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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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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사설

5·18 40주년을 지나보내며 끄적이는 반성문: 멈추지 않기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0. 5. 29. 12:10

 5·18 40주년을 지나보내며 끄적이는 반성문: 멈추지 않기 



  지난 5월 18일은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었다. 40주년을 맞아 여기저기에서 5·18 관련 다큐멘터리와 뉴스들이 쏟아져나왔다. 폭우가 오던 5월 18일에는 집에서 쉬며 각 방송사들이 힘주어 제작한 5·18 다큐멘터리와 특집 뉴스들을 계속 시청했는데, 뭐라 할까, 매스컴에서 이렇게나 5·18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나 싶어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모를 이질감을 느꼈다. 이게 뭔가 세상이 변하긴 변했나 보다, 란 생각이 들 정도로 묘한 감정마저 맴돌았다. 또 한편으로는 5·18이 품고 있는 슬픔과 분노와 같은 무거운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기가 종종 못내 힘들고 부담스러워서 가끔은 애써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는데, 이번 5·18 당일엔 「임을 위한 노래」란 특집 다큐멘터리를 보며 결국 울어버렸다.


  5·18의 역사를 처음 알았던 때가 언제인지 돌이보켜보면 딱히 언제라고 답하기 어렵다. 대학에 들어오기 이전에도 분명히 5·18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말 그대로 5·18이란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다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광주에 내려갔을 때에야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우리가 왜 5·18을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해 보다 분명히 알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놀람과 분노, 슬픔, 죄책감 정도의 감정들이 뒤섞인 가운데 한 켠으로 뜨거운 감정을 느꼈었던 것 같다. 망월동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잊지 않겠노라고, 외면하지 않겠노라고, 선배들이 선배들에게 또 그 선배에게서 또 그 아래로 전해져 내게까지 전해졌을 그 감정들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5·18 이후 사회변혁을 꿈꾸던 모든 이들은 5·18이 자신들에게 숙명과도 같은 짐이었다고 회고한다. 5·18은 남아있는 산 자들에게 멈추지 않고 자신들을 기억하며 계속해서 나아갈 것을 요구하는 원죄(Sin)였다. 1980년으로부터 약 30년이 지나 5·18을 접한 우리가 느낀 감정은 어떠했던가. 여전히 5·18은 피아를 가리는 지표였고 투쟁의 대상이자 동기였으며, 분노와 슬픔, 죄책감을 낳는 큰 숙제였다. 우리는 5·18을 부정하는 이들에 분노하고 싸우면서 우리가 선 자리를 더듬었다. 하지만 솔직한 속내를 고백하자면 언제부턴가 5·18의 무거운 감정에 지쳐간 것도 사실이다.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먼저 5·18을 찾지 않는 이에게 누군가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부끄럽게도 감정적으로 힘들어서라고 답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렇게 우린 5·18을 기억하지만 따로 찾지는 않았고 5·18로 인해 분노하지만 5·18을 다시 보려 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40주년 영상들을 보며 그 비겁함과 안이함을 깊이 반성했다. 밝히지 못한 진실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5·18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마주해야 할 소중한 과제이다. 5·18이 산 자에게 남긴 중압감은 너무나 크지만 산 자가 고민을 멈추면 5·18의 생명력은 그곳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이제는 5·18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할 차례다. 1980년 광주에는 평범한 우리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연대했으며 마지막까지 저버리지 않았다. 산 자들은 떠난 이를 기억했으며 결국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 서사에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인간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이 함께 깃들어있다.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