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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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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사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그 이후에도 계속해보겠습니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25. 12. 9. 13:55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그 이후에도 계속해보겠습니다

 

  입술이 말라 있고 안색이 탁한 소설 속 인물들을 떠올리면, 또 그들이 언제나 서로를 감당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마음 한 쪽이 울렁거린다. 이 바보처럼 애틋한 존재들이 제발 행복했으면 좋겠어서 두 손 모아 빌고 운다. 밤을 지새우며 그들의 말을 받아적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거야? 너는 나에게 물었다. 어차피 허구의 세계라는 걸 알고 있잖아. 이야기가 끝나는 동시에 손을 흔들고 떠나갈 운명 속에 있어서 소설이 아름다운 거잖아. 

  그런 것이 소설과 이야기와 문학의 운명이라면, 소설은 과연 아름다운 것일까. 나는 소설이 절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언론을 전공했던 너는 문학은 현실에서 빗겨나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다. ‘삶’의 현장은 너무 적나라하고 가혹해서, 그것을 받아적고 편집하고 기사화하는 것 자체가 죄스럽다고. 죄스럽기까지 하단 말이야?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도 많은데. 당연히 좋은 기사들도 많겠지만, 너는 스스로가 그런 기사를 쓰는 사람은 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십 년째 종이신문을 구독하며, 내가 만든 신문도 클리어 파일에 부지런히 모아가면서, 저번 호의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별로였는지 왜 이런 내용은 다루지 않았는지 끊임없이 묻는 네가 언론인을 지망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대신 너는 법조인을 꿈꿨다. 어쩌면 더 오래된 꿈은 법조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너의 말. 죄스러운 마음 대신 죄와 죄라고 낙인찍혀버린 것들을 다시 살펴보고 싶다는 너의 포부가 실현되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지난 인터뷰 때 한 변호사님께서 보여주신 판결문을 다시 읽어주기도 하면서. “아직도 여러 영역에는 편견과 배제의 결과를 용인하거나 때로는 조장하는 제도와 관행이 남아 있어, 성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에 맞는 고유의 서사를 온전히 펼치지 못하고(…)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수반되는 공론의 기회, 숙고의 기회, 인내의 기회, 협의의 기회, 설득의 기회, 표결의 기회, 수용의 기회, 실패할 기회, 이로부터 배울 기회를 박탈당하였는지도 모른다”(「동성 동반자에 대한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여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2024.7.18.). 네가 세상을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너는 그 모든 것 대신 다른 직업을 가졌다. 너는 포기나 체념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 또한 자랑스러웠다. 너는 내 삶을 몰라. 내가 어떻게 일하고 무엇을 좇으며 살아가는지 너는 몰라. 소설 속 아름다운 세상은 결국 현실을 말해주지 못해. 소설 속 세상이 왜 자꾸 아름답다고 하는 걸까. 소란스러운 세상의 이야기들을 보고 듣고 내게 말해주던 너는 이제 경제 뉴스만 찾아 읽고 올라가는 주식 차트에만 흥분하는 어른이 되었다. 너도 나를 몰라. 내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위해 애쓰는지. 네가 이전과 다른 미래를 그리더라도 나는 여기 남아 계속 쓸 거다. 네가 그토록 사랑했던, 더 이상 꺼내보지도 않는 종이신문도 계속 만들면서! 그게 나의 유일한 살 길. 너 없이도 아주 잘 살 나의 변함없는 믿음. 너와 나 말고 또 다른 우리를 상상하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