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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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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사설

가해의 자리에 선다는 것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0. 9. 21. 07:47

 최근 국내개봉이 확정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アジア反日武装戦線)(김미례 감독)의 시사회에 다녀왔다. 이들은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자성하며 1974830일 도쿄 미쓰비시 중공업 빌딩을 시작으로 일제 전범기업 연속 폭파 사건을 일으켰다. 종전(終戰)과 함께 과거 문제도 종결되었다고 생각하던 일본 사회에 이들은 식민지에 행했던 가해를 인지하고 그 죄를 계승할 것을 요구했다. 미쓰비시 중공 폭파 사건으로 인해 8명이 사망했고 400명에 육박하는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그들의 태도는 강경했다. 이 폭발에 휘말린 사람들은 결코 우리와 같은 노동자도 아니며 무고한 시민도 아니라는 것, 이들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협력하고 기생하는 인물들이라는 것이었다. 영화는 이들이 택한 방식에 판단을 내리거나 손쉽게 그들을 정당화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대신, 강경했던 이들이 폭파 사건에서 자신들이 행한 가해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는 과정을 함께 그린다. 반일무장전선의 멤버와 협력자들은 사건 당시를 회상하며 단 하나의 목숨도 잃게 해서는 안 됐다고, 우리의 목적이 옳았을지라도 그런 방식을 택해서는 안 됐다고 무거운 목소리로 전한다. 일본인으로서 자신의 가해를 자각하고 저항을 벌였지만 그로 인해 다시 새로운 가해를 저지른 이들, 두 개의 중첩된 가해 속에서 이들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앞으로도 결코 가벼워지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폭력 앞에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당장의 현실을 바꿔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던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반일무장전선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419일에 사건을 일으켰을 만큼 이들의 신념과 한국의 민주화 세대의 가치관은 서로 공명하는 바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87학번의 한 선생님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그때는 폭력 시위가 옳다고 믿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좀 더 사소한, 일상의 문제이다. 목적이 옳다면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생각은 아주 오랫동안 사소하고 빈번한악을 눈감게 했다. ‘해일이 오는데 조개 줍고 있냐는 말은 명실상부 한국의 기득권이 된 586세대의 인식을 여전히 대변하고 있다. 모든 행동을 대의로 설명할 수 있었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했던 세대, 그 자신이 앞장서 희생한 만큼 당당하게 타인의 희생을 요구할 수 있었던 세대. 아마 이들은 무의식중에 진보라는 대의명분이 한 사람 혹은 한 세대에 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선한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믿음, 이것이 일상의 가해를 인정할 수 없게 만들고 공적인 업적과 사적인 과실 사이의 괴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혹자는 한국 사회가 진보정치에 요구하는 도덕적 순결주의가 너무 강하다고 불만을 표하지만, 우리는 아무 잘못도 하지 말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크든 작든 자신의 가해를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가 죽음을 택하는 대신 그의 이력에 최초로 권력형 성폭력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퇴한 공직자라는 한 줄이 더해졌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