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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가라앉은 기억에 숨을 본문
가라앉은 기억에 숨을
“국가로서 어떤 지원을 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싶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참의원 결산위원회에서 덤덤히 이야기했다는 기사를 나는 도쿄의 한 식당에 앉아 읽었다. 유골이 남아 있는 구체적인 위치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조세이 탄광에 대한 기술적·재정적 지원을 외면해 왔던 일본 정부가 이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자, 그것만으로 나는 조금 안심했던 것 같다. 이제 바뀔 수 있으려나. 그들도 뒤늦게나마 충격받고 타격받았을 테니. 그로부터 몇 달 뒤, 숨 막히던 여름의 열기가 꺼져가던 8월 25일, 조세이 탄광에서 숨진 희생자들의 유골이 밖으로 나왔고 ‘이제라도’ 일본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었지만 정작 관료들의 책상 앞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절박한 목소리를 받아 적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지난 학기 내내 도쿄에 머물면서,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실감한 적이 많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책 너머로 배우고 익힌 것들과 실제 현실에서 통용되는 이야기들은 완전히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후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서구 중심 이성 중심 제국 중심의 사고를 당연하게 비판하지만 정작 제국 ‘일본’을 거론하는 것은 꺼려했으며, 식민지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순간 미묘한 얼굴로 변했다. 서구 보편의 탈을 쓰고 식민 지배를 말하는 것은 괜찮았다. 역사를 긴 안목으로 보면 지배와 착취라는 구조는 지구 어디에서나 있었던 일이니까. 그래, 그것도 석연찮았지만 식민지 ‘조선’에 대한 토론을 할 때면 애초부터 서로가 삐걱거렸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토론은 제국 ‘일본’의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문학평론가 가토 노리히로가 전후 일본을 “침략전쟁의 당사자로서의 책임과 그런 전쟁을 통과해 왔다는 패전자로서의 자각이 부재한 사회”라 칭했던 것처럼, 패전으로부터 8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왔음에도 여전히 일본은 자신들의 과거를 소화해 나갈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강의실 안에서는 그랬다. 그 암묵적인 차단과 묘한 침묵이 나를 절망케 했다.
그렇다면 책상을 박차고 나가볼까. 고개를 조금만 돌려봐도, 나의 실망 섞인 절망―어쩌면 무지에 가까웠던―이 부끄러워질 만한 일들이 상당했다. 1970년대 초부터 오키나와에서 전사자 유골을 수습해 온 일본의 시민단체 ‘가마후야’나, 1991년 야마구치현 우베 시의 해저 탄광 앞에서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을 만들어 지금까지 유골 발굴을 위해 애썼던 자들의 이야기가 그러했다. ‘새기는 모임’의 대표인 이노우에 씨는 두 손 모아 고백했다. “일본이 저지른 죄를 아직도 속죄하지 않았다는 게 일본인으로서 정말 부끄럽습니다. 유해를 수습하고 반환하는 과정이 일본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사실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이 있는 183구의 유골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전후’로부터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국가가 방치한 책임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다. 가장 낮고, 가장 깊은 자리에서. 그렇게 힘겹게 불러와준 기억들에 숨을 불어넣는 것은, 또 그것을 다시 더듬어 나가는 것은 우리 몫이기도 할 테지. 그래, 절망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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