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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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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사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25. 11. 6. 20:12

7면 사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A 선생님은, 서울대학교에서 더 이상 자본론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물론 그에 맞서 <서마학>과 같은 움직임이 유의미하게 뻗어나가고 있는 것은 참 소중하고 감사하지만, 학내 정규 교육과정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이 빠진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청년시절 내내 마르크스와 함께한 A 선생님의 분노 섞인 아쉬움과 더불어, 한 세대와 시대의 지적 풍경이 이토록 쉽게 저물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솟아올랐다. 오늘날의 대학이 점점 시장 친화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배움의 장()이라 일컫는 공간에서 어찌 세계를 해석하고 변혁하려는 욕망을 억누를 수 있는 것일까. 몇 번이고 생각해도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A 선생님은 이어 미국의 사정을 말씀해 주셨는데, 나는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적 관심의 퇴조보다 이 이야기에 더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연간 수억 원에 달하는 학비를 내는 시카고 대학현재 미국에서 등록금이 가장 비싼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학생들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고등학교 시절 하나의 교양서처럼 읽고 대학에 들어오지만, 정작 노동자들에게 자본론을 권해도 이것을 지금 왜 읽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장시간 노동을 하고 돌아와 지쳐 쓰러져 잠에 들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자본론을 읽는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일 터. 그들에게 더 긴급하고 중요한 것은 자본론을 읽는 것이 아니라, 체력을 보충하고 다시 또 내일의 일터로 나가야만 하는 것, 그러니까 당장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며, 자신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조금이나마 더 부여받는 것이다. A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있었던 모두가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사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조차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겁이 나고 두려워서 깊이 생각하는 것을 피했을 뿐이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분석하고 노동자의 해방을 지향하던 자본론이 이제는 고액 등록금을 내는 상류층 자녀들의 교양으로 소비되고 있는 현실. 마르크스주의가 현실 변혁의 사상적 틀이 아니라 교양적 지식의 일종으로 전락할 때, 그 사유의 급진성은 신자유주의적 제도 속에서 철저히 길들여지고 만다. 나는 종종 우리 모두의 날 선 비판마저 체제에 위협을 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마르크스에 대해, 계급에 대해, 혁명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회는 훨씬 이전부터 찾아왔다. 일찍이 벨 훅스(bell hooks)가 개인의 소비욕구만을 자극하고 계급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미국 사회의 자본주의적 경향을 고발했듯, 계급적 차이와 그 차이에 대한 은폐는 신자유주의적 질서 속에서 더 가속화되고 고착화되었다. 계급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체념적 정서의 만연, 계급이 인종과 젠더와 뒤엉켜 거센 충돌을 낳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경고했던 소외가 이런 차원에서도 발생할 수 있었던가. 우리의 감정, 욕망, 관계, 심지어 희망의 방식까지 포섭한 채, 내면 깊숙한 곳까지 물들여 놓는 소외감. 이 감각으로부터 다시금 출발해 볼 수 없을까. 단순히 과거의 사상을 복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소외나 체념을 일상의 감정으로 둔갑시킨 오늘의 체제를 문제시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