을 해석하고 가치 평가하는 작업은 이후의 서사를 다시 구성하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 사진3. 5․18 40주년을 앞두고 진행되었던 차량 진행 퍼포먼스 “전두환은 사죄하라”
@연합뉴스
■ 윤정인 기자 cherisheep@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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