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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관객은 혁명적이에요” 본문

8면/연극비평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관객은 혁명적이에요”

lilithshuuu 2026. 6. 9. 11:12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관객은 혁명적이에요

<여는마당: 프로파간다>(심지후 개념발안·연출)

김소연

연극평론가

ⓒ 김인경

 

 아마도 한국연극에서, 극장과 광장의 완강한 경계가 무너지는 가장 선명한 경험은 마당극운동일 것이다. <진오귀굿>(1973) <진동아굿>(1975) <함평고구마>(1978)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1978) <노비문서>(1979) 등은 민중운동의 연장에서 공연이 이루어지거나 공연이 민중운동 현장으로 이어졌다. 마당극운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들은 대부분 삶과 연극의 경계, 현실과 극장의 경계가 흔들리고 재조정되는 작업들이다. 당대의 언어로 말하자면 삶의 연극이고, 요즘 말로 고치면 광장이 된 극장이다. 마당극운동에 비판적이었던 논자들은 마당극을 연극이 아닌 선전선동이라고 폄하했고, 마당극운동을 지지하는 논자들은 마당극의 연극성을 규명하고자 했다. 마당극 양식론이 후자의 입장인데, 양식으로 마당극을 논할 때 딜레마는 마당극운동을 출발시킨 질문, 즉 어떻게 연극과 삶의 경계를 넘어 연극이 곧 삶의 현장이 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지난 59, 10일 양일간 마로니에공원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 <여는마당:프로파간다>광장 이후에 대한 이야기다. 12·3계엄에 반대했던 광장의 목소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마당극운동이 연극과 극장에 품었던 질문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마당극이 민중운동의 현장으로 연극을 옮겨 놓음으로써 연극과 삶, 극장과 광장의 완강한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했다면, 이 연극은 도리어 그 경계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1부 집회는 아르코예술극장 앞 계단, 마로니에공원으로 이어지는 곳에서 진행된다. 관객들은 집회에 참여하는 군중이다. 관객들은 “[ ]가 민주주의를 완성한다 내란세력 청산하자!” “민주주의 완성으로 [ ] 하자와 같이 빈칸이 있는 구호가 적혀 있는 피켓을 받고 제각각 이 빈칸을 채우고, 혹은 그대로 둔 채, 집회에 참석한다. 구호를 외치고, 발언이 이어지고, 투쟁가를 함께 부른다. 집회에 이어 마로니에공원 앞 도로와 골목을 행진하면서 관객들이 만든 구호를 함께 외친다.

 ‘2부 극장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 위로 장소를 옮긴다. 면막을 내린 대극장 무대는 거대한 블랙박스 같은데 모든 장치를 걷어내고 텅 비어있어 마치 극장의 뼈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관객들은 무대 바닥 이곳저곳에 흩어져 앉아 무대를 둘러보고 있다. 그리고 목소리가 시작된다. ‘목소리는 마치 관객 한 명 한 명을 응시하는 것처럼 관객들 하나하나의 모습을 그린다. 무대 천정에서 수많은 쪽지들이 내려오면 목소리의 진행에 따라 관객들은 쪽지를 읽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고 쪽지의 말을 다른 관객에게 전한다. 관객들이 말들을 전하는 것이 끝나면 면막이 열리고 텅 빈 객석을 통과해 극장을 빠져나가는 것으로 연극이 마무리된다.

 ‘1부 집회에서는 곳곳의 현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단체들이 연대자로 발언했다. 첫 발언은 사회자가 대독했는데 12·3계엄 반대 집회 이후의 혼란을 담고 있다. 이어진 발언들 역시 투쟁의 현장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유인물을 받아가는 학우들이 무엇을 함께할 수 있을지 질문했을 때 머뭇거리던 순간을 이야기하고, 또 다른 발언자는 구청의 불합리한 행정에 대한 소송에서 패배한 후의 혼란을 말한다. ‘2부 극장의 말들도 마찬가지다. 이 말들은 다양한 세대, 직군, 활동가들의 인터뷰에서 발췌되었는데 구체적인 주장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마치 누군가의 일기, 낙서 혹은 친구와의 수다처럼 세상에 대한 혼란과 냉소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연극의 들은 민주주의의 완성’ ‘내란세력 척결등 구호에 담긴 공통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삶의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혼란과 갈등, 회의와 의심을 품는다.

 <여는마당: 프로파간다>에서 광장과 극장의 경계는 뚜렷하다. ‘2부 극장에 앞서 1부 집회를 둠으로써 그 경계를 확연히 한다. 그런데 극장은 허구의 공간을 짓던 장치들을 걷어낸 채 물리적 공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고, 집회는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하지만 연극의 한 장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두 공간의 뒤바뀐 듯한 장소성을 잇고 중첩시키는 것은 관객이다. ‘2부 극장에서는 관객을 재현의 주체로 불러세우는 과정을 목소리를 통해 촘촘히 전개하는데, ‘목소리는 관객을 하나하나 응시하고 관객들에게 선언을 권유하며 재현의 수행을 제안한다. 이 모든 과정에 앞서 목소리가 관객에게 전하는 첫 번째 말은 극장은 수행이 실재가 되는 곳, 재현이 실재보다 앞서는 곳이라는 정의다. 그런 점에서 관객에게 말을 선택하고 재현하게 하는 과정이 다소 혼란스럽고 성글게 다가오는 점은 아쉽다.

 관객의 역할에 주목하는 많은 작업들이 있어왔지만, 이 연극은 재현 그 자체가 아니라 재현의 과정을 관객이 수행하게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또한 극장과 현실, 연극과 삶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또 다른 모색 속에서 이어가고 확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