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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살라, 모하메드, 사피, 로룰라, 오콧 그리고 아말 본문
살라, 모하메드, 사피, 로룰라, 오콧 그리고 아말
극단 ETS <THE JUNGLE>(Joe Murphy & Joe Robertson 작, 김혜리 번역/연출)
김소연
연극평론가

<THE JUNGLE>은 칼레 난민촌 ‘정글’ 이야기다. 연극은 정글이 철거된 다음 해 런던 영빅에서 초연되었고 이듬해 웨스트엔드 플레이극장에서 장기공연을 이어갔다. 고색창연한 프로시니엄 극장의 객석을 뜯어내고 극장 바닥에는 마른 풀잎이 뒤섞인 흙까지 깔아 극장 전체를 난민촌 식당으로 연출했다. 관객들은 난민촌 식당 주방을 지나 식당 테이블을 앞에 둔 의자에 앉고 배우들은 객석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면서 연기했다. 연극은 이곳에 그렇게 오고 싶어했던 그들이 있었던 곳으로 관객들을 옮겨놓는다.
영국 공연에서는 칼레 난민촌으로 속속 모여들었던 영국 자원봉사자들이 도드라져 보였다. 터키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알란 쿠르디의 사진을 보고 이곳으로 달려온 베스, 이튼 출신이지만 진로를 포기하고 난민들이 기거할 집을 짓겠다는 샘, 아이들을 구조하려는 폴라, 정글이야말로 진정한 공동체라는 데릭. 연극은 정글이 철거되기 직전의 상황에서 시작되어, 시간을 거슬러 영국인 자원봉사자 넷이 정글에 도착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드라마다. 난민촌에서의 사건과 갈등만이 아니라 뉴스 등 기록영상이 삽입되면서 정글의 안과 밖이 나란히 전개되는데 내달려온 드라마는 이 연극의 첫 장면, 정글의 철거에 도착한다. 실제 사건이자 드라마의 결말인 정글의 철거는 수천 킬로미터를 떠돌아 온 난민들에게만이 아니라 도버해협을 건너온 네 명의 자원봉사자들에게도 패배이다. 모두 삶을 찾아 이곳에 왔던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내내 난민촌 식당에 앉아 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본 관객들 역시 이 결말을 함께 맞는다.
극단 ETS의 <THE JUNGLE>은 굳이 관객을 칼레의 정글, 난민촌 식당으로 옮겨놓지 않는다. 객석으로 들어서는 극장 입구는 난민촌 식당의 주방이 아니라 난민과 관련한 다양한 기록들의 전시공간으로 연출되었다. 이 전시공간을 지나 극장에 들어서면 높이가 다른 넓은 사각 박스가 이어지는 무대가 극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다가 한편으로 방향을 튼다. 사방 벽 가득 각 나라의 국기며 구호가 적혀있는 형형색색의 천들이 이제 곧 시작될 연극의 장소를 환기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는 정글에서 멀리 떨어진 때와 장소이고 연극이 시작될 극장이라는 것을 감추지 않는다. 시시각각 전해오던 뉴스 영상도, 한바탕 흥겹게 노래하고 춤추던 장면들도 거두고 드라마를 전개한다. 길게 뻗고 꺾인 무대는 한눈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시선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대 모서리를 따라 객석이 세 구역으로 분리되면서 무대를 향한 관객들의 시선은 서로 맞부딪치고 어긋나면서 무대 위에 겹겹으로 쌓인다. 난민촌에 모여든 여러 나라 사람들, 종교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세대도 다른, 각각의 상황과 이해가 충돌하고 갈등하는 드라마는 이러한 중첩된 시선을 통해 강조되고 증폭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고향을 떠나 부모를 떠나 혹은 부모를 잃고 이곳에 흘러든 아이들이 또렷했다. 수단에서 온 모하메드와 아프카니스탄에서 온 살라가 서로 갈등하면서도 정글의 부족한 자원을 나누고 질서를 만들어가기 위해 협력한다면 노룰라와 오콧 등 아이들은 시시때때로 충돌하면서 겨우 잠재우고 있는 정글의 갈등을 터트린다. 거친 청소년기 이어서가 아니다. 모하메드와 살라보다 더 여리고 그래서 공포와 분노가 가득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부모 없이 이곳에 온 어린 소녀 아말이 말없이 지켜본다.
어느 날 오콧은 정글 밖에서 프랑스 경찰에 잡힌다. 베스의 거센 항의로 풀러난 오콧은 그밤 베스에게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말한다. 고향에서 군인들에게 끌려갈 뻔했던 일, 사막을 횡단했던 일, 그리고 배 밑바닥 화물칸에서 지중해를 건넌 일. 그때마다 오콧은 자신이 죽었다고 말한다. 오콧의 긴 이야기는 미동도 없이 이어지고 말 없는 아말이 오콧 앞에 앉아 듣고 있다. 오콧의 긴 이야기가 밀항선에 이르렀을 때 비어있던 무대 위에 배우들이 올라와 오콧과 함께 파도를 견디고 급작스러운 수색을 피하는 장면을 만든다. 그런데 무대 위에 올라와 떠밀리고 구르는 이들이 그저 오콧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승객들인 것만은 아니다. 오콧과 다르지 않았을, 살라, 모하메드, 알리, 노룰라, 오마르 한사람 한 사람의 여정이 오콧의 이야기와 겹친다. 한 아이만이라도 구하고 싶었던 베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오콧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정글은 철거된다. 내내 정글의 모든 이들을 보살폈던 사피는 오콧과 베스의 바람을 알지만 자신 앞에 온 ‘굿챈스’를 미루지 못한다. 사피는 정글을 떠나 영국에 도착해 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THE JUNGLE>은 난민의 이야기이지만 고향을 잃은 난민을 만들어내고 있는 세계 정세와 자본의 착취와 맞물려 있는 각 지역의 분쟁에까지 시선을 돌리지는 못한다. 칼레의 정글이 철거된 직후 오른 이 연극의 관심은 유럽연합과 영국의 난민정책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 이후 시간과 장소의 거리를 두고 지금 여기에 오른 <THE JUNGLE>은 구체적인 삶, 구체적인 고통에 시선을 집중함으로써 이제까지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난민문제를 우리 앞으로 당겨놓는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금도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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