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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어느 라이더의 고충 본문

3면/쟁점 기고

어느 라이더의 고충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0. 11. 6. 15:04

-익명의 라이더

 

 나는 엔터테인먼트 계에 몸을 담고 있고, 원래 DJ로 활동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실직자가 되거나, 평소보다 터무니없이 적은 급여로 버티고 있는 것은 비단 나만의 현실이 아닐 것이다. 정부가 6개월 연속으로 클럽을 폐쇄하면서, 급여는 하루 아침에 0~10만 원을 웃도는 수준이 되었다. 생계가 막막해지자,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으로 급하게 손을 뻗은 것은 배달이었다. 이미 배달의 민족을 자처하는 나라에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배달 시장이 급부상하는 건 시간 문제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현재 플랫폼 배달 체계에서 라이더는 각 대행업체에 소속되어 있다. 최대 20시간만 근무할 수 있는 배민 커넥트사와, 라이더 재량으로 원하는 만큼 배달을 할 수 있는 쿠팡이츠에 소속되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 이러한 조건에 따라 라이더들은 업체를 선택하게 되는데, 소일거리로 배달을 맡아 용돈벌이를 하는 이부터 한 달에 900만원 가까이 버는 이까지, 급여는 천차만별이다(물론 후자는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14시간 연속으로 노동한 대가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같이 다양한 업체와 조건에서 근무할지라도, 모든 라이더가 직면한 문제는 동일하다. 보험료, 부상과 치료 그리고 고용 유연화에 따른 현실적인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배달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개인 소유의 교통수단이 있어야 한다. 갈수록 라이더들이 활용하는 교통수단은 다양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넓은 도시의 골목골목을 쉽고 빠르게 다닐 수 있는 오토바이를 선호하는 편이다. 엔진 90cc 정도의 중고 오토바이는 보통 90~100만원 선에서 구할 수 있는데, 배달로 벌 수 있는 금액을 생각한다면 당장 투자할 초기비용으로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보험료다. 오토바이를 개인적인 용도로만 활용하면 보험료는 매년 13만원, 높아야 20만원 선이고 사업장에서 직접 구매하면 40만원 정도로 책정된다. 그러나 배달 업체에 등록하려면 운송배달용으로 가입하게 되어있어, 연간 120만원 가량 지불해야 한다. 매년 오토바이의 가격보다도 높은 보험료가 청구되다 보니, 필수 보험에 가입하기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정부 보고에 따르면, 한국에 존재하는 오토바이 약 220만 대 중 보험에 가입된 것은 절반에도 못 미치고, 심지어 보험에 가입된 이들 역시 대다수는 의무보험만 적용받고 있다. 이처럼 라이더들의 보험료 부담에 대한 지적은 이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코로나사태로 인해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많은 이들은 다치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보험료를 아끼고 배달하게 된다. , 교통수단을 불법으로 대여해주는 곳들도 생겨나고 있는데, 문제는 이런 경우 사고가 나면 보험도, 법적인 보호도 적용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곳들은 대개 보험 가입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라이더가 배달 도중에 부상을 당해도 개인 책임으로 돌아갈 뿐이다.

 

 이러한 보험 문제에서 비롯되는 두 번째 사안은 부상 관련 처우다. 최근에 배달대행업체와 음식 배달 플랫폼 앱, 그리고 노동조합이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민간 자율 협약을 체결했다고는 하지만, 라이더들이 당장 법적으로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배달 중에 부상을 당해도 치료비나 처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는 아직도 발생한다. 이러한 제도적인 결함의 피해가 극대화되는 것은, 내가 목격했던 다수의 경우처럼, 라이더들이 책임보험도 아닌 단순 의무보험만 들고 배달을 하는 사례였다. 이런 경우, 라이더들이 배달 도중에 다쳐도 운송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서 보험금은 받지 못하고, 회사는 회사대로 책임을 면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보험에 제대로 가입하지 않고 위험하게 운전하는 라이더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비합리적으로 높은 보험료와 예상치 못한 실직으로 인해 시급해진 벌이 사이에서 이들이 과연 무슨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라이더 고용 유연성과 관련된 문제점들이다. 앱을 통해 '누구나' 교육을 받고 고용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은,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일이다. 고용 절차에서는 교육이 진행되지만, 몇 시간 동안 건성으로 듣고서 문제를 틀려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외국에서 태어나고 20년 동안 살다 온 나조차 한 문제도 틀리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 난이도 역시 가늠할 수 있다. 배달을 오래 해오신 분들은 경험과 지식이 많겠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급증한 라이더 인력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처럼 생계 수단을 잃어버려서 배달업에 뛰어든 이들이 무슨 경험이 있겠는가. , 오토바이, 경차부터 고급 차량까지 아우르는 자동차, 자전거, 전동킥보드 그리고 심지어 도보로까지 배달 수단이 확대되고 있다. 라이더가 선호하는 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보호조치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채 고용의 사각지대는 넓어져만 간다.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특정 분야가 부상할 때, 기존에 존재하던 작은 문제들은 보다 더 큰 문제로 폭발되기 마련이다. 절망적인 팬데믹이 유행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공정하고 안전한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힘이 있는 자들의 급선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라이더를 위한 더욱 안전하고 개선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업계 종사자들에게도, 함께 도로 위를 달리는 수많은 사람에게도 필요해 보인다. 이 팬데믹이 끝나면 나는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겠지만, 한 번 폭발적으로 증가한 배달 수여와 그에 대응하기 위해 고용된 노동 공급은 결코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