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우리는 아직 모르는 이야기 본문

8면/과학칼럼

우리는 아직 모르는 이야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25. 10. 12. 00:12

우리는 아직 모르는 이야기

 

심혜린

과학칼럼니스트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특징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여전히 여러 주장과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언어’가 인간의 특징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동물학이 발달하고 비인간 생물종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며 사람들은 언어와 의사소통이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박쥐, 돌고래, 각종 영장류 등 소리나 초음파, 페로몬 등으로 의사소통하는 동물들의 사례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야생 상태에서 아프리카 줄무늬쥐(Rhabdomys pumilio) 간 이루어지는 음성 기반 의사소통이 보고되기도 했다. 설치류가 초음파 발성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기존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실험실에서의 관찰 결과를 통해 설치류가 내는 초음파에 성별, 감정, 신원 등의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음이 보고되기도 했다. 그러나 야생 상태의 설치류 집단에서 의사소통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구축되어 있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많지 않다. 초음파와 같은 고주파 소리는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빠른 속도로 감쇠하기 때문에 발원지로부터 근방 1~2m 부근까지만 전달된다. 가청 영역에 해당하는 주파수의 소리는 약 20m 정도까지 전달되며, 코끼리 등이 의사소통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저주파 소리는 1km까지도 전달되는 것에 비해 무척 짧은 거리다. 따라서 초음파를 이용한 의사소통은 매우 국지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사적 교류라 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처럼 거리상 한계를 가지는 초음파 기반 의사소통 체계가 어떻게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진은 줄무늬쥐 네 무리를 추적하고 각 무리의 둥지, 무리가 활동하는 영역의 중앙, 각 무리가 마주하는 경계 지역 등에 녹음기를 설치해 초음파 소리를 녹음했다. 녹음된 소리를 분석한 결과, 연구진은 각각의 줄무늬쥐 무리가 고유한 발성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줄무늬쥐는 낯선 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도망쳤지만 익숙한 소리를 들었을 때는 도망치지 않았다. 이는 줄무늬쥐가 초음파를 통해 같은 무리의 일원인 동료와 다른 무리의 개체인 낯선 이를 구별할 수 있음을 뜻한다.

 

아프리카 줄무늬쥐의 초음파 의사 소통 (Leo Perrier et al., Current Biology 35, 1–8, 2025)

 

  그러나 여전히 언어의 일부 특성은 인간에게서만 발견된다고 생각되어왔다. 인간이 갖는 고유한 언어학적 특징의 대표적인 예시로 합성성(compositionality)이 있다. 합성성이란 각각의 단어 혹은 구성 요소의 의미와 이들을 결합하는 방식에 의해 더 큰 의미가 결정됨을 뜻한다. 예를 들어 “금발 의사(blond doctor)”는 금발이고 동시에 직업이 의사인 사람을 뜻하지만 “나쁜 의사(bad doctor)”라는 말은 직업이 의사인 성격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나쁜 의사”의 두 구성 요소는 독립적인 의미를 갖지 않고 연결된 형태로 하나의 의미를 형성한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처럼 구성 요소를 결합하는 능력은 인간만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금발 의사”의 예시와 같이 각 요소의 독립적 의미를 유지한 채 구성 요소를 더하는 합성 사례가 조류와 영장류 등에서도 관찰되었다. 다만 여전히 “나쁜 의사”의 예시처럼 요소를 더해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사례는 동물에서 명확히 발견되지 않아 인간 고유의 특성으로 여겨지곤 했다.

  최근 보노보 관찰을 통해 도출된 연구 결과는 이러한 주장을 반박한다. 취리히 대학 연구팀의 멜리사 베르테는 보노보가 다양한 울음소리를 결합해 복잡한 의미를 상대방에게 전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콩고에서 야생 보노보 무리를 8개월간 추적하며 활동을 기록해 700여 개의 다양한 발성을 녹음했고, 그중 300여 개에 대해서는 발성이 가지는 맥락적 특징을 연결했다. 연구팀이 녹음한 발성 대다수는 ‘휘파람 소리와 삑삑대는 소리’, ‘높은 울음소리와 낮은 울음소리’ 등 서로 다른 소리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연구팀은 데이터를 분석해 각각의 발성이 지니는 의미와 조합된 형태의 발성이 지니는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인간의 언어 연구 방식이 차용되었다. 언어학 연구에서 유사한 맥락에 등장하는 단어는 의미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데, 보노보의 울음소리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울음소리 간 의미 유사성을 정량한 것이다. 그 결과 연구팀은 보노보 울음소리에서 인간과 같은 의미의 합성이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팀은 보노보로부터 ▲휘파람(whistle) ▲날카로운 울음(yelp) ▲짧고 높은 삑삑거림(peep) ▲높고 날카로운 울음(peep-yelp) ▲앓는 소리(grunt) ▲낮은 울음소리(low-hoot)▲높은 울음소리(high-hoot)라는 7가지 서로 다른 발성을 확인했고, 이들의 조합 중 세 가지에서 조합의 의미가 각각의 발성이 지닌 의미와 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어 보노보의 발성 중 높은 울음소리는 다른 개체에게 자신을 주목하라는 의미를 가지며, 낮은 울음소리는 보노보가 매우 흥분한 상태일 때 자주 내는 소리다. 그러나 이를 결합한 high-hoot_low-hoot이라는 형태의 울음은 단순히 ‘나는 흥분했다. 내게 집중해라’라는 뜻이 아니다. 연구진은 이와 같은 울음이 상대 개체가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때 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공격적인 상대방을 막거나, 집단 내 다른 개체들의 주목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한편, AI 기술이 발전하며 이를 기반으로 동물의 의사소통을 연구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 국제 비영리단체인 어스 스피시스 프로젝트 (Earth Species Project)는 조류, 해양생물, 양서류, 곤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종의 의사소통 연구를 위한 AI 모델을 개발했다. 이들이 개발한 AI 모델인 NatureLM-audio는 인간의 언어와 음악, 자연의 소리와 인공적인 소리 모두를 포함하는 환경 소리(environmental sound), 생명체로부터 유래하는 소리인 생체 음향(bioacoustics)을 학습한 동물 소리 오디오-언어 모델이다. NatureLM-audio 는 소리 데이터에서 각기 다른 종의 소리를 감지·분류하고, 새로운 종을 인식하고, 생체 음향 데이터에서 고통이나 친밀감을 나타내는 등 의미 있는 소리를 식별하는 등 데이터 분석 및 해석에 응용될 수 있다. 올해 4월에는 구글에서 돌고래 연구 기관인 야생 돌고래 프로젝트(Wild Dolphin Project, WDP), 미국의 조지아 공대와의 협업을 통해 돌고래와의 의사소통을 목표로 하는 돌핀젬마(DolphinGemma)라는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 중이라 발표하기도 했다. 돌고래의 소리 데이터를 학습해 돌고래 소리의 의미를 해석하고, 더 나아가 돌고래가 이해할 수 있는 소리를 만들어 돌고래와의 양방향 소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돌핀젬마의 목표다. 뉴욕의 비영리 단체인 CETI 프로젝트에서는 향유고래를 추적하고 소리 데이터를 수집해, 이를 모방하는 생성형 AI 모델을 훈련시키고 있다. CETI 소속 학자들은 향유고래가 코를 통해 공기를 진동시켜 내는 딸깍 소리를 코다(coda)라는 단위로 묶을 수 있으며, 코다에는 다양한 템포와 리듬이 존재한다고 보고했다. 지난해 콜로라도 주립 대학의 연구진은 머신러닝을 이용해 아프리카코끼리가 동료에게 개별적인 이름을 붙여준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생물종에 걸쳐 비인간 생물종에서도 인간처럼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짐과 동시에 다른 종의 의사소통 방식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다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이와 같은 동물과의 의사소통 시도에 우려를 표하는 학자들도 있다. 의미를 가지는 소리를 만들어 동물에게 전달하는 것이 동물에게 미칠 수 있는 잠재적인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논지다. 어스 스피시스 프로젝트의 AI 연구자 데이비드 로빈슨은 혹등고래의 예시를 들어 설명한다. 혹등고래는 사회 내에서 세대를 걸쳐 전승되는 음성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혹등고래에게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이 음성 문화에 영향을 미쳐 미래 세대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종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과학 및 기술 발전뿐만 아니라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다른 종 생물들이 인간과의 소통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어쩌면 지금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누군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을지 모른다. 미래의 인류는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참고 문헌

'8면 > 과학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사에 물리고 살아남는 방법  (0) 2025.12.10
모기의 역사  (0) 2025.11.07
Bring the light of a dying star  (0) 2025.09.20
완전히 객관적인 연구는 존재하는가?  (4) 2025.06.10
2% 네안데르탈인  (0) 2025.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