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죽음을넘어
- 보건의료
- 미니픽션 #한 사람 #심아진 #유지안
- 518광주민주화운동 #임을위한행진곡
- 권여선 #선우은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김승옥문학상수상작품집
- 5.18 #광주항쟁 #기억 #역사연구
- 심아진 #도깨비 #미니픽션 #유지안
- 수료연구생제도 #고려대학교대학원신문사 #n번방 #코로나19
-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로나 콜른타이 #위대한 사랑 #콜른타이의 위대한 사랑
- n번방
- 고려대학교언론학과 #언론학박사논문 #언론인의정체성변화
- 고려대학교대학원신문사
- 김민조 #기록의 기술 #세월호 #0set Project
- 코로나19 #
- 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염동규 #자본주의
- 쿰벵
- BK21 #4차BK21
- 선우은실
- 한상원
- 공공보건의료 #코로나19
- 애도의애도를위하여 #진태원
- 쿰벵 #총선
- 시대의어둠을넘어
- 임계장 #노동법 #갑질
- 항구의사랑
- 산업재해 #코로나시국
-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 국가란 무엇인가 #광주518 #세월호 #코로나19
- Today
- Total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한빛과 동호와 너- 故이한빛PD 4주기에 부쳐 본문
몇 달 전부터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를 가르치고 있다. 두 시간 동안 같이 수학 문제를 풀기도 하고 미술 숙제를 하기도 한다. 하루는 아이가 어디서 ‘폭력’이란 말을 배워왔는지, 뜬금없이 나에게 물었다. “코로나가 무서워요, 김정은이 무서워요, 폭력이 무서워요?” 비교항목 간의 층위라고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대담한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하고, “글쎄, 김정은은 직접 만날 일이 없을 테니 빼면 어때?”라고 말을 돌렸다. 아이는 혼자 고심하더니 코로나도 마스크 쓰면 되니까 폭력이 제일 무서운 것 같다고 결정을 내렸다. 그러더니 왜 옛날에는 학교에 폭력이 있었냐고 연이어 질문해왔다. 원래 세상은 어디든지 폭력에서 시작하고, 폭력을 저지르지 않기로 약속해나가는 과정을 겪는 게 아닐까, 라고 말할까 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언젠가 작가 한강이 광주 5·18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에 대해 이야기한 인터뷰를 읽은 적 있다. “인간의 잔혹함을 증거하는 자료들과, 다른 한편에서 인간의 존엄을 증거하는 자료들 사이에서” 분열을 겪고 있던 어느 날, 시민군이 되어 도청에 남았던 한 청년, 과거 섬세한 성격의 야학교사였던 이가 남긴 마지막 일기를 읽었다고 한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기도 형식으로 되어 있던 일기의 첫머리를 읽은 순간, 그녀는 이 소설이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소년이 온다』는 친구의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그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소년 동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계엄군이 도청을 진압한 그 날의 이른 저녁, 동호의 어머니와 둘째 형은 동호를 찾아 도청으로 간다. 도청은 이미 봉쇄되어 있었고, 그곳에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어머니는 깨닫는다. 둘째 형이 동호를 찾으러 도청에 들어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동호가 이미 집에 돌아와 있을 것이라며 아들을 만류한다. 둘째 아들까지 잃을 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속인 어머니는 이후 아주 오랫동안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왜인지 이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이한빛 씨의 유서가 떠오르곤 했다. 아마 아무도 자신을 탓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끝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동호 어머니의 모습이 그와 겹쳐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솔직히 예상 못 했어요. 사회가 굴러가는 데 필수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둥지를 틀면, 운동을 저버리고 내 영달을 찾더라도 세상의 모순과 빗겨나갈 수 있으리라 여겼어요. 하지만 잘못된 판단이었죠.” (故이한빛PD 유서 일부 발췌)
4년 전 이한빛 씨의 소식을 듣고 꼭 죽어야 했을까, 그곳이 그렇게 괴로웠다면 다른 곳으로 떠나면 안 됐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유서를 읽으며 이한빛 씨는 그곳을 떠나도 자신이 한 일을 잊지 못할 것이고, 어딜 가든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한빛 씨의 아버지도 아들의 그런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한빛 씨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 그에게 대학원에 가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분명 그곳에서도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한국에서 자기 소신대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 학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빛 씨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대학원에 다니는 그를 마음속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그늘로 걷는 어머니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빛으로 끌어당기는 동호를 통해 작가가 폭력이 아닌 존엄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듯, 한빛 씨도 자신을 용서하고 계속 살아갔다면 어땠을까. 폭력을 응시한 채 희망을 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거대한 폭력 앞에서 살아남아버린 이들에게도 구원은 필요하지 않을까. 문학이 해야 할 일이 폭력에서 존엄으로의 길을 비추는 것이라면,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김진숙, 『소금꽃 나무』)에서 머뭇거리는 우리들도 끊임없이 그 틈에서 존엄을 찾아야만 한다.
'7면 > 사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만난 세계 : 좌파 멜랑콜리에 저항하기 (0) | 2021.03.24 |
---|---|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1) | 2020.12.10 |
관용에 대하여 (0) | 2020.10.22 |
가해의 자리에 선다는 것 (0) | 2020.09.21 |
5·18 40주년을 지나보내며 끄적이는 반성문: 멈추지 않기 (0) | 2020.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