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시가 연극이 될 때 - 공놀이클럽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 본문

8면/연극비평

시가 연극이 될 때 - 공놀이클럽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

lilithshuuu 2026. 3. 16. 18:23

시가 연극이 될 때

공놀이클럽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

 

김소연

연극평론가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강훈구 구성 연출)는 공놀이클럽과 아이들극장 공동제작으로 2004년 초연, 2005년 재연에 이어 지난 2월 국립극단 초청으로 명동예술극장에서 3연의 막을 올렸다. 연극은 이상 「오감도」 연작중 첫 번째 작품 ‘13인의아해가도로로 질주하오’에서 출발하고 되돌아온다. ( 「오감도」 연작은 발표 당시 따로 제목을 붙이지 않고 시 제1호, 시 제2호 식으로 이어갔다.)

  「오감도」 연작은 이상에게 독자 항의로 연재 중단이라는 스캔들까지 안겨준 작품이다. 30편이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15편에서 그쳤다. 이상은 “2천 점에서 30점을 고르는데 땀을 흘렸다”(「오감도 작자의 말」)며 연재 중단을 서운해했다. 하지만 이제 「오감도」 연작은 “새로운 방법론이 도입되고 새로운 시각이 습득되면” 다시 호출되어 해석 되는 현대시의 이정표가 되었다. 해석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오감도 시 제 1호」의 경우 그간의 해석이 13, 아해, 도로 등 주요 시어의 의미를 찾는 것이었던 데에서 이제는 시의 전개에서 확연히 강조되는 불안과 공포에 주목하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예를 들어 13에 대해 “이 숫자의 불안한 분위기”(황현산)에 주목한다든가, “13번에 걸쳐 반복되는 단말마”의 공포(신형철)에 주목하는 것이다. 특히 신형철은 괄호 안의 세 행에 주목하는데,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가 사건에 대한 진술이라면 괄호로 묶은 문장들은 상황에 맥락을 설정하는, 희곡의 지시문과 같다는 분석을 제안한다. 괄호 안의 세 행, ‘길은 막달은골목이敵黨하오.’ ‘다른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앗소’ ‘길은뚫린골 목이敵黨하오.’는 공포에 집중하게 하고, 끝과 처음을 다시 연결함으로써 공포의 파동을 지속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분석이 이 시가 연극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연극은 오프닝과 커튼콜 그리고 막간극 외 13개의 장으로 전개된다. 각 장은 독립된 에피소드인데 장마다 표제를 두었다. 표제는 「오감도 시 제 1호」의 2연과 3연, ‘제1의아해’부터 ‘제13의아해’까지 반복되는 ‘무섭다고그리오’의 13행이다. 3연의 마지막 괄호에 묶여있는 ‘다른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앗소’는 따로 표제로 등장하지 않는다.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행만을 취한 셈이다. 그런데 각장의 표제에서 시의 행이 변형되었다. 각각 태어나기, 달리기. 부모님, 집, 학교, 서울, 스마트폰, 아이돌, 나이드는 것, 꿈, 노키즈존, 전쟁, 내가 등이 ‘아해’와 ‘무섭다그리오’ 사이에 삽입되었다. 삽입된 단어만을 보더라도 아이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연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극은 어린이연극이다. 성인배우 5명과 어린이배우 9명이 무대에 서는데, 어린이배우는 초연 제작과정에서 모집되어 3연에 이르고 있다. 연기훈련을 받았거나 받고있는 아이들이 아니다. 제작과정에서 우리 가족 그리기, 내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로 합주하기, 주제곡 만들기,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 투표하기 등 리서치 워크숍을 가졌다. 각 장의 표제에 삽입된 단어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선택된 것이며, 각 장의 에피소드 역시 아이들과 함께 찾아낸 것들이다.

  ‘1장 제1의아해가태어나기무섭다고그리오’. 무대 한켠의 작은 미끄럼틀을 타고 아이들이 등장한다. 무대 뒤편에 아이들이 있고, 무대 앞의 한 아이는 자신이 태어나던 순간부터 뒤집고, 앉고, 서고, 걸음을 떼고, 달음질을 하는 하나하나의 과정을 마치 자신의 기억인 것처럼 들려준다. 아마도 아이가 전하는 말은 커오면서 부모로부터 들어왔던 말일 것이다. 부모가 들려주었던 말에는 아이가 자라는 경이로운 순간들에 대한 벅차오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은 그 순간을 부모가 본 것, 부모가 느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것, 자신이 행한 것으로 고쳐쓴다. 처음 뗀 한 걸음은 식탁에 놓여있는 젖병을 향해 안간힘을 쓰던 분투의 성취인 것이다. 앞의 한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을 들려주는 동안 뒤편의 아이들도 제각각 뒤집고, 기고, 앉고, 서고, 달린다. 그러나 한 아이는 끝내 움직이지 못한다.

  장면들은 단순하지만 솔직하고 활달하면서도 예리하다. 아이의 양 옆에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랑을 담뿍 담은 부모의 말은 점점 아이에 대한 기대로 아이에게 투사된 자신의 욕망으로 부풀어가는데, 이때 양 편의 부모의 뒤로 부모의 행동과 말을 반복하는 긴 줄이 만들어진다. 자신의 욕망과 구별하지 못하는 부모들의 사랑이 무겁다(3장 부모).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의 학교생활은 투명망토 놀이로 그려진다(5장 학교). 무대와 객석이 공을 주고 받는 놀이는 갑자기 중단되고 어린이 배우와 관객의 안전을 위한 극장 측의 제지를 두고( 아마도 극장 리허설 과정에서 있었던 일일터인데) 토론이 벌어지고, 아이들은 곳곳에서 안전과 이웃에 대한 배려를 이유로 내쫓긴다(11장 노키즈존). 아이들의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년의 배우가 어린시절 친구들의 꿈과 현재의 친구들의 모습을 전할 때, 어린이배우들은 중년 배우의 친구들로 분하여 장면을 함께 만들고(9장 나이든다는 것) 어린 나와 어른이 된 내가 만나 서로를 위로한다(13장 내가).

  그래서 이 연극은 이상의 「오감도」와 무엇이 교차하는가. 오프닝에 서 성인 배우가 이상의 「오감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어린이배우는 그런 거 모르고 어서 연극을 시작하자고 재촉한다. 마치 연극이 「오감도」와 크게 관련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각장의 표제를 위해 이상의 시를 빌어온 것인가. 시가 강박적인 반복으로 공포를 환기한다면 연 극은 서로 다른 에피소드들이 독립된 장면으로 전개되면서 강박과 반복을 벗는다. 시가 강박적인 반복 속에서 공포의 대상을 은폐한다면, 연극은 무엇이 무서운가에 대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커튼콜에서는 배우들이 자신이 무서워하는 것을 랩으로 노래한다. 이러한 활달 함은 이상의 시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다. 시와 연극이라는 장르의 차 이를 한껏 벌린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이 연극은 시의 달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무서운지를 말하게 한 것뿐이다. 그렇게 이상의 시를 오늘의 이야기로 다시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