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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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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사설

혼란의 시대 속 대학의 역할을 다시 묻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25. 9. 20. 11:28

혼란의 시대 속 대학의 역할을 다시 묻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다시 입성하자마자 가장 먼저 겨눈 곳은 다름 아닌 대학이었다. 이미 1기 때부터 트럼프는 보수 지지층을 달래고 좌파의 온상인 대학을 압박하기 위해 연방 연구비와 학자금 지원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바, 두 번째 임기에 들어와서는 곧바로 연방 지원금을 흔들며 겁박하기 시작했다. 하버드대학교는 수십억 달러의 연방 자금이 묶였고, 컬럼비아·코넬·프린스턴 등도 줄줄이 불충한 대학으로 낙인찍혔다. 최근 UCLA마저도 불법적인 소수자 우대정책(illegal affirmative action)”을 시행했다는 이유,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이유, 그리고 트랜스젠더 선수의 경기 참여를 허용해 여성 차별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지목되어 곧바로 거액의 연구비 지원이 동결되었다. 연방 교육부의 ‘Title VI 프로그램’(지역학·언어 연구 지원 사업)도 특정 대학이 미국적 가치를 충분히 가르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원 삭감 위기를 맞았다.

반유대주의에 대한 대응이 미흡하다는 거창한 명분이지만, 실상은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묵살하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대학의 입을 막겠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대학은 젊은 세대의 여론을 생산하는 공간이고, 비판적 사고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적대자로 규정된 대학을 재정 압박으로 길들이려는 시도는 학문 자유 대신 학문적 충성을 요구하며 결국 고등교육 전체를 볼모로 잡는 행위다. ‘자유를 앞세우며 진정한 자유를 억압하는, 그야말로 역설적이고 절망적인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과다. 대학의 연구비 삭감은 단순한 숫자의 감소가 아니라, 곧 학문적 다양성의 축소로 이어진다. 학생 지원이 줄어드는 순간 교육의 문턱은 더욱 높아지고, 그 결과 사회적 불평등은 고착된다. 정치적 압박 아래 위축된 학문 자유는 결국 사회 전체의 사고 지평을 좁히고, 집단적 성찰의 힘을 앗아간다. 권력이 대학을 옥죄는 순간, 무너지는 것은 대학만이 아니라 사회의 비판적 기능일 것이다.

우리의 상황도 예외가 아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미 혼란의 시대를 여러 번 지나왔다. 지난겨울의 소용돌이가 마치 끝난 듯 보이지만, 실상 그 여파는 여전히 우리 삶 곳곳에 스며 있다. 정치의 격랑과 사회적 갈등, 그리고 학문에 대한 외부적 압력은 결코 사라진 적이 없다. 오히려 모양을 바꾸어가며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학의 역할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은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아첨하는 기관이 되어서도,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해단체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 대학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오직 하나, 혼란 속에서도 비판적 정신을 지키며 학문과 양심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는 것이다.

역사의 풍랑은 늘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대학이 지켜야 할 것은 분명하다. 진리에 대한 집요한 추구, 그리고 사회를 향한 비판적 성찰. 혼란의 시대일수록 대학은 조용한 학자의 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혼란의 의미를 밝히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가장 치열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오늘 우리가 다시금 되새겨야 할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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